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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을 사랑하는 분위기는 만들수록 좋다.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386 2007-05-31 09:28:27
1.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지혜의 언어를 구사하고 지혜의 행동을 구사하고 지혜를 알아듣고 그에 걸맞는 격이 맞는 행동과 조치를 해내는 자가 아닌 것이 미련한 자라고 볼 때 그런 자들은 모두다 아버지의 재앙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런 말은 언뜻 보기에는 아들과 아비의 상관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아들의 미련한 짓이 아비의 재앙이 된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의미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아비라고 하는 것은 아들의 근원이다. 근원의 결과는 아들이다. 아들은 그 아비의 정체를 행동화 한다는 의미로 생각해 본다. 아비의 정체가 그 아들의 행동으로 보자는 말이다. 아비는 사랑이다. 아들은 미움이라고 한다면 아비의 영광이 아니라 재앙이다. 기독교의 진리는 아비와 아들의 관계로 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아들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은 사랑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셨다. 하여 예수는 하나님의 얼굴인 형상이 되신 것이다.

2. 아버지는 아가페라고 하는 신성의 사랑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에게는 그런 아가페 외에 다른 사랑은 없다. 전혀 없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일컫는다. 아가페 외에는 질이 다른 사랑이 전혀, 전혀 없기 때문에 세번씩이나 거룩하다 찬송을 받으신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을 받으신다. 그만큼 그분이 가지고 계신 신성의 사랑은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다. 그렇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분의 요구를 들어 받들어 순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와 약함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와 하나님의 신성을 기름부음 받은 것으로 그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 사랑의 몸이 되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호칭한다. 그것이 기독교의 내용이다. 그것이(하나님의 본질)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사랑을 행했다고 하고 그 사랑을 온전히 이루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런 사랑의 몸으로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인간을 사랑하는 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이시다. 전 세계인간을 구원하신다는 의미이다. 그 아들의 피로 용서하심과 아울러 아들의 길 곧 하나님의 본질인 신성 아가페의 사랑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처럼 실천하는 인간들이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인간들이 나온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의 의미가 없어지는 재앙을 겪게 된다. 교회가 그런 인간들을 무수히 배출한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에서 짓밟힘을 당하는 시대가 오게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짓밟힌다고 하였다. 소금이 없으면 생선은 곧바로 부패하는 시절에 나온 말씀이다. 때문에 세상은 부패를 막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가 없다면 세상은 사악해진다. 사악한 것은 곧바로 교회를 짓이겨 무너지게 한다.

4. 그것은 하나님의 기업의 망함을 의미한다. 때문에 재앙을 피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비의 재앙이다. 아가페의 확산이 아니라, 인간의 사악한 사랑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들이 없는 자는 아버지도 없고 아버지가 없는 자는 아들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아비로 정의하고 그 행동을 아들로 정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런 이치가 곧 기독교의 의미 곧 진리와 핵심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진리와 그 핵심은 아버지의 본질을 기름부음을 받아 행동하는 양심을 원하고 있다. 그런 자들이 한국기독교 안에 충만하다면 북한의 인권문제는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주민의 해방이 이뤄졌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한결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온다. 그런 자들의 한목소리는 이러하다. 하나님은 북한주민들을 인해 심각하게 아파하신다고 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입장을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된다. 많은 자들이 하나님과 교통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본질에 접근치 못하는 루트를 즐겨찾기 한다.

5. 진정으로 영성이 있는 교통은 스위치가 아니라, 본질의 조우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자들은 모두가 다 사랑의 노예가 되어 인간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본질을 만난 자들은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대접하듯이 인간을 대접한다. 이런 내용은 인간존중의 내용이고 인권의 의미이다.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는 아직 초보에 있던지, 아니면 곁길로 갔던지 아니면 아직은 하나님의 본질을 만나지 못한 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한다. 많은 자들이 북한주민과 북한의 성도들이 당하는 환란과 핍박과 참담한 고통을 외면하고 있고 부동산으로 치부하고 그것으로 자기들의 부요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독교라고 한다면 고등종교라고 할 수가 없는 속물근성이 있다고 본다. 참으로 성경에서 제시되고 있는 기독교는 하나님의 본질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받는다. 그것을 두 가지 양식으로 표현한다. 하나는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와 또 하나는 예수로 말미암아이다. 한분 예수로부터 나오는 이 두 가지 통로로 인해 기독교는 시작된 것이다.

6. 그의 피는 용서의 사랑을 말한다. 그분의 용서의 사랑을 받은 자는 마땅히 그분의 지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그분으로 인해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교는 이제 눈을 뜨고 하나님의 본질의 사랑에 접근해야 한다. 그런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받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실천하여 국내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성령의 지상명령이다. 이를 받들어 섬겨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부동산 붐에 얹혀 자기들의 소득을 즐거워하며 가난한 자들의 한숨을 만들고 눈물을 만들고 있다. 이것은 진정한 축복이 아니다. 진정한 축복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축복은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 축복이고 그런 것을 실천하는 것이 행복인 것이다. 이런 강복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헌신의 선택을 마다하는 것은 합당치가 않다고 본다. 오늘날 많은 여자분들이 자기들의 아픔으로 인해 절규하는 것을 보게 된다.

