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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을 회복시키는 것이 곧 국제경쟁력이다.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1 251 2007-12-29 13:18:45
1.[忿(분)은 잔인하고 怒(노)는 漲水(창수) 같거니와 妬忌(투기) 앞에 누가 서리요] 사람이 만일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된다면 자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妬忌(투기)하는 심리가 발생하게 된다. 모든 것이 욕심이 문제고 그런 문제로 인해 민주주의가 아니거나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독재자의 세상은 피비린내 나는 士禍(사화)를 겪게 된다. [士禍]중에 조선시대의 12사화가 거론된다. [十二士禍]는 조선 단종 원(1453)년으로부터 경종2년(1722)까지의 일어난 열 두 사화, 곧 계유사화, 병자사화,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신사사화, 을사사화, 정미사화, 기유사화, 계축사화, 기사사화, 신임사화를 말한다. 이런 사화는 모두 다 정적을 무참히 刺殺(척살)하려는 의도에서 발생하는 피비린내 나는 결과로 이어지게 하였다. 조선시대의 12사화를 보면서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를 알게 된다.

2. 조선 시대의 12사화를 합쳐도 오히려 비웃는 사화가 김정일의 세계 속에서 非一非再(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워낙 閉鎖(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진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고위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런 사화가 비일비재 일어난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것을 늘 常存(상존)케 하는 것이 김정일의 마인드고 그것이 곧 수용소의 의미로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정일 그가 만든 수용소의 의미는 이런 사화를 정권유지차원에서 늘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 주민을 상대로 사화를 일으키는 것이고 하부구조의 반역을 막기 위해서 士禍(사화)의 常存(상존) 규격화를 만든 것이라는 말이다. 왕과 신하의 간격 속에서 일어나는 권력의 투쟁의 의미를 넘어서서 전 주민의 통제를 현실화하기 위해, 곧 모든 정적을 무너지게 하려는 창수 같은 잔인한 분노와 투기의 무지막지한 진압을 필요로 하는 권력투쟁을 의미한다.

3. 모든 반발을 반역으로 몰아서 김정일 하나만을 崇拜(숭배)하게 하려는 짓거리에는 수많은 피가 땅에 쏟아져 내리게 하는 것이다. 김정일 그 하나만을 숭배하게 하려고 하는 권력욕 속에는 잔인한 창수 같은 분노와 투기라고 하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투기는 김정일보다 더 뛰어난 존재는 결코 발을 붙일 수 없게 한다는 것에 있다. 참으로 악마적인 투기이다. 김정일과 그 공산수령 세습독재는 전문가가 가야 하는 길에 툭하면 나서서 현지 지도한다고 비전문성을 지시하고 떠나면 전문성을 포기하고 그 지시를 따라야 한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일이 안되면 결국은 收容所(수용소)로 가야 한다는 것에 있다. 김정일 하나만을 숭배하는 세상을 열기 위해 그보다 더 잘난 사람을 무참히 척살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공산수령 세습독재의 본질적인 필요조건적인 樣相(양상)이기 때문이다.

4. 識字憂患(식자우환)이라는 말은 거기서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결국은 김정일의 지도를 받게 되는 識者(식자)들이라는 말이다. 김정일과 그의 하부들이 수령의 이름으로 간섭하지 않는 일이 어디에 있고 참견하지 않는 일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정권의 지도자라는 말은 모든 능력자들을 우대하고 그들을 重用(중용)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하여 국민을 섬기는 公僕(공복)의 도를 다하도록 지휘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을 철저히 투기하고 질투한다면 전문가는 없게 된다. 그런 것을 깨쳐버리는 것이 곧 김정일의 공산수령 세습독재이다. 이런 세계에서는 경제가 발전되거나 뭐 하나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모두가 다 그 무슨 指導(지도)인지 뭔지를 통해서 일의 전문성이 깨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회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多樣性(다양성)과 多元性(다원성)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5. 그런 것이 서로가 상호관계를 가지고 作用(작용) 反作用(반작용)들을 통해 나오는 여러 것으로 경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갈가리 찢어지게 한다. 거기서 무슨 전문성이 자리 잡고 좋은 결실을 가져올 수가 있는가이다. 곡초가 결실을 가져오려면 많은 것의 조건이 협력하여 합쳐주어야 한다. 그런 협력이 무너지게 되면 전문가의 선택은 하나 밖에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자기기만에 빠지게 되는 것에 있게 된다.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는 것이 국제경쟁력을 涵養(함양)하는 길이고, 끊임없이 전문적인 분야의 신의 영역인 균형감각을 찾아가기 위한 무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전문가들이 가는 捷徑(첩경)이다. 하지만 김정일 우상숭배가 그 모든 것까지도 다 무너지게 해야만이 직성이 풀린다고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窒息(질식)할 정도로 소리치는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닌가 싶다.

