손학규의 敵은 김정일인가? 대한민국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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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력하는 자는 식욕을 인하여 애쓰나니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慾心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욕심의 크기가 한없어서 그 욕심을 따라 사는 자들이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自己具現의 욕구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산다. 그 구현의 욕구를 통해서 자기들의 말대로 구현되는 시스템 곧 명령체계를 구축하고 그 위에 군림하기까지 부단히 노력하고 마침내 그 말이 통하는 지배영역을 갖게 된다. 자기 구현의 노력과, 식욕으로 인해 시달리는 본능과의 의미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督促을 받는 인생을 사는 것은 그만큼의 中毒性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식욕을 중독성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나친 식욕을 과식증이라고 하는 병적인 의미로 본다. 문제는 신체적인 이상 사이클로 인해 식욕이 발생하는 過食症에 걸려 사는 자들도 있다. 그 말고도 정신적인 또는 욕구불만으로 인해 식욕으로 채우려는 과식증도 있다. 그런 過食症에 시달리는 것은 병적이고, 그런 것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권력의 노예가 되는 자들, 식욕에 노예가 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손학규는 권력의 노예가 아닌가?] 2. 이는 過猶不及이라고 하는 말과 같은 의미의 깊이를 우리에게 膳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節制를 못하는 인간의 醜한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다. 먹을 것을 적당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절제가 없는 사람의 모습은 그리 善치 못하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그런 권력의 욕심에 따라 사람들은 아주 醜하게 보여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기 배 속으로 채우는 것으로 인생의 목표로 사는 자들이다. 自己支配世界를 가지고 무엇인가 자기구현을 이루고자 하는 한 老醜를 보게 된다. 그의 모습은 참으로 醜하기 그지없는 행동으로 보여 지는 것을 行하고 있다고 본다. 권력은 절대 善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을 보게 된다. 과연 그들의 행동이 절대 善일 수는 없다. 헌법을 무너지게 하고 자기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자기구현을 달성하려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나친 행동으로 인해 인간의 아름다움은 무너지는 것이고 추하여 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절제를 하는 내용과 능력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예술적인 감각을 가지고 절제를 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 것을 기본으로 절제를 한다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손학규는 아름다운 사람인가?] 3. 醜한 사람, 참으로 幼稚하기 그지없는 사람, 참으로 妄靈된 사람이 된다면 그야말로 모든 듣는 자들의 마음에 아픔을 남기게 하는 것이다. 지금 政街는 그 老醜의 감독 下에 무엇인가 또 다른 일이 판 벌려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어제 어느 분이 脫黨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눈물의 가치는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는 값싼 것으로 보여 져서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이다. 저런 자들이 대통령이 된다면, 자기구현욕구의 노예가 된 자들이 대통령이 된다면, 과연 최고의 정치문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어 주는 행동이라고 본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균형 감각이 탁월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요구를 법에 따라 잘 균형 있게 절제 및 충족시켜 내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각 사람의 욕구를 또는 과식을 달성해주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것은 자기 구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구현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구현을 위해 全體를 죽이는 행동을 하는 것은 참으로 사람을 더럽게 만들고 추하게 만들고 가치 없게 만드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국민들이 염치없는 짓을 하면 그 염치없는 짓을 절제시켜 보다 더 좋은 절제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손학규는 절제문화를 만들어 낼수가 있는가?] 4. 適當한 것을 찾아서 그 線에 만족하며 사는, 삶을 구가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공평과 공의가 강수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만족하지 못하면 결국은 奴隸로 사는 것이고, 권력에 노예가 되면 결국은 나라가 무너지는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나라가 무너지지 아니하려면 모두가 헌법에 따라 자기절제력이 있어야 한다. 그 절제력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지도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사람 속에 지식이 쌓이는 것과 절제력은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理性統制라고 하는 것은 지식의 힘으로 자기 통제를 가능케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기보다는 無能力하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지성을 가진 각 사람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최고의 知性人들도 자기절제력이 여타의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 것이 이미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바울은 이렇게 외쳤다. 인간은 선을 행하고자 하나 행할 능력이 없다고. 그렇다. 인간은 자신의 본능적 욕구 및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을 절제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이 그런 절제력을 가지고 살 수가 있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손학규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낼 수가 있는가?] 5. 飮酒文化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바로 그런 절제력을 더욱 消盡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자기통제가 안 되는 사람들은 결국은 자기에 있는 욕심의 노예가 되어 이웃을 파괴시키는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는 아편문화와 향락문화는 자기절제력을 더욱 망쳐 놓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런 것은 결국은 국가 공권력으로 통제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임의 결과로 가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그렇게 인간을 방종의 사회로 가게 하는 것이다. 