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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이 統一될 수 있다고 하는 자들에게...
REPUBLIC OF KOREA 구국기도 0 287 2007-08-20 17:33:47
1.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하게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훈련을 받게 된다면, 그런 사람은 최고의 훈련을 잘 받아 들여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 사람을 잘 섬기는 기술이 중요하다. 기술의 습득을 훈련이라고 하고, 그것을 전수받게 된다면 훈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고 그것의 습성화는 길들여졌다는 것이나 길들여져 간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사람은 누구에게 길들임을 받는가가 아주 중요하다. 그를 길들인 환경이나 조건이 또한 중요한 것임은 두말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위에 제시한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제하고 훈련시켜 하나님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훈련을 인간에게 직접 내리신다고(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 하는 말씀이다. 인간도 인간을 훈련하여 길들이고자 한다. 또는 고명한 자의 내제자가 그의 교육과 훈련의 길들임을 받게 된다. 이는 그 스승의 만족도를 채워야 비로소 전수를 받은 것이다. 고명(高名)한 분의 기술이전의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의 기술이전이 완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인간을 섬기는 사랑의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간의 목표라고 본다.

2. 그런 인간의 사회를 누가 더 잘 섬기는가를 통해 그 진가가 대접을 받는 사회로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나라라는 개념(槪念)은 하나님에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만족도를 따라 길들여지고 그런 훈련을 받은 자들이 모여 살고 그런 기술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곳이라고 한다. 때문에 천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최고의 지성에 의해 길들여지는 곳이 선진국이라고 한다면 천국은 그러한 개념으로도 들여다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타적 사랑으로 길들여지는 사회는 훈련의 주체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인간인가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인간이 모방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흉내는 낼 수는 있어도 그 본질적인 진정성의 의미는 빈약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훈련할 때 하나님의 본질을 인간에게 부어 주시고 그것으로 훈련을 받게 하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만족도에 차는 인간을 배출해내는 것이다. 이를 성경에서는 중생(重生)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하나님의 손길에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인간 구원과 구제의 멍에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3. 참된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높은 사랑의 요구를 이루는 능력이나 방법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손에 의해 길들여져 숙달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해 자기희생을 가능케 하는 세상을 연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훈련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훈련을 거부하고 인간의 훈련을 통해서 고도(高度)의 경지에 오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보실 때 심히 미약(微弱)한 짓이고 하나님은 이를 반역으로 보시고 있다. 하나님의 인간 안팎의 통제는 통제받는 사람의 자유의지의 선택을 기초로 한다.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을 겸손이라고 한다. 그런 겸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훈련이 그에게 본격적으로 임하게 되고 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만족도를 높이는 훈련에 의해 길들여진다. 그런 자들이 고도의 기술적인 이타적 사랑을 구현하게 된다. 사람을 살리고 행복하게 하고 자유와 기쁨이 넘치는 사랑의 세상을 연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서로가 서로를 물고 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구제하는 것의 긍휼과 자비와 은총에 있는 것이다. 자기만의 이기적인 세상을 여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利他的)인 사랑의 세상을 여는 것이다.

4. 이런 것으로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그 만큼의 보응(報應)이 온다고 한다. 그것은 번영(繁榮)(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다. 하나님의 주시는 훈련으로 그 본질을 통해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열면 그 사회는 번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김일성에게 교육을 받은 자들은 사람을 뜯어 먹는 기술을 전수 받았기 때문에 그 사회의 보응은 몰락(沒落)(가난과 수치와 사망)이다. 사실 돈을 만지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기술이라고 하지 않는다. 특출(特出)난 범죄적 행위를 기술로 인정한다면 그런 것도 나름대로 어떤 경지에 도달한 자들에게서 전수받거나 아니면 독학으로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일 것이다. 김일성의 황태자로 살인적 경영마인드를 몸에 숙달시키는 교육을 받아가며 성장한 자가 김정일과 그의 주구들이다. 역사 속의 어떤 봉건왕조(封建王朝)도 흉내 낼 수 없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공산주의 수령독재가 그의 선생이 되어 그와 주구들을 길들여 갔다. 김일성의 궤변적(詭辯的)이고 폭군적(暴君的)이고 살인적(殺人的)이고 호전적(好戰的)인 경영마인드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또는 전수받으면서 아울러 김일성이 만든 수령독재의 틀 속에서 혹독하게 인민을 학대(虐待)하는 기술을 배워갔다는 것을 말한다.

