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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을 해방하는 불씨는 남아 있는가?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1 270 2007-05-19 10:41:34
1.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웰빙인가? 보다 나은 몸보신과 그에 걸맞는 格을 누리는 것이 웰빙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선전선동에 익숙하도록 느낌에 충실하게 이끌어 가는 정책자들의 마인드가 가득하다고 본다. 부요의 축적과정의 검증절차가 없는 이 사회의 기준은 무조건 돈을 만지고 스스로 품격을 높이는 기준이 된다는 데 있고, 그들이 이름 하여 나름대로 몸보신과 그에 걸맞는 웰빙에 주력하는 것으로 사회풍조를 만들어간다는 데 있다고 본다. 사람이 돈을 갖고자 하는 목적이 아마도 그런데 있다면, 우리 사회는 이기적인 존재들의 자기구현의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인간이 사는 이유의 성공이라면, 인간은 과연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생각하고 되묻게 된다. 인간이 태어나서 자기 존재만을 영화롭게 하다가 가는 것이 그 전부라면 결국 모든 것의 틀은 의미가 없게 된다. 인간 속에 있는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점화된다고 하여도 그는 곧 그 사랑의 대상을 섬기는 奴隸가 된다는 데 있다.

2. 奴隸는 이기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리비도(Libido)的인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진 자들은 자기에게 奴隸노릇하며 사는 것이다. 그들은 극도의 이기심에 사로잡혀 인생을 살게 된다. 그에게서 가족이나, 자식이나 친구나 또는 국가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일 것이다. 오로지 자기 하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파괴시켜가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존재되는 한에는 분명한 혼돈은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는 질서를 파괴하고 가족을 파괴하고 사회를 무너지게 하고 국가를 망하게 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야말로 인간의 삶이 웅변하고 있는 사랑의 내용들, 다른 종류의 사랑들을 비교 검토하면서 사랑의 가지는 특수한 능력을 살펴 내기를 거부하는지도 모른다. 이는 인간이 자기가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自由意志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 자유의지를 통해서 보다 더 크게 사랑하라는 권면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진정한 부자, 의로운 부자는 그만큼의 영광을 얻어야 하는 사회의 공평한 잣대가 서야 한다고 본다.

3. 그 잣대의 치수는 이웃을 부자 되게 하면서 자신의 부자가 되는 방법과 그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돌배기라는 말은 이웃을 망하게 하며 자신을 부자 되게 하는 장사치를 의미한다고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만큼 품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정당하게 돈을 번 자들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무참하게 짓이기는 세력들이 있다면, 그들은 곧 사회의 참된 가치를 망가지게 하는 반시장적인 존재들인 것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검은 경제라는 말이 있는데, 이웃을 망하게 하고 국가를 망하게 하고 무법적으로 무조건 돈을 가지는 행위를 말한다고 定義한다면, 그들에게 이웃은 착취와 탈취와 사취와 갈취의 대상일 뿐일 것이다. 그런 대상을 통해서 우리는 분명하게 보고자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곧 김정일類라고 하는 것을 정의하자는 말이다. 그들의 모든 삶의 철학은 오로지 이웃을 파괴시키기 위해 선한 명분을 가지자는 수법이라고 하는 것에 있다. 그들은 이미 역사에서 그 실체가 드러난 공산주의 이념과 그 철학을 그 腹心에 깔고 있다. 그들은 그런 선전선동으로 천하민심을 노략하면서 아울러 그 민심을 갈취, 탈취, 사취, 착취에 서슴없다.

4. 이는 곧 이웃을 자기들의 탐욕거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항상 마귀는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의 목표를 이웃을 파괴시켜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골몰하는데 있다. 어떤 식으로 부요를 축적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사회로 만들어 감은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참된 가치는 이웃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실천하는 이웃 사랑에 두어야 한다.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이웃을 돕고 살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正義와 그 正義를 이루는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의 인식을 갖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깨달음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정도의 깨달음은 늘 받는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한다고 하는 것은 別個의 문제로 남아 있다. 이것이 곧 국가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빈곤하면 할수록 이를 사막과 황무지, 거친 들로 비유한다. 사회가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을 스스로 가질 수가 없다면 그 사회는 이웃 사랑이 메말라가는 것이다.

5. 사막에서는 살수 없는 모든 생태계는 없어지고 그런 사막에서만 사는 흉악한 존재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국가의 위기라는 인식을 가져야 비로소 구국의 주체가 된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적 명령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내는 것과 그런 명령을 인식하는 것과는 별개로 돌아가고 있는 인간 구조적의 모순이 바로 그런 문제를 불거지게 한다. 그런 문제는 곧 국가를 치료하려고 일어난 자들의 몫이다. 물리치료적인 의미에서의 행동은 굳어진 다리를 자주 마사지하고 운동을 시켜 능히 걸어갈 수 있도록 숙달시키는 길을 선택하는 것일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메말라가는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은 전국가적으로 지도자가 앞장서서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고 그 다양한 사랑의 대상들을 위해 작은 손짓이라도 내밀어 사랑하게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곧 진정성의 고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의 공급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고 로드맵이다. 성장과 분배라고 하는 것을 김정일 주구들이 외쳐 전가의 보도처럼 하여 자본주의 내용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고 아울러 혁명의 기지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때문에 成長과 分配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좀 조심스럽게 보여 진다.

