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지지율의 본질은 지적<知的>왕따 현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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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의은 제가 작성한글이 아니고 저자권은 신선생께서 가지고 있어요 .. ======================================================================================== 지적(知的) 왕따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지능이 떨어져서 따돌림을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 판단력이 뛰어나서 어리석은 대중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본 적이 있는가? 60년대 시골 초등학생들에게 있어서 읍내 극장에 단체로 영화관람 가는 날은 바로 축제일이다. 모처럼 영화를 보는 기분에 들뜬 촌놈들에게는 읍내 극장 안의 눈이 따가운 지린내도 황홀한 냄새일 뿐이었다. 독립군이 말을 타고 만주벌판을 가로질러 일본놈을 추격하는 장면이면 우리는 아예 일어서서 열광적으로 박수를 쳐댔다. 읍내 극장의 우중충한 스크린에 낡아빠진 필름을 거쳐서 비쳐지는 화면은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지만 일 년 가야 볼 기회가 한두 번에 지나지 않는 촌놈들에게는 만주벌판을 달려가던 독립군의 위용이 몇날 며칠 동안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환상적인 장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몇 번이고 곱씹어보는 차원에서 언제나 양지바른 곳에 모여앉아 단체영화 본 감상평을 주고받았다. ‘독립군이 말 타고 달리능거 있제? 그거 필림을 빨리 돌리마 된다 아이가.’ ‘아, 맞다. 천천히 걸어가는 거를 촬영해갖고 극장에서 필림만 빨리 돌리마 된다.’ ‘그래. 나도 우째 저래 빨리 달리능공 싶었다. 그라마 되것네!’ 순진한 촌놈들이 생각하기에도 독립군으로 분장한 고마운 영화배우가 실제로 말을 빨리 달리다가 혹여 다칠 것이 염려되었던가? 그들의 염려를 잠재울 그럴듯한 메카니즘으로 필름의 영사속도를 변수로 발견한 셈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엔 그들의 판단은 틀렸다. 말이 걷는 동작과 달리는 동작은 다르다. 그것은 필름의 영사속도로도 조작할 수 없는, 별개의 문제였다. 걸어가는 말이 어떻게 먼지구름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우째서 필림을 빨리 돌린다고 걸어가는 말이 달린단 말이고?’ ‘우째 말이 안 되노? 생각해봐라.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도 필림을 빨리 돌리마 빨리 걸어가더라 아이가?’ ‘아이다. 실제로 배우가 말을 빨리 달리는 거를 촬영해야 영화에서도 그래 된다.’ ‘야, 임마! 택도 없는 소리다. 필림만 빨리 돌리마 되는데 머할라고 말을 빨리 달릴기고? ‘니가 택도 없는 소리다. 말이 걷는 거 하고 뛰는 거는 모양이 다르다. 자, 잘 바라. 내가 이래 걸을 때는 다리 모양이 이렇지마는 빨리 뛰면 정강이 쪽이 많이 구부러진다 아이가?’ ‘임마 이거 웃기네? 말하고 사람하고 같나?’ ‘너거가 웃긴다. 천천히 걸어가는 말인데 어째서 먼지가 생기노?’ ‘필림을 빨리 돌리마 말이 뛰가고 말이 뛰마 먼지가 생긴다 아이가? 임마 이거 바보 아이가?’ ‘맞다. 바보다.’ ‘전에도 이상한 소리 하더마는.... 돌안놈 아이가.’ 내 반론의 논리적 타당성을 이해 못하는 아이들로부터 나는 한순간에 ‘돌안놈’, 즉 미친놈으로 취급되었다. 당시 60년대 시골아이들이라 한 아이를 집요하게 왕따시키는 못된 버릇은 없었지만 요즘 같았으면 틀림없이 나는 왕따를 당했을 것이다. 13~4 년 전 쯤이었을 것이다. 부전자전, 아니 내 딸년이니까 부전여전이 되겠다. 하는 짓이 나하고 닮아서 은근히 신경이 쓰이던 중이었는데 어느 날 마침내 중 3짜리 딸년이 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한 분풀이를 나한테 쏟아 붓는다. ‘아빠, 은하철도 999, 그거 순 엉터리 아냐?’ ‘왜 그래? 인기가 얼마나 좋은 만환데?’ ‘인기 많으면 뭘 해? 아무리 만화라도 최소한의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할 거 아냐?’ 문제가 생겼다. 만화를 과학적 논리로 따지고 있다. 딸년이 보기엔 무중력 상태의 우주공간에다 철도를 건설하는 발상이 너무 웃긴다는 것이었다. 무중력이면 위아래 개념이 없는데 어떻게 기차가 철로 위를 달릴 수가 있으며 차라리 철로가 없어야 더 빨리 비행할 수 있는데 뭣 때문에 저항계수를 높이는 철로를 설치하느냔 얘기였다. 승객도 철이와 메텔, 차장 달랑 셋밖에 없는데 무슨 놈의 객차를 그렇게 많이 달고 다니느냐, 진공상태인데 증기기관차의 석탄은 어떻게 태우며 객차의 허술한 유리창이 어떻게 공기를 차단할 수 있느냐....... 불만에 가득 찬 딸년의 의문은 봇물처럼 쏟아졌다. 필시 이런 의문을 또래들한테 피력했다가 따돌림을 당한 눈치였다. ‘만화니까 그럴 수도 있잖겠니?’ ‘아빠도 이상해. 아무리 만화라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과장을 해야지...... ’ 사실 딸년의 주장이 옳다. 은하철도 999가 틀렸다. 만화적 상상이라도 허무맹랑한 과장은 올바른 상상력이 아니다. 그러나 딸년 주위에 동조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정곡을 찌르고 있는 딸년의 견해는 이단(異端)으로 취급되어 고독이라는 후유증만 남게 된다. 나는 안다. 어린 나이에 이런 종류의 고독을 감당하기엔 얼마나 쓰라린 것인가를........ 