日用할 양식으로 足하게 여기고 사치와 허용과 과용을 버리고 그 모든 것으로 이웃을 규모 있는 정도로 섬기는 사회가 된다면 그야말로 세상은 살기 좋아지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 가려면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過慾을 포기해야 하는 자기 절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자기 절제를 성경에서는 할례라는 말로 사용하는 데, 사람이 하는 것을 인간의 손 할레라고 하고 하나님이 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스스로 자기 할례를 할 수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 때만이 자기 절제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손학규는 자기 절제력이 뛰어난가?] 6. 하나님이 해주신다면 그야말로 예술적인 자기 통제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였고 예수의 교회를 파괴시켰고 예수의 제자들을 모두다 獄에 가두거나 죽이는 짓을 하였다. 때문에 저들은 자기들의 통제력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욕심의 노예들이 된 것이다. 권력을 가질수록 욕심은 극에 달하게 된다. 그런 욕심을 가지고 그 권력을 자기 욕심을 이루는 도구로 활용하게 된다. 전 인민의 살과 피를 기름 짜듯이 하여 자기들의 욕심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동업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동업자들이 약 5만 명의 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이 결국은 하나가 되어 자기들의 욕심의 노예가 되어 사악한 악마적인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참으로 염치가 없고 패괴하고 가증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저들의 저 사악한 욕심을 채우는 마인드로 가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통제력을 가지고 저들의 욕심을 割禮 시켜야 하는 것이다. 저들의 욕심을 통제하려면 우리들 자신의 절제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욕심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사람은 아가페 사랑에 종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손학규는 아가페 사랑의 종인가?] 7. 스톨게 혈육애의 노예가 아니라, 에로스의 노예가 아니라 필리아의 노예가 아니라 아가페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가페의 노예가 되는 길은 모든 人類愛요 이웃 사랑을 의미한다. 이웃 사랑을 위해 자기 절재를 하는 정신의 뼈가 굳세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손 割禮로 결코 자기 속을 다 통제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인간 심령 속의 통치, 곧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주시는 통제를 받아 들여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 곧 예수를 따르는 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가 따라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참된 信者가 되는 길은 예수를 인간의 힘으로 따르는가 아니면 성령의 힘으로 따르는가이다. 이 말은 자기 절제를 인간의 힘으로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통제로 하는가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적인 통제가 없는 사회는 곧 인간의 통제의 사회이고 그런 사회가 곧 위선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고찰하여 왔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김정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속의 절제력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절제력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본다. [손학규는 인간의 통제력을 어디서 구해서 정치할 것인가?] 8. 우리 속에 하나님의 절제력을 가지고 있다면 마땅히 김정일을 절제시키는 힘을 갖게 될 것으로 본다. 전 국민이 절제력이 뛰어난 힘을 갖는다면 그야말로 참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신앙의 자유를 통해 하나님의 절제력을 공급을 받을 때 비로소 밝아지는 사회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성경에서는 천국 곧 하늘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 국가로 가자는 말과는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국교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성령의 통제력을 가진 국민들이 된다면, 능히 자기 욕심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자기 속에서 督促하는 것에 의해 많은 수고를 하게 된다. 욕심의 독촉하는 것이 사람을 노예로 부려먹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속에 있는 욕심이 자기 자신을 또는 자기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노예로 부려먹는 세상은 참으로 苦痛으로 가득 찬 세상이라고 본다. 욕심의 노예가 되어 살다가 가는 인생을 통해서 남겨진 것은 없다고 본다. 진정으로 인간의 足跡은 성령의 통제를 받아 사는 족적을 남기는 사회만이 진정으로 인권회복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손학규는 북한인권회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9. 자기 욕심으로부터 自由를 얻는 자들은 진정한 自由人이기 때문이다. 남북에 걸쳐 있는 이 거대한 욕심의 세력을 割禮를 주는 길은 여러 가지라고 본다. 하나님 측에서 이런 세력을 그냥두면 全지구가 파괴되기 때문에 적당한 시점에 전쟁으로 제거해 버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할례 되는 것을 고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참 좋은 방법은 성령이 인간 심령 속으로 오셔서 각 사람을 절제시키는 통치를 함에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는 역시 역사적인 심판으로 청소하시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령통치가 성령의 통제력이 가득한 대한민국이 되게 하고 그 성령의 통제를 거부하는 세상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로 제거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하는 기도 내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 통제를 거부하는 것을 욕심으로 볼 때 자기 욕심을 능히 이길 자가 누구인가를 안다면 이런 말씀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자들이 되는 것도 또한 지혜로운 마음으로 본다. 그런 자만이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 國家를 리더해 갈 수 있는 指導者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때문에 탈당한 손학규의 敵은 김정일인가 아니면 자유대한민국인가를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http://onlyjesusnara.com/ http://www.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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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적이라고 해서 자유대한민국 편이되나?
자유대한민국을 배신하고 김정일도 배신하고 미국편이 될 수도 있는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