5. 이런 세상을 여는 것은 일당 독재의 이익과 김정일의 이익만을 추구하려고 하는 아주 사악한 악마적인 행태라고 하는 것이다. 김일성의 교육 곧, 이런 것을 기술적으로 전수하고 그런 것으로 훈련되고 길들이는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해 청지기 노예와 청지기 수하의 노예(奴隸)를 만드는 기술을 의미할 것이다. 청지기로서의 훈련과 노예로서의 훈련이 그 내용일 것이다. 56개 부류 25개 성분에 따라 청지기범주와 노예범주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훈련을 한다. 노예범주에 속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히 김정일의 노예가 되게 하는 훈련을 한다. 청지기 범주에 속하는 자들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김정일의 고급 노예로 대우하다가 어느 날 수용소에 던져 버리도록 길들여지는 훈련을 한다. 이것이 곧 김일성으로부터 전수 받고 발전시킨 김정일의 노예 훈련의 내용이다. 이런 노예를 확산하기 위해 김정일은 부심(腐心)하고 있다.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라는 것의 노림을 통해 한편으로 체제를 공고히 하고 또 한편으로 남한까지 노예를 삼아 영영히 한반도의 군주가 되고자 한다. 바로 그 노림이 핵무장에 있고, 오로지 그것에 심혈(心血)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현제 국제정치의 갈등(葛藤)의 주요 내용이다.

6. 이런 자들에게 핵무장을 하게 하면 거기서 만족하고 멈추겠는가이다. 오히려 수령독재의 세계화와 세계지배의 야욕을 위해 뜬금없는 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팍스코리아나(PAX AMERICANA를 대항하기 위해서 FAX KOREANA : PAX SINICA를 흉내 내려는 모양새?))를 외치면서 한민족의 세계지배시대를 열 것을 강조하는 것이 김정일식(式) 민족주의자들의 허황(虛荒)된 목표이다. 그들은 바로 그런 것으로 세계화(世界化)하려고 한다. 여기에 함께 하는 김대중식(式)의 민족주의는 중도(中道)를 표방한다. 이름하여 비과학적(非科學的)인 야합(野合)이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영원한 적(敵)이다. 이를 하나로 묶어 보려고 한다. 수령독재와 자유민주주의는 상극(相剋)이다. 하지만 이를 민족이라는 말에 담아 융해(融解)시켜보라고 하는 것을 실험하자고 하는 김정일의 요구에 동의(同意)한다. 거기서부터 미래를 열어보자고 한다. 그것이 이름하여 김대중식(式) 민족주의이다. 우리는 범죄자들을 격리(隔離)하는 법치국가에서 산다. 그 범죄적인 행태와 그 사상은 결코 법치에 의해 의법조처해야 한다. 탈취하고 사는 자들을 이웃사랑하는 자들과 더불어 살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중도를 표방하는 그들의 시각(視覺)이다. 이웃사랑하는 자들에게 탈취하는 자들은 격리대상이지 더불어 살게 하는 합쳐질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웃사랑으로 흡수해서 저들도 모두 다 이웃을 사랑하는 반열에 서는 교정(矯正)이 필요한 존재들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고 본다.

7. 번영과 몰락을 함께 민족의 이름으로 담아내려는 김대중식(式)의 민족주의는 결국 몰락을 부르게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번영이 몰락과 공존하면 전쟁비용만을 만들어 낼뿐이다. 몰락의 주체적 마인드가 살아 있다면 삼켜내기까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사회정화비용이 상상을 초월하게 발생할 것이다. 이는 오염의 근원이 맹렬히 활동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존식의 야합은 전쟁의 위험을 안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몰락을 받아들이면 많은 전쟁비용과 기회비용과 사회정화비용, 아울러 교정비용까지 발생하고 그런 기회비용으로 인해 번영의 힘이 약해지면 몰락이라는 블랙홀에 삼켜지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계산은 그 과정에 들어가야 할 통일 비용 외 별도내역을 말한다. 번영하려면 몰락의 주체적인 마인드와 그 내용들을 영구격리(永久隔離)해야 한다. 그런 몰락을 영구격리시켜야 한다는 것의 원리가 참된 것이다. 빛과 어둠은 영구적으로 격리대상이지 혼합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보면서 이 정신나간 자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가를 보게 한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 곧 빛과 어둠은 영원히 함께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바꾸려는 짓을 질타(叱咤)하고자 한다. 결국 논리는 그렇게 하고 내심은 자유대한민국을 김정일의 수하(手下)에 갖다 바친다고 하는 것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선은 눈을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김일성이가 얼마나 궤휼(詭譎)의 역군(役軍)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8. 그들의 행동은 그 자체가 사람을 속여 먹는데 능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를 따라서 함께 말이 통하는 자들은 바로 그런 궤휼에 능한 자들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악마는 거짓의 애비라고 한다. 이런 거짓들은 다 악마에게서 습득한 것이다. 남북에 이 악마의 제자들, 거짓말과 포학과 살인과 호전에 길들여져서 인간을 혹독하게 착취하고 사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과 정치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가 다 궤휼의 역군으로 세상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면서 결국 하나님의 진실과 악마의 거짓의 싸움의 내용이 한반도의 전쟁의 내용이라고 확인하게 된다. 때문에 오늘날 악마는 김정일과 그의 고급청지기들 곧 남북한의 주구(走狗)들을 통해서 남한에 아가페적인 이웃사랑으로 가게 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파괴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타적 사랑은 곧 김정일의 착취를 무력하게 만드는 권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이 야합을 깨야 한다는 것의 소리침이 필요하다. 밤과 낮이 선명하게 구분이 되는 것이고 언제든지 빛이 오면 온만큼 밝아지는 것을 통해 그 만큼의 어둠이 떠나게 되는 것은 자명(自明)한 불변(不變)의 원칙(原則)이다. 바로 그런 격리를 가능케 하는 빛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큰 빛이 있으면 하늘의 모든 어둠이 걷혀지는 것이다. 그처럼 큰 빛이 필요하다.