6. 설혹 그가 전문영역을 보장해준다고 해도 결국 그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한계가 또 가로막고 있다. 그런저런 일을 겪는 자들은 인간의 삶을 고달프게 여기게 되고 懷疑的(회의적)인 심리에 빠지게 된다. 그런 회의적인 것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곧바로 수용소행이 된다. 북한의 수용소는 곧 김정일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데서 나오는 창수 같은 잔인함과 투기를 푸는 장소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수용소로 만든 恐怖(공포)로 북한 전 주민에게 각기 인간 속에 있는 능력을 김정일과 그 하부의 능력 이하로 묶어 놓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이상한 집단에 대한 斷罪(단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남한의 지식인 모두가 이런 일을 살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북한주민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은 생명권, 신체의 자유, 정당한 법과 절차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 평등권, 자유권, 종교의 자유, 참정권, 식량권, 사회보장권, 근로권, 직업선택의 자유, 여성권, 아동권, 납북억류자 실태, 국군포로의 인권침해 실태, 탈북자의 인권침해 실태 등으로 구분하여 고찰하게 된다.

7. 김정일과 공산수령 세습독재에게 무너지고 있는 전문성의 표현과 연구의 자유를 添加(첨가)해야 한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것이 김정일의 체제만을 위해 존재되는 전문성의 의미는 하향평준화를 꾀하는 것에 있다. 이런 의도적으로 인간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것이 공산수령 세습독재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을 남한의 지식인들은 오히려 김정일과 그의 공산수령 세습독재에 寬大(관대)하다. 그런 것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만들어 내게 한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적과의 동침이 시방 남한 땅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적들을 두고 어찌 소리치지 않는다는 것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지성은 노예적인 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 [조선 士大夫와 한국 지식인들 비교]라는 제목의 글로 조갑제 대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8. 제8-10항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8. 조선조와 한국의 사대적 지식인들은 자주국방을 모르는 일종의 內侍(내시)들이다. 자기 나라,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없는 자들이 나라를 운영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점이 조선조와 좌파정권의 비극이었다. 자기 나라를 모르고 자기 역사를 모르니 자기를 모르고 그러니 자부심이 생기지 않고 大國을 무조건 숭배하면서 자신들의 생존문제, 즉 안보문제마저 외국에 맡겨놓고 군대도 키우지 않았다. 이들은 安保무임승차를 즐기면서 자기들끼리는 권력투쟁만 했다. 지식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最惡의 위선이고 자기기만이었다. 9. 사대주의자들은 진정으로 감사할 줄도 모른다. 노예들은 굴종하지 감사하지 않는다. 진정한 恩人에게도 감사하지 않는다. 감사는 자존심이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9. 노예 심보를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을 지성인이라고 할 수는 없어야 한다. 지성인이 되려면 노예습성을 과감히 벗어 던져야 한다는 것을 그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0. 임진왜란 때나 한국전쟁 때 조선과 한국은 明軍과 美軍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두 동맹국에 대한 미안감이라도 있었다면 조선과 한국은 자주국방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했다. 조선은 가난해서 그렇다고 해도 대한민국은 자주국방할 수 있는 富國이다. 한국은 국방에 돈을 쓰지 않으려 하고, 젊은이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하고, 핵무장한 主敵과 맞서지 않으려 한다. 主敵과 전쟁불사론으로 맞서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가 있으면 柳成龍처럼 규탄 당한다. 자위적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살찐 돼지의 모습이다. 이것이 한국 지도층의 가장 큰 부패이다. 조선조 사대부는 아직도 살아 있다.]