오늘도 나는 고향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술집에 걸려있는 TV에서 북한에 중유 5만 톤을 제공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러자 한 녀석이 탄식을 한다. ‘참, 노무현이도 큰일이야. 맨날 퍼주기만 하고...’ ‘못사는 형제, 돕는 셈 치면 안 되나?’ ‘어이, 술맛 떨어지구로 와 이라노? 정치 이바구는 안하기로 했다 아이가? 한 녀석이 서둘러 입을 막는다. 언젠가 하는 바람에 하며 대판 싸운 이래 다시는 정치 얘기는 하지 않기로 묵계가 되어 있다. 중소기업체 대표에다 공대교수, 건설회사 상무, 회계감사 등등의 직책을 갖고 있는 고향친구들은 한나라당 일색이다. 나 혼자 처럼 노무현 지지자다. 그렇지만 고향친구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니다. 운명처럼 어울려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인맥이기도 하다. 그 옛날, 필름을 빨리 돌리면 걸어가던 말이 쏜살같이 달린다고 주장한 것만 제외하면 사람들은 다 좋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필름의 영사속도와 말달리는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력을 지닌 그들의 한계다. TV에서 앞바퀴가 없는 상태로 동체 착륙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비행기 앞부분이 활주로에 부딪혀 불길이 번쩍인다. 친구 놈들은 정신없이 화면을 주시하고 있다. 문득 한나라당 지지자들인 놈들의 사고방식을 테스트하고 싶어졌다. ‘어이, 너거들. 함 물어보자. 비행기 발통에 구동력이 있것나 없것나?’ ‘구동력?’ ‘비행기 발통이 승용차 전륜구동처럼 자체 추진력이 있나 없나 이 말이다.’ ‘그거야 당연히 있능거 아이가?’ ‘있응게 비행기가 활주로까지 굴러가지.’ ‘그런 거로 말라고 물어 보노?’ 예상했던 대로다. 대부분이 비행기 바퀴에 구동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맹목에 가까운 그들의 인식에 논리적 씨앗을 심어줄 차례다. ‘추진력이야 비행기 엔진으로 대신하면 된다 아이가? 발통에다 별도로 구동장치를 할 필요가 있나?’ ‘무신소리 하노? 비행기 엔진은 하늘로 날아갈 때 쓰능 기고, 땅 우에서는 당연히 발통 힘으로 가야지.’ 황당한 논리다. 무거운 비행기를 하늘로 들어 올릴 정도의 엔진이면 땅위를 얼마든지 달릴 수 있다. 바퀴는 단지 구르는 기능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놈들의 사고방식은 그런 논리를 따지려 들지 않는다. 한 마디로 논리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 결정타를 먹일 차례다. ‘비행기 만들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무게를 줄여야 되것제?’ ‘그렇지.’ ‘그 큰 비행기를 바퀴 힘으로 굴러가게 할라면 대형 화물차용 디젤 엔진을 또 하나 더 얹어야 될 낀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이 오딨겠노?’ ‘어허, 이 친구 참 답답하네! 비행기 무게 자체에 이미 발통엔진무게가 포함돼 있다카이.’ 이로써 논쟁은 끝났다. 인식의 출발부터가 다르다. 논리적 절차를 거치는 설득은 불가능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진실을 직접 알려주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야이, 친구들아. 비행기 착륙보조 장치인 발통에는 본시 구동력이 없다. 너거가 알고 있능가 싶어서 함 불어본기다.’ 그러자 놀라운 사태가 벌어진다. 고향친구이긴 하지만 일개 선생이 복잡한 항공기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냐는 선입견을 깔고서 맹렬한 반격을 해댄다. ‘그거는 니가 모르는 소리다. 비행기를 타도 내가 니보다 훨씬 많이 타 봤는데 활주로에 진입할 때와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엔진 감각이 확실히 틀린다. 니가 잘 못 알고 있능기다.’ ‘그 큰 비행기에 바퀴 추진 장치하나 없것나? 씰데없는 소리말고 술이나 묵자 마.’ ‘그래, 술이나 받아라. 백지 그런거 따지봐야 피가 되나 살이 되나.’ ‘..............................’ 할 말이 없다. 물리적 사실이 이렇게 손쉽게 매장당하는 판국에 역사적 진실이야 오죽하랴.문득 외롭다는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나 혼자 외로운 돛단배 신세다. 2002년 노무현의 승리는 무엇이었던가? 지적 왕따의 종식이 아니라 시작이었단 말인가? 2007년 대선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벌써부터 이명박이 토목관계자 출신이라서 운하를 팔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가 떠돌아다닌다. 반도체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던 전두환 노태우 시절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들이 도체와 반도체를 제대로 구별이나 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노무현의 고독은 지식인의 고독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은 지적 왕따와 비례한다. 2007. 3 필명: 신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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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또라가 또 찿아오지 또오너라 안오면 재미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