6. 김정일의 주구들의 주창하는 분배라는 말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인간이 이웃을 사랑을 하는데 있어 국가적인 힘으로 하자는 강제성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의도적인 포석으로 보여 진다. 이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탈취, 사취, 갈취, 착취하자는 말이다. 결국 국가적인 힘이 있는 자들(김정일 수령독재)이 모든 이웃의 행복을 착취, 갈취, 사취, 탈취해가는 것일 뿐이다. 이웃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고 한다. 사랑이 순수할수록 그 사랑의 생명력은 건강하기 때문에 아주 좋은 불씨가 되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교회는 하나님을 섬긴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는 하나님의 순수사랑을 공급받게 된다. 하나님의 순수사랑을 공급받게 된다면 그들은 모두가 순수사랑의 불씨가 된다는 말이다. 그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순수아가페 사랑이 교회에 부어지면 그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 모두 그런 순수사랑의 불씨가 된다. 그런 불씨가 자기 삶을 태워 이웃을 위해 헌신하게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감화 감동이라는 것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강력한 引火點이 발생하게 되어 생명이 생명을 낳고 불이 불을 낳는 효과를 갖게 한다. 그렇게 해서 사랑은 발생하게 된다.

7. 드디어 거룩한 화이어스톰이 발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북한주민은 악마의 손에서 해방된다. 만일 우리가 받은 사랑이 건강하다면 그런 건강이 있는 만큼 생명력이 강할 것이고 그 만큼 자기를 희생하게 할 것이고 그만큼 감화감동력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한국적인 상황을 진단해야 한다고 본다. 과연 사막화가 얼마나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볼 때 아주 심각하다고 봐야 한다고 본다. 그런 심각성이 거기에 있다면 이 땅에 아가페 순수사랑의 샘이 필요하고 源泉이 필요하고 그 샘에서 늘 흘러나오는 시내가 필요하다는 말이고 그런 것들이 모아져서 거대한 江이 되고 거대한 潮流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이웃을 위해 부자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가치를, 그의 소득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한 말씀이다. 이런 기준을 고집하고 사는 사회는 결코 물가인상을 고집할 이유가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국가의 모든 경제적인 부채들은 김정일의 결사옹위하려는 자들의 공작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참된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잔혹하게 착취, 탈취, 사취, 갈취하는 김정일을 돕고자 안달하는 자들이 가득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8. 사실 김정일類를 많이 만들어 낼수록 김정일의 만행을 가려주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번에 某財閥의 문제로 한동안 매스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하는 것은 사회정의가 있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김정일의 만행을 덮어 가려는 술책이 더욱 돋보이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고 본다. 북한주민들이 당하고 있는 이 처절한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는데, 언제까지 우리 사회가 그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각기의 이기심 속에서 헌법에서 주적으로 여기는 김정일 집단을 변호하고 도와주는 죄를 짓고만 있을 것인가를 묻고 싶어진다. 그것이 곧 미련한자들이고 그것이 패려한 자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본다. 이는 인도에 대한 패려(悖戾)요, 인간에 대한 悖戾요, 이웃을 사랑하며 살라는 헌법에 대한 悖戾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悖戾임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나님이 주신 불씨가 큰 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고, 전국적으로 가득한 교회당에서 그런 불씨가 세상을 달구는 역사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하나님과 동질성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것인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예수님의 길임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9. 북한 주민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고, 그들의 당하는 모든 고통을 외면하면 안 되는 절박한 인권의 문제요, 인도의 문제라고 본다. 누가 만일 당신의 자녀를 인질로 삼아 모든 행복을 착취, 갈취, 사취, 탈취해간다면 강탈한다면 당신은 심각하게 絶叫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는 2300만 명의 생명들은 그와 같은 처절함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들 중에는 수용소에 끌려가서 생사의 岐路 的인 고통을 받고 있는 자들이 약 20만 명 이상일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이런 심각한 인권파괴를 보면서도 외면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 존재인가를 되묻고 싶어진다. 향락을 위해 산다면 수채 구멍을 찾아 배설하는 것으로 낙을 삼는 것인지, 목구멍을 위해 산다면 결국 화장실을 찾아 배설하는 기쁨을 사는 존재일 뿐일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짐승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짐승들은 인간을 사랑하기에 자기 생명을 인간에게 주는 것이라는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바라건대는 어서 속히 모두는 일어나 북한 주민의 慘憺한 인권유린이 거대한 태산보다 더 많고 태평양보다 더 많은 피눈물의 증거가 있다는 것을 목도하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아가페순수사랑 能力을 얻기 위해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를 渴望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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