9. 그것이 곧 이웃사랑이고 그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이웃사랑의 힘에 이끌리는 사회의 힘은 결국 사회를 번영 속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바로 그런 힘이 나오는 길만이 진정성이 넘치는 이웃사랑이 되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자는 말이고, 예수의 뒤를 따르자는 말이다. 오늘날의 이웃사랑은 예수를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 따르는 자들에게서 진정성이 있게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북한주민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道理)이기 때문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수고는 예배보다 더 앞서 죽어가는 이웃을 건져야 한다는 것을 그 원칙으로 제시하였다. 한국의 기독교가 예배를 이웃사랑보다 앞세운다면 결코 김정일의 남한 적화(赤化)를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강도에 의해 상해를 받아 절박한 자들을 무시하고 예배를 추구하는 자들의 행동은 미필적으로 범죄행위를 조력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바로 그런 범죄적인 행동에 면죄부(免罪符)만을 주려고 하고, 오히려 방관(傍觀)하고 있는 것이 지혜로운 짓이며, 그 결국에는 천국을 얻을 것이라고 하는 거짓선지자들의 속삭임을 거부해야 한다.

10. 오늘날 많은 김정일 공작원들이 교계(敎界)에 파고들어 갔다. 가서 김정일의 악마적인 착취행위를 호도하고 있고 그를 표적으로 삼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의 내용들이 지천(至賤)으로 깔려 있다고 본다. 때문에 지금은 매우 혼탁한 논리들이 교회강단으로 파고들어가 있고, 교중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이타적 이웃사랑을 기초로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타적인 사랑의 본질과 그 지혜로 훈련을 받아 예수처럼 살라고 하신다. 그것이 하늘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길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와 함께 착취자들을 격리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곧 격리의 이유이다. 우리는 몰락과 번영의 결합의 의도에 반대한다. 그것은 악마적인 속삭임이지 결코 천사의 노래는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제 그 더러운 가면을 벗고 북한주민을 혹독하게 참혹하게 다루는 일을 그치고 오히려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우리는 이타적인 사랑을 품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북한주민을 그 혹독한 흉악한 결박에서 풀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 그들의 고통의 줄과 멍에를 끌러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 시대에 해야 할 노예해방(解放)운동이다. 참으로 이타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려는 자들은 북한주민을 해방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것이 또한 인간의 본분(本分)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수의 뒤를 따르기 위해 기도하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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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노을 2007-08-21 23:48:58
    예수를 빙자해서 그이름을 가볍게 여김은 개신교 스스로 저질르고 있음을 모르는지요? 그많은 (자칭 일부라는)목사는 악행을 저지르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앞에 단순히 회계하면 ....그것이 회개가 됩니까? 저희들 스스로 타인에게 악행을 보이면서 결국에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회계 했다고 헛소리하며 고개 처들고 돌아다니는거 보면서 과연 목사라는 존재가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차라리 인근에 성당의 신부님이라면 최소한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계율을 깨지 않고 소박하게 주위와 어울리고 종교적으로 왜곡되지않고 계율과 같이 도움을 주시거늘 이와 반대로 목사는 대기업의 배부른 간부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건 저뿐인지요...

    오늘도 여지없이 김정일 타령이군요..
    그리고 예수의 뒤를 따르자는 글은 쓰지 마십시요.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썩은 개신교를 국교(國敎)로 정했다고 막말을 하십니까? (탈북자동지회원은 다 개신교인 입니까?)
    예수를 빙자해서 그대들의 배를 불일생각은 마십시요.. 당신들이나 열심히 죄짓고,회계하고... 하던말던 관계없지만.국민(탈북자동지회)들은 얼뜨기 인간이 아님을 아셨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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