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참을 호소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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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 제가 중국에서 애타게 호소하는 탈북자 한분을 구출하고자 그에 소요되는 경비를 모금하려고 제안드린 글을 많은 분들께서 보시고 사랑과 조언의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느분의 조언에 의하면 모금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법적허가를 받아야 자격을 가진답고 합니다. 저는 개인입니다. 단체차원이 아닌 개인이 허가 받기가 어렵다고도 합니다. 계좌번호를 공개한후 20시간에 되어 오는데 벌써 뜨거운 님들의 사랑이 모여지고 있습니다. 탈북자를 위한 사랑의 드라마를 우리가 사이트를 통해 제작하고 있습니다. 먼저의 [모금]이란 용어를 형태에 맞게 선택할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방조를 바랍니다. 모아진돈이 300만원 이 되면 바로 출발하려고 저는 계획을 세웠구요. (그보다 더 싸게 통하는 라인을 아시면 추천바랍니다) 수행후엔 입금내역을 모두 사이트에 공개하렵니다. 입금자의 실명공개가 원치않는 분들께선 저의 메일로 연락주세요. (입금자이름과 닉네임을 알려주시고 실명공개 원치않는다고 하면 닉네임으로 공개 하렵니다. 둘다 원치 않으시면 할수 없구요. 좀 전에 저의 이메일로 중국에서 살려달라고 울던 그분이 교회청녀의 도움으로 컴퓨터에 앉아 저에게 편지를 보내 왔는데 님들께 공개 합니다. 일부 이름은 생략하며 본인의 동의를 어렵게 받았습니다. 읽어보시고 저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중국의 그분께도 희망을 줍시다. ------------(메일복사본)-------- 지미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2007년6월초에 2차탈북을한 김미순이라고 하는 북조선 사람입니다. 너무나도 페쇄적이고 독재적며 인간이 인간을 잡는 나라에서 벗어나 자유로운삶을 살고싶어서 2006년10월5일에 처움으로 탈북을하여 중국으로 왓습니다. 하지만 차례지는건 잡혀서 북송될가봐 가슴조이고 경찰차소리만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뛰는 죄인의 생활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생존을위해서 일자리를 찾아 헤메야했으며 남의 집에서 눈치살이 하여야만 하는 설음이였습니다. 중국조선족 사장이라는 사람이 저에게 한달에 1500원 벌수있는 일자리를 주겠다고하여 무작정 따라 화룡시로 갔는데 알고 보니 노래방아가씨질 하는것이였습니다. 무섭고 떨려서 도망치려 했습니다. 그런일은 생전 상상도 못해봣고 너무나도 충격적이였습니다. 세상에 이런일도 다 있다는게.. 그곳에는이미 저와 같은 처지에의 여성들이 많았는데 북조선에서 온 여자도 3명이나 있었습니다. 몇일 지켜보니 이 안에서 어떤 일이 강요된다는걸 알게되고 저는 사장에게 못하겠다고 하자 그는 저를 얼리고 소리치며 무섭게 위협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인데 남자손님들이 밤새 추태를 부리는 옆에 앉아 치욕스러운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 죽고싶도록 싫었습니다. 저뿐이 아니라 그곳에있던 여성들도 이런건 사람이 짓이 아니라고 못하겠다고하면 무자비하게 우릴 때렸습니다. 제가 도망칠 기미가 보이자 주인은 공안에도 잘 알는사람들이 많다며…. 말을 안들으면 우리를 북송시키겟다고 협박하였습니다. 그런 말은 제가 제일 무서운 말입니다. 그런상황에서 진짜 잡혀서 호송될가봐 할 수 없이 내키지 않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좀 더있다가는 불량스러운 남자손님들에게 언젠가는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주인은 우리가 도망칠가봐 우리가 잠자는 방문에 열쇠를 채우고 화장실 가려면 문을 두드려서 문을 열어주고 보게했으며 석탄이 비싸다고 불도안때여서 추워서 몸을 쪼그리고 떨며 몇시간씩 잠자고 점심시간 되면 또 일하였습니다. 새벽 3시정도 되야 잠을 잘수 있었습니다. 