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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부터 12월 5일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REPUBLIC OF KOREA 구국기도 0 314 2007-10-27 14:58:44
1.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날마다 인터넷을 monitoring을 하다 보면 未久(미구)에 다가올 내용의 無言(무언)의 소리의 흐름이 실상과 허상의 내용들을 담은 폭을 가지고 흐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이라면 그런 무언의 소리를 추적하고 그것에 situation을 그려보게 된다. 그 虛虛實實(허허실실)을 분석하는 것의 의미로 숙고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豫知(예지)의 분량은 大同小異(대동소이)하다고 본다. 일종의 豫測(예측)인데 그런 것을 통해서 미래를 논하게 된다. chaos theory적인 미래에 대한 결과적인 표현은 심는 대로 거둔다가 아주 的實(적실)한 표현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가는 아무도 생각을 해내지 못한다. 그것은 그 만큼의 불학실성을 만드는 可變(가변)의 내용이 가득하고 변화무쌍하다는 말이다. 때문에 인간은 불확실성한 近距離(근거리) 미래와 中距離(중거리) 미래와 長距離(장거리) 미래를 窮究(궁구)하려는 노력의 의미는 그 결과에 있고, 그 결과 후에 나타날 또다른 반응 및 상응의 表皮(표피)현상학적인 것과 裏面(이면)현상학적인 내역과 그것들의 機能(기능) 및 逆機能(역기능)을 고찰함에 있다. 때문에 많은 분석을 통해서 因果(인과)의 相關(상관) 고리를 찾고 그것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원리를 대입하여 보면 그 원리가 順理的(순리적) 雄辯(웅변)이 되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된다.

2. 어느 정도라 하면 因果(인과)의 상관 고리의 정확도와 원리의 순리적 현상이 不(불)可變性(가변성)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 미래를 예측한다. 어떤 이는 꿈으로 하고 어떤 이는 환상이나 환청 등 신비한 靈(영)의 능력으로 한다. 어떤 이는 靈媒(영매)의 힘을 빌려 또는 자기가 직접 영매가 되어 미래를 거룩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닌 어떤 영들로부터 보고 듣곤 하는 죄를 짓는다. 영매에게 하늘이라는 말의 의미는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영적존재들의 次元(차원)을 말한다. 그런 영적 존재들을 만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보를 가져오는 자들의 내용은 각기 정보를 주는 靈(영)들의 차원에 따라 다르고 그 정보를 입수하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처리 능력에 比例(비례)된다.

때문에 意譯(의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誤譯(오역)이 발생하게 된다. 인간은 모두 다 점쟁이처럼 살아간다. 그런 式(식)으로 극단적인 견해를 표출하는 자들도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知能(지능) 領域(영역)이기 때문에 늘 그렇게 미래예측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미래 예측을 거부한다면 무엇으로 앞날을 대비할 것인가를 두고 생각한다. 오늘날 여론조사 기법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 대부분 그런 여론조사에 기대게 된다. 정확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일 좌파들은 그런 것을 조작한다. 때문에 정확도에 대한 심리적인 불만족은 발생하게 된다. 확실하게 믿을 수 없게 하는 신뢰지수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3. 그런 것도 공산혁명을 이루는 도구로 삼는 김정일의 partizan들이다. 현재 企業(기업)의 미래 예측문화는 각 기업의 투자전망과 변화무쌍한 시장분석의 적중과 신제품의 새로운 도전 등을 기초로 한 미래 산업의 구조의 변화 및 革新(혁신) 속에서의 생존 전략을 기본으로 삼아 구축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미래에 대한 준비를 挑戰(도전)이라고 하는 말에 담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미래는 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삶은 현실의 障碍(장애)나 障壁(장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過程(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저 산을 넘으면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그런 불확실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확실성이 보장되는 岐路(기로) 里程標(이정표)가 분명한 갈림길도 있다. 불확실성의 미래란 이정표가 분명치 못한 갈림길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里程標(이정표)가 분명하다면, 누군가 故意的(고의적)으로 그 이정표를 바꾸지 않는다면 거기서 인간은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책임은 자기가 지게 된다. 하지만 김정일의 주구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생명의 길로 가는 이정표를 바꿔 버렸다. 때문에 지금은 그 원래 본래의 이정표를 찾아내야 한다. 그 이정표는 어느 길로 가면 生命(생명)과 祝福(축복)과 繁榮(번영)과 幸福(행복)과 인간의 自由(자유)와 人權(인권)과 人道(인도)의 복된 누림이 있다는 것을 표시한다.

