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천하냐? 북한주민 해방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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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이런 말씀은 주는 자의 힘과 넉넉함을 表現한 말로 봐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이 다함이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함이 없는 솟아나는 것으로 이웃을 기쁘게 해주는 자는 꽃보다 아름다운 人生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不義한 재물로 친구를 삼으라고 하셨다. 축재과정에서 범죄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었을 지라도 나눠주는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으로 보인다. 이는 인간에게 회개의 길을 열어 주신 것으로 보여 진다. 범죄로 치부한 후 잘못을 깨닫고 일생을 贖愆祭를 드리며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며 사는 자들의 모습을 그린 말씀으로 보여 진다. 우리가 가끔은 미국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범죄로 얻어진 재물을 사회안전망에 익명 기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문화가 어쩌면 범죄의 확산을 막아 주는 것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그것을 목표로 하여 범죄 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인간이 돈을 正義롭게 벌었을 지라도 虛浪放蕩 하는 자들과는 對照되는 돈의 사용을 보게 된다. 돈을 제대로 잘 사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누가 더 義로운가하는 문제로 우리사회는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고민이 없는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 가? 그것은 돈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2. 젊은 날에 범죄로 돈을 모았다가 후에 그것이 不義한 방법인 것을 깨닫고 일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그 재산을 다 베풀며 사는 자와, 젊은 날에 정의로운 방법(여기서 정의로운 방법은 하나님의 정의가 아니라, 인간의 통속적인 정의를 말함)으로 돈을 모아 치부한 후에 자기 행복만을 추구하는 자와 비교하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고민이 없다고 본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富者들의 가야할 도리가 상실되거나 덮여져 가는 것일 수도 있게 하기 때문이다. 구제를 하는 것이나, 남에게 베푸는 것은 투자라고 보는 것은 성경의 선언이다. 남에게 베풀거나, 갚을 수 없는 가난한 이웃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께 꿔주는 것이고, 또 그것이 때가 되면 그 사람의 부요의 근원이 되어 상상할 수 없는 富饒를 가지고 들어온다고 한다. 돈을 쌓아 놓거나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만이 투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은 부요의 재생산의 투자라고 하는 말씀으로 본다. 때문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잔치를 하면 되갚을 수 없는 가난한 이웃을 초대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3. 이런 말씀은 결국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부요를 사교적으로 사용하는 파티의 無益性을 말씀 하신 것으로 본다. 부자들은 오늘은 네가 내라. 내일 내가 내마. 하면서 서로가 주고받는 식사파티가 자주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주고받기 식으로 인생을 즐기다가 죽어가는 것이라면, 그들의 부요가 사회적인 消費促進의 결과는 있을지라도 가난한 이웃들을 직접적으로 돌아볼 수는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을 하셨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 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것이 부자들의 남은 삶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 가이다. 부자들의 소비가 촉진되어야 경기가 풀리는 것은 좋은 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들만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고 주님은 지적하고 계신다. 부자의 사회적인 책임은 단순한 소비촉진만이 다가 아니라고 하신 말씀이다. 韓國 안에 오늘 날의 부자는 김정일을 돕는데 全力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결국 부자를 돕는 것이고 결국은 자기들끼리 호화로이 연락하는 것일 뿐이다. 김정일도 비자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액수가 드러난 것만도 40억불이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4조원정도이다. 이자가 북한 주민의 피와 살을 뜯어다가 축재한 내용이 거기에 있다. 4. 이런 부자에게 왜 대한민국의 창고를 열어 후하게 베푸는지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본다. 그렇게 뜯어다가 김정일은 많은 선물을 사다,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고 선물을 준다.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고 자기 세력의 기반들에게 너그러움을 준다. 반대로 전 주민을 통째로 짓이겨 모든 생명과 부요와 행복과 자유를 剝奪한다. 자기를 神으로 영화롭게 하고 스스로 높여 모든 자들 위에 군림한다. 이런 자들이 기획 살인 곧 350만 명을 굶겨 죽인 짓을 서슴없이 하였다. 이것이 가진 자들의 횡포라고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자기들의 부요를 자기들의 향락에 다 쏟아 넣는 행동의 죄악성을 주님은 지적하고 계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본다. 5.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人生은 짧다. 그 주어진 날 동안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 전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하는 것을 認識하자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삶의 목표가 사랑이시라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부요는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의 원칙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보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누구든지 모름지기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서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자기들의 가지고 있는 재물의 규모에 따라 돕고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順服해야 한다. 6. 함에도 그렇지 않게 되는 경우가 非一非再하다. 인간의 부요의 목적은 자기들의 향락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고 본다. 함에도 자기들의 향락에 일생을 다해 쏟아 넣는다. 그것은 곧 큰 죄악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이 곧 영생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런 영생을 얻지 못하는 자들은 버려져 영벌에 처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의 存在目標에서 벗어 날수 없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죽어서 심판을 받는 것도 아주 무서운 일이지만, 땅에서 부자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을 시에 발생하는 自業自得도 무시할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인식의 계몽을 위해 죽은 사람들이 대거 나와서 말한다고 해도 인간의 욕심은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 한다.]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 하니 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라고 하신다. 이런 말씀은 그렇게 봐야 한다. 결국 부자가 돈을 잘못 사용하였다면 멸망한다는 것이다. 7. 이는 하나님의 존재의 목표가 사랑이라고 할 때 인간의 존재의 목표가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목표를 삼아 존재하시는 분이시라고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인식은 인간이 가야할 목표에 대한 覺醒이기도 하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표이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표를 召命 받고 使命으로 받아 일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땅의 부자들이 이웃 사랑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들이고, 그들이 비록 예수를 믿는 자들이라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다는 것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두 다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8.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 땅에 참된 부자들은 북한주민들의 苦痛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모든 재력을 다해서 중국과 각 처에 떠도는 탈북 민들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본다. 김정일의 손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북한주민을 직접적으로 돌아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것이 아주 중요한 삶의 목표가 되는 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으로 본다. 이런 것은 매우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인간은 선택의 自由意志가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다. 하나님은 그 권리를 바로 사용해서 북한주민들을 돌아보라고 하신다. 그 선택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전쟁으로 김정일 맛을 볼 것인지, 북한주민을 돌아보아 김정일을 무너지게 하고 북한주민의 해방을 얻어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http://onlyjesusnara.com/ http://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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