이불을쓰고 잠자는 방에는 아무리 청소해도 짬이 많아 석탄먼지가 스며둘어와서 매일 코안을 열번나마 닦아내도 그냥 코안은 까맣기만하였습니다 그러고 일주일에 3천원 이라는 과제를 주고 그걸 못하면 차례지는건 물매와 쌍스런 욕뿐이였습니다 이불밑에서 흘린 눈물은 얼마인지.. 너무나도 슬퍼서 잠자리에선 울다가 잠들고 깨어나면 또 일하고… 가슴속에선 피눈물이 흘럿지만 낯선 남자들 앞에선 웃어야만 했고 그들의 환심을 사서 매상고를 올리기 위해서 온갖 재주를 다 피워야 했습니다. 전 그런 재주도 없어 주인에게 자주 화풀이 상대가되여 빽자루처럼 얻어맞고하였습니다 그런속에서 2007년 2월초에 그곳에서 도망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선택한 첫 한국행이 작년3월1일에떠나서 바로3월2일날에 공안국에 잡혔습니다 공안국 심사를 걸쳐 도문변방대를 걸쳐 2007년 3월16일날에 온성보위부에 호송됫고.이틀만인 18일날에 함께 체포된 7명과 함께 종성 도보위부집결소에 호송되서 전면적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한국행으로 7명이함께 잡혓다는걸 부인하자 보위부에선 나무각자로 (50mm)각자로 끈어질때까지 때리고 잠을 안재우고 취급하였습니다 특히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머리를 너무나도 맞아서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온얼굴이 푸른색으로 변해있고 잔등이고 다리고 성한곳이 없을정도로 때리면서 시인하라고 하였습니다 … 아침부터7시부터 저녁10시까지 올방자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고 움직이면 매를 면치못하였습니다 그기서 여성들은 더욱 비참합니다. 여성들이 생리가 와도 종이한장이 없어서 감방안을 청소하던 청바지 쪼각(북한에서는 청바지의 래력이 미국으로알고 청바진모두 회수한다) 으로 생리대 대용으로 사용해야하고 어떤여성들은 그런것도 차례지지않아서 붉은피가 바지겉으로 다 배나와서 그것이 다시 말라 붙어도 본인은 어쩌할방법이 없는 인간지옥이였습니다 그런옷차림으로 보위부에서 일을 시키면 나가서 남자들앞에서 왓다갓다 일을해야하였습니다 여자로써의 최고의 창피함과 부끄러움도 보위부란 그어마어마한 괴물앞에선 종적을 다 감추고 이렇게해서라도 살아야겟단 악바께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니였습니다 그안에서 밥을주는 것은 강냉이를 이삭채로 분쇄핸 강냉이밥을 자기주먹보다도 더작은량을 주는데. 쇠비린내나는 식은국에 말면 강냉이 송치가루가 둥둥뜨고 모래 또한너무많아서 잡을 수 없는 숫가락으로 살살 일면서 먹어야했습니다 그런것두 모자라서 굶주린배를 달래며 다음식사시간을 기다려야만했습니다 무조건 살아나가야겠다는생각……이것이 저의 그때 정신적기둥이였습니다 우리조가 마지막까지 시인하지않자 보위부에 취급강도는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옛날 일본놈들보다도 더 심하고 치안대도 얼굴붉힐정도의 악착한 방법으로 고문하였지만 이곳에서 시인하면 영원히 죽어야한다는 생각이 우릴모두 끝까지 뻗치게하였습니다 그 대가로 종신에선 벗어날수있었지만 그때부터 .저의 두 다리에 맥이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서야 걸울수 있었습니다. 4월16일날 새벽1시경에 그무시무시한 종성집결소에서 온성으로왓다가 5월초에 청진집결소로 이간되였습니다 청진집결소형편도 낫을바가없었습니다 . 집결소에 둘어간 날 밤, 죽을 힘을 다해 여러명과 함께 집결소를 탈출하여 5월말에 10일동안 농촌 김치움에 숨어있다가 도강하는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절둑거리며 국경을 넘었습니다 국경을 넘을때 물이 너무나도 불어서 떠내려 가서 저를 부축해 주던 사람들이 정말 죽을 고생 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고 저는 탈북에 성공하였습니다. 성공한 기쁨과함께 다시 찾아드는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막막함이였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그런일을 하고싶진 않고.. 