4. 국가의 모든 것의 부요가 뒷받침 되는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길만이 구국이고 국가와 개인의 확실한 소망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 그 반대의 길로 가면 인간은 패망하고 필경은 큰 재난에 逢着(봉착)하게 되고 국가가 망하게 되는 낭떠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공감대의 확산을 통해서 예지의 등불을 밝히는 등불 數(수)에 비례된다고 하는 것에 있다. 그런 인과응보의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과학적인 원리를 통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학자, 생명과학자, 사회학자,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실현 가능한 미래의 징후들을 모아 하나의 미래를 situation하여 살펴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미래 학자들의 예측이 어느 정도 적중하는 것은 그동안 축적된 모든 지식을 통해 미래를 보는 등불을 밝혔기 때문이다. 현재의 석유문명의 산업구조가 물(水)문명의 산업구조로 바뀌는 혁명이 일어난다면 미구에는 물 전쟁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또 지금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만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미래예측 技術의 능력을 넘는 것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되는가이다.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인간은 束手無策(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었던 시간을 예측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음양적 이론을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미래예측학이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고 한다.

5. 그 미래 예측학의 내역을 보면, 1) 천문역경학(天文易經學), 천문·지리·인사·물상의 자연변화를 역경에 근본을 두고 인간 세상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2)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 지리학으로 지형과 방위의 길흉판단에 의한 음택과 양택 그리고 인간 생활의 실제적 활용하는 학문을 말한다. 3) 명리인상학(命理人相學), 사람의 태어난 년·월·일·시를 통한 예측과 인간의 얼굴과 골상을 연구하여 미래를 예지하는 학문을 말한다. 이런 것은 모두 다 주어진 기초는 역리로 가지 않는다는 원리를 품고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주어진 조건을 통해서 세상을 또는 모든 환경을 모든 존재를 담아내는 것에서부터 발생한다. 때문에 운명론적인 것이 강하게 두드러진다.

그것을 통해 나타나는 작용 반작용의 원리의 통계치를 구하고 그것이 미래에 어떤 작용을 할 것인가에 따라 人爲的(인위적) 조절을 생각하려는 것일 것이다. 강물도 자기 길을 따라 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인간은 세월을 자기 조건에 담아 산다는 논리이다. 때문에 세모 그릇에 물을 담으면 세모가 되고, 네모 그릇에 네모를 담으면 네모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런 원인들로 인해 서로 相關關係(상관관계)를 가지고 그런 것들이 어떤 문제들을 만들어 내어 성공을 하는데 직간접의 영향을 준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조건에 따라 세월이나 환경을 적응하는 내용이 다르게 된다는 것의 의미이다.

6.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미래예측시스템이 실로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고 다양하게 있고 이용되고 있다. 한 인간이나 기업의 미래도 이토록 중요하기에 미래를 예측하면서 준비하는 것을 지혜롭게 여기는 것인데, 하물며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이다. 국가는 敵國(적국)을 상대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對稱(대칭)이라고 하는 전쟁준비를 하게 된다. 對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서 현재의 전쟁의 발발을 막고 미구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전쟁을 담아내려는 것이다. 그런 전쟁을 담아내서 승리할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전쟁을 다 담아 낼 수 있는 아니 승리를 담아 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의 의미는 매우 복잡하다고 본다.