10. 그는 송복 교수의 글을 인용하여 사대부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 '위대한 만남, 서애 柳成龍'(지식마당)을 쓴 宋復 연세대 명예교수는 조선의 士大夫들은 柳成龍의 전쟁회고록 '懲毖錄'(징비록)을 읽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읽으려 안했고, 읽어도 몰랐고, 알아도 감동이 없었다. 그리고는 제갈양의 出師表를 들먹이며, 이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라고 버릇처럼 되뇌었다. 내 나라 개념이 없고 내 나라 의식이 없었다. 인조 이후 효종 연간을 지나면서 오직 망한 明만 그리워하고 숭모하면서, 제 나라 망각증은 깊을 대로 깊었다. 우리 역사는 역사로 생각지 않았다. 오로지 아느니 중국인물이고, 읽느니 중국역사였다. 그것이 조선이란 나라의 士大夫며 지식인이었다.)] 사대부의 흐름이 유구하게 흘러내려오는 이런 병폐는 완전히 개혁되어야 한다. 지식을 가진 자들이 가져야 하는 책임을 지는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11. 그 지식인들 곧 오늘날의 사대부들은 김정일과 공산수령 세습독재의 그 사악한 만행 곧 광범위하게 자행하는 인권유린에 대하여 一言半句(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의 實益(실익)만을 찾아간다. 그 사대부들은 오히려 김정일의 妬忌(투기)마인드를 벤치마킹하여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자기들의 기득권을 鞏固(공고)하게 한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하에서의 건전한 경쟁력을 척살하는 사악한 죄라고 본다. 더더욱 오늘날의 사대부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묵살하고 있고, 자기들의 전문분야가 그토록 유린당하는데도 오히려 침묵하고 있다. 주민을 김정일 이하로 하향평준화를 하는 김정일 체제의 지령을 받은 남한 주구들의 10년 동안 남한 교육풍토의 황폐화에 동조 또는 방관하였다. 마치도 남의 일 보듯이 외면하고 있다. 곧 국제경쟁력의 상실인 하향평준화에 침묵하고 침묵한 것은 분명하게 그 10년 동안의 족적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12. 그 기간 동안의 이 士大夫(사대부)들은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였다. 더더욱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인 人權(인권)에 대한 것 人道(인도)에 관한 것을 심각할 정도로 외면과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들이 곧 잃어버린 10년의 一等功臣(일등공신)들이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後學(후학)들을 배출하였다. 그들이 과연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나 인권에 대한 인도적인 도리를 다하는 교육을 했을 리도 없고 후학들이 그런 교육을 받았을 리도 없다. 그야말로 無國的(무국적) 교육이다. 나라는 저들의 食貪(식탐)과 貪慾(탐욕)의 장소로 변질되었고, 스승은 없어지고 지식장사꾼으로 전락되었다. 그들은 더욱 한술 더 떠서 정권의 御用(어용)들로 전락하여 마음껏 국민을 기만하는 나팔수가 되었다. 김정일을 결사 옹위하는 주구가 되어 그런 일을 하는 자도 있지만 아무런 관계없이 단순 附逆(부역)으로 돈을 목적으로 하는 천민자본주의에 충실한 자들이 되는데 스스럼이 없다.

13. 국가를 살리는 교육은 없어지고 김정일과 투쟁하여 국가의 위기를 떨쳐버리고자 하는 의도도 없어져 버리게 하였다. 참으로 주구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고 그렇게 문화침략을 자행하여 마침내 김정일 침략을 자리 잡게 해주는 옥토를 갖게 되었다. 남한에 이런 類(류)의 세력과 김정일은 서로가 共助(공조)하여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고, 북한주민을 처절하게 蹂躪(유린)당하게 하였다. 이들이 한 짓을 반드시 응징해야 할 것으로 본다. 마음에 없는 것이 입으로 나올 리가 없다. 하지만 저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는 없다. 그저 거기서 나오는 모든 혜택을 누리고자 한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아주 많은 간판을 가지고 상대적인 열등감을 이용하여 군림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그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 곧 生靈(생령)이 되었다는 말이다.

14. 육체의 本能(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만들어진 靈(영)에 의해 통제되는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다. 지식을 가지고 육체의 본능에만 충실한다면 그것은 고등동물에 불과하다. 인간은 인간의 길로 가게 하는 하나님의 영의 통제를 받을 때 비로소 생령 곧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모든 고등동물을 또는 고등생물을 지배한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고등생물類(류) 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인간의 교사가 되어 인간을 본능적인 존재로 만들어 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생기를 필요로 한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고 섬기고 자유와 행복과 부요를 만들어 모두를 섬기는 인간을 만드는 하나님의 생기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생기를 잃어버렸다. 때문에 하나님은 두 번째 생기를 주신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입김이지만 이번에는 하나님 자신을 생기로 주시는 은혜이다.

15.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예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것은 곧 예수로 말미암아 성령을 호흡하는 것에 있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인간의 자유를 위해 쉬지 않고 투쟁하시는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정신을 부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시다. 결국 지식을 가질 수 있고 활용할 줄 아는 지능을 가진 고등생물類(류) 같은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의 생기를 가지고 인간의 존엄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의 투쟁이 역사의 두 축으로 엮어져 있다. 우리는 이런 것의 투쟁을 통해 인간다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북한주민이 김정일의 창수 같은 잔인한 분노와 투기 앞에 처절하게 인권을 유린당하는 것을 외면하는 罪(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라고 소리치게 하는 하나님의 입김을, 정신을 예수로부터 공급받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 교육의 완성을 갖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을 利他的(이타적) 사랑 곧 아가페로 사랑하는 능력을 가질 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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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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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천사 2007-12-30 16:46:43
    하나님은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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