또한 일자리찾으려고 하여도 중국말 한마디도 모르고 몸또한 불편한지라 어디서도 받아주는데가 없었습니다 알고있던 분들의 도움도 하루 이틀이였고 기약없이 이렇게 살아가자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보려고 여기저기 돌면서 어떻게하나 한국행을 시도해봣지만 어디서도 받아주는데가 없었고 차례지는 것은 박대의 서러움과 이러다가 또다시 북송되면 이번엔 죽어야 한다는 그런공포감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대로 살바엔 죽어버리고말가하고 죽는 약까지 구해서 주머니에 가지고 다녔습니다.….이렇게 수없이 방황하고 몸도 마음도…이젠 죽어갑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죽지못해 이어오던 중에 교회에 다니며 고마운분들의 조언도 많이 듣고 어떤 사람이 지미 라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도와준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몇 년전에 탈북자여자가 6살된 딸을 잃어버리고 10년동안 못찿고 가슴태우던걸 지미라는 사람이 중국을 다니며 한달만에 찿아내어 그들을 한국에 무사히 데려갔다고 합니다. 저처럼 맥을 놓고 죽을준비만 하던 탈북자 를 두만강에서부터 데려다 한국에 무사히 여러명을 데려 갔다고 전설같고 꿈 같은 이야기를 듣고 그 지미라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도 구해주셨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고생하며 수소문하던 끝에 인터넷을 잘하는 교회분이 알려준 컴퓨터에서 지미라는 이름이 있는데 혹시 그사람에게 전화해보라고 하여 혹시나 하여 전화를 하였습니다. 처움에 전화로 고 하셨을 때 정말 너무 슬퍼서 울었는데 용서하십시오. 다급하게 살려달라고 많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막상 지미선생님을 마주하니 눈물만 나오고 말이 않나왔습니다.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어디다가 하소연하고 싶어도 할데가없고 울고싶어두 맘대로 울수도 없는 신세입니다. 이러한 운명이 저 하나만의 운명이 아니라 중구에 있는 탈북자 모두의 처지입니다,. 탈북자라면 누구나 다 겪었을 겁니다 …수령을 잘 못만난 백성들의 운명입니다. 진짜여기 중국에서 죽고싶단생각을 그몇번을 해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왓는데.. 하는 생각과 삶에대한 애착이 저를 자살의생각에서 구원해주곤한답니다 지미님과 전화통화를 한 후로는 작으만한 희망이라도 생겼고 저를 구원해주셧으면하고 기대해봅니다 물에빠진사람이 지푸래기 잡는심정으로…. 이편지를씁니다 지미님의 구원에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이편지를 올립니다 2007년1월31일 밤11시 중국에서 김미순 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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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212@naver.com
저도 작년에 중국에 있는 어떤 분이 인터넷에 비슷한 기사를 써서 자그마한 후원을 하였습니다. 그분이 작년9월에 고맙게도 한국에 입국하여 지금은 서울에서 정착을 잘하고 만나서 지금은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어요.
그분과 연락이 될수있다면 현재 경제상황이 어려울텐데 자그마하게 쓸돈을
보냈으면 합니다 저도 세자식을 키우는 애기엄마라 많이는 도움을 줄수 없
지만 조그마한 씨앗이 큰싹으로 자랄수 있지않을까요. 지미님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010-6755-6229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동참 합니다.
한분한분도 소중 하지만....
지미님은 수많은분을 구할 수 있다고 보기에 한분을 위해 너무 큰 희생은 원치 않습니다.
더 큰것을 생각하세요.
더아프고,더많은분들을 위해~~~~~~너무 큰 희생은 아끼시길 바람니다.
조심하시고 대의를 생각하시길~~~~~
비록 적은 힘이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하면 큰 힘이 될수 있습니다.
지미님께 격려를 보내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