따라서 어느 정도 갖춘 조건으로 이긴다면 必然(필연)이고 그 반대면 偶然(우연)이나 奇蹟(기적)으로 보려는 것이다. 기적은 언제든지 있게 되는데 살펴보면 전쟁을 담아내는 조건 갖춤이 내용의 분석을 더 확대해서 본다면 不可抗力的(불가항력적)인 개입은 언제든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불가항력적인 것의 존재가 대칭이나 비대칭으로 존재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에 우리의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칭을 통해서 당당하게 맞서고 싶어 한다. 하지만 비대칭의 경우에는 주눅이 드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주어진 조건은 逆理(역리)로 가게 한다든지 順理(순리)로 가게 한다든지 하는 것이 곧 불가항력적인 개입이다.

7. 그런 개입의 의미를 고찰하는 것이 중요한데 거기에 전쟁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학자들이 수많은 전쟁사를 고찰하면서 모든 부분을 다 살펴 대칭을 찾아내고, 마침내 비대칭을 찾아내고, 그 비대칭이 이유가 되어 전쟁에서 이겼는가의 여부를 고찰하는 것에 빈틈이 없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과연 거기에는 알 수 없는 부분 곧 정보 누락으로 인해 불가항력이 발생했는가, 아니면 모든 것이 아주 큰 비대칭인데 오히려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인지를 살펴보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세심하게 기록한 전쟁사는 없다고 본다면 불가항력의 의미는 대칭 비대칭으로 우선은 좁혀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만일 사람을 兵器(병기)로 삼는 하나님과 악마와의 전쟁에 인간이 포함이 된다면 이는 문제가 다르게 된다. 하나님의 介入(개입)을 받아들인 인간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적과 싸우는 것은 결국 현격한 비대칭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여 북한인권을 위해 싸우고 우리의 자유를 위해 싸우자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적과의 현격한 비대칭을 이루는 길이고 아울러 應用(응용)에서도 건널 수 없는 차이를 확보하는 길이라고 하는 것에 있다. 전쟁에는 하나님과 동맹을 맺는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갖춤의 조건을 통해서 미래를 열어 가는 것이 因果應報(인과응보)라고 하는 것이다.

8. 인과응보란 좋은 나무만이 좋은 열매를 맺힌다는 말이다. 거기에 그리스도와 敵(적)그리스도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곧 김정일 공산수령 세습독재에 숨어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사랑하는 이타적 사랑의 인권과 인도의 존중에 숨어 계시다. 이런 싸움은 하나님과 악마의 전쟁을 의미하고 인간이 군대가 되고 병기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의 내용에 따라 악마진영은 무너지게 된다는 원리를 熟知(숙지)함은 기본이라고 본다. 그런 내용은 하나님의 개입의 분량 여부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한반도의 전쟁은 하나님의 이익과 겹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견해로 보인다.

때문에 하나님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과 북한인권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런 내면에 하나님의 개입을 갈망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나님은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동맹을 강화하는 여부에 따라 도와주는 因果應報(인과응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확실한 里程標(이정표)이다. 때문에 거기에 하나님의 개입을 막으려는 악마의 술수가 무지몽매한 인간들 속에서 준동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미혹이라는 방법으로 인간의 눈가림의 내용을 발생하게 한다. 악마가 인간에게 자행하는 미혹이 강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그 만큼 거부하게 된다. 결국은 하나님의 개입이 적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9. 만일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이기게 되는 결과를 갖게 되는 응용의 승리學(학)을 배울 수가 있게 된다. 이를 次元的(차원적) 응용의 원리라고 定義(정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갖춘 조건을 통해 순리가 형성된다고 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 순리를 다루기에 따라 다르게 된다는 응용의 의미가 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동맹이 아주 확실하다는 전제 아래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이제는 응용의 측면을 생각하게 된다는 지평이 열리게 된다. 곧 그런저런 불합리 有(유)不利(불리)한 전쟁 인프라의 열악한 조건의 유무를 응용하는 차원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주어진 모든 조건이 열악해도 그것을 차원 높게 응용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하고 그것으로 불가항력을 만들어 그 전쟁에서 이기게 된다는 논리이다. 동양적인 미래 예측학의 의미에서는 이를 담아 낼 수가 없다고 본다. 그 學(학)은 조건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역이용하는 차원과는 구별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그를 응용하는 차원의 지혜가 있다면 또는 더 높은 차원의 지혜가 상대에게 있다면 모든 것을 갖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상대의 높은 차원에서 나오는 응용에 당해 불가항력적인 힘에 굴복당할 것이라는 말이다.