7. 2차 나르시시즘은 리비도的이라고 한다. 그런 자기 사랑에 빠지면 편집증적인 자기과잉보호 집착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그런 심리에 빠지게 되면 이웃의 아픔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아픔에 충실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데 충성된 것이라면 이웃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된다. 더욱 2차 나르시시즘의 리비도에 빠진 자라면 그 주변의 모든 자들을 다 파괴시켜 자기애를 충족해 가는 것이다. 그런 여자들은 결국은 그런 언어의 함정에 빠져 그런 환각, 환청, 한상 속에서 살게 되는 불행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웃을 모두가 다 적으로 보게 되는 심리이다. 이런 심리가 가득한 여자들이 이 한국 땅에 가득하다면 결국 모든 가정은 가정불화 그 이상으로 아비규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투는 여인은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다툼은 단순한 언어불통으로 다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생존을 위해 자기 과잉보호를 위해 주변의 모두를 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다툼이다. 참으로 끔직한 다툼의 시작이다.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한 면은 없지 않다.

8. 물방울의 힘은 세월의 여류와 함께 단단한 바위도 구멍을 뚫게 한다는 의미로 생각하여 본다면 결국은 관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인의 집요한 노력은 반드시 그 결과를 얻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단단한 주변의 결속이라도 그 여자의 반항이 결국은 그 단한 조직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2차 나르시시즘의 리비도에 빠진 여자들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 나라의 가족 사회가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 사회의 붕괴는 결과적으로 그 사회의 붕괴가 이어지고 그런 붕괴는 결국 서로 잡아먹는 세상으로 간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런 것은 결국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고 이혼율이 높아질수록 잠재 범죄지수가 늘 잠복되어 있는 불안한 사회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때문에 지도자는 반드시 여성의 이런 자기애적인 정신적 질병에 빠지지 않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여인들의 가지는 모든 것을 승화시켜 나가는 방식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소경된 지도자나, 아니면 김정일의 주구들은 이를 방치하고 오히려 부추긴다. 결과적으로 가정을 짊어지고 가는 남자들이 그런 일에 시달리기 때문에 국가적인 위기를 돌아 볼 틈이 없게 된다.

9. 더욱 북한주민의 고통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자기가 처한 환경이 곧 지옥과 같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 땅의 남자들을 건져 내야 한다. 그것은 여자들을 건져 내는 것이 그 중요한 내용이다. 그것이 결국은 우리가 보기에 아주 중요한 선택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애국의 방법이고 구국의 지름길이라고 하는 것을 아울러 강조하고 싶다. 이는 북한주민을 사랑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자기애에 자기 사랑을 위한 구실을 만들 때 늘 남을 비교하게 한다. 그 비교의 다양한 상황을 그의 대화 속에 대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것은 곧 북한주민의 처절한 고통이다. 그런 고통 속에 빠져 있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보고 자기를 비교해 보는 것의 기회를 줌으로 자기 연민에 빠지는 일이 우선은 지체가 된다. 계속 그런 환경 속으로 가게 되면 여인들은 결국 승화된 선택을 하게 한다. 자기 아픔보다 타인의 아픔을 더 중시 여기는 세상을 열어 가는 것이다. 결국 가정은 평안해진다. 여인이 남아도는 에너지를 북한주민과 탈북 민들에게 쏟아 붓는다. 자기사랑을 위해 과잉보호하는 에너지를 북한 주민에게 쏟아 붓는다.

10. 그런 여인의 심리 곧 파랑새를 추구하던 심리가 북한 주민의 아픔을 덜어 주려는 애정으로 교체된다. 그것이 승화이고 그것이 여인을 위대하게 한다. 거기서 비로소 자기를 찾게 되고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여인이 보는 거울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의 말이기도 하다. 여인들이 사용하는 거울은 북한주민들이 혹독한 참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인들 중에 성경을 날마다 보는 자들이 있다. 성경은 성경을 거울로 비유한다. 거울을 보면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처럼 성경을 보면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보게 된다. 거기다가 북한주민의 참담함을 보면 자기의 현실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가치의 발견은 그녀로 하여금 위대한 인권투사가 되게 하는 승화를 만들어 낸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북한인권 문제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운동으로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는 국가위기를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출구이고 그런 것으로 얻어지는 것의 열매는 셀 수 없는 이익을 가져온다. 무엇보다 인간답게 사랑의 성녀들이 가득한 세상을 열게 된다는 것에 모든 남자들은 깊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어주시는 사랑을 입자. 그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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