10. 때문에 인간의 갖춤 조건의 모든 것은 다 無爲(무위)로 돌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서구 과학적 통계적 미래예측학이나 음양이론에 근거하는 동양적인 미래예측학이나 모두가 다 그 주어진 기초의 내역서로부터 출발한다는 것과 또는 영매들의 활발한 영적 존재들의 접촉을 통해서 얻어내는 정보들이라고 해도 그와 같은 類(류)이다. 그것은 조건의 갖춤일 뿐이지 최고 높은 차원의 응용은 아니라고 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바둑돌은 두는 자의 차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차원이 높은 자들일수록 실수를 최소화하고 있고 그런 자들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주민의 인권문제가 구국의 방법이 되겠느냐고 회의적으로 보는 자들은 오히려 눈이 밝아 현재 주어진 대칭 비대칭여부의 懸隔(현격)한 차이를 보고 있기에 그런 것으로 보여 진다. 과학적인 사고방식에서 일부분에만 눈을 뜬 것이기 때문이다. 응용의 차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하는 것에 눈을 뜨지 못한 탓일 것이라고 본다. 그런 자들의 눈에는 과연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차원 높게 다룬다면 김정일 정권을 수백번 崩壞(붕괴)시키고도 남는 핵무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많은 핵무기 재료 곧 탈북민 12,000명 시대이다. 이는 곧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상상을 할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11. 온 세상의 인간의 자유와 생명을 사랑하는 인간들과 국가들과 단체들이 그동안 수집한 정보가 산을 이루고 바다를 채우고 있다는 것에 주목을 해야 한다. 이것을 잘 다루기만 하면 차원 높이 다루기만 하면 적을 이길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갖춘 조건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자들의 사고방식은 결국 그 편집증에 의해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패닉에 빠져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하나님의 동맹군에게는 劣惡(열악)이라는 것은 곧 미래창조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응용하기에 따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의 인간은 열악한 環境(환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늘 잊어서는 안 된다.

거기서부터 인간은 응용을 배우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모든 하늘 위에 하늘(지극히 높은 차원)에 寶座(보좌)를 굳게 세우시고 모든 것을 응용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동맹軍(군)이 된다면 하나님의 가지신 전쟁 인프라가 우리의 것이 되고, 결과적으로 非對稱(비대칭)의 현실을 극복하게 된다. 비록 우리의 전쟁 인프라가 열악하여도 이를 응용하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은 차원이 북한주민의 인권을 핵무기로 만들어 사용하면 북한주민을 解放(해방)하게 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계기를 삼아내는 응용에 눈을 뜨자고 소리치고 싶은 것이다.

12. 우리가 보건대 진실로 11월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선거가 예정대로 집행될 것인지? 암살이 있게 될 것인지 암살이 없다면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11월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한다. 60년의 학수고대를 한순간의 선거로 무너지게 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나 저들의 마인드에서 나오는 지독한 것에 관하여 숙고하는 자들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방장관 김장수가 11월에 북에 간다. 가서 무슨 얘기를 하고 올지는 모른다. 그것이 곧 또 하나의 전쟁 곧 NLL의 분쟁의 전투로 이어지게 할지는 모른다.

어쩌면 戒嚴令(계엄령)이 선포되는 구실을 만들어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것으로 현 정부의 선거유예를 구실을 삼아 대선이 무기한 延期(연기)되고 통일독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或者(혹자)들의 말과 같이 선거는 하되 전자개표부정을 하여 상대를 낙선하게 한다는 음모론이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암살과 상응하는 구속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도 떠돈다. 또는 대규모의 테러나 반정부 시위나 관제데모나 기타의 어떤 짓을 하게 하여 계엄령을 하게 된다는 가능성의 것도 그 밑에 어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자 누가 11월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壯談(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북한주민의 혹독한 상황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보응을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 김장수가 돌아온 후, 11월 20일부터 12월 5일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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