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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제주사람들의 설움"의 머리말
지만원홈피독자 1 337 2005-04-10 10:49:17
이 글은 지만원박사홈페이지 http://www.systemclub.co. 의 좌익계보 편에 있는 것임.


제주사람들의 설움 의 머리말

고문승 지음. 신아출판발행. 1991 “ 제주사람들의 설움”
(4.3사건.남로당의 제주폭동과 한민당 정권의 과잉진압)에서


제 2차 세계대전에 인류의 5,000만명이 죽었다.
인류가 전쟁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고, 전쟁을 일으켰던 자들, 독일의 히틀러, 일본의 도죠히데끼, 이태리의 뭇쏠리니가 善良한 理性의 기능을 상실해 버렸고, 폭력에 마취되있으면서도 지도자 노릇을 한 이 자들은 자기들의 과오를 스스로 깨달을 수도 없었고, 그들의 국가 안에서는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힘도 사람들도 없었기 까닭에, 제2차 세계대전은 일어났고, 5000만명의 고귀한 인간들이 죽었다.

히틀러에 끌려다닌 나치즘의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덴마크, 노르웨이를 침략했고, 영국을 폭격했고, 프랑스를 침공하여 파리를 점령했고, 소련을 침략하여 1,000만명 이상의 소련 사람들과 수많은 독일 병사들을 죽게 했고, 600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했다.
한반도를 20세기 초에 식민지로 점령한 日本帝國은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겠다는 슬로건을 만주를 침략하여 괴뢰정권을 세우고, 중국본토에 처들어가, 남경대학살 등 잔인한 짓을 했다.
1941년 10월 도죠히데끼 육군대신이 수상이 되었고, 1941년 12월 8일 日本은 美國하와이 진주만(Pearl Harbor)을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韓半島에서 日本은 韓人들을 징용(徵用) 징병(徵兵)으로, 여자들을 정신대(挺身隊)로, 강제 동원하여 非人間的인 만행을 저질렀고, 日本人 310만명의 목숨을 잃게 된 전쟁을 하면서도 오만불손(傲慢不遜)했다.

폭력에 취한 자들의 야만적 침략행위를 분쇄하기 위해 영국의 처칠수상은 과감히 선전포고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도 그들의 침략을 방치할 수없어 선전포고를 했고, 理性과 正義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려고 했다.
중화민국의 장개석 총통도 일본의 침략에 항전(抗戰)했다.
장개석 총통은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과 합작하여 항일전(抗日戰)을 했다.
처칠, 루즈벨트, 투르만, 장개석이 이끈 연합군이 승리했다.
히틀러(hitler), 도조히데끼, 뭇쏠리니(mussolini)가 이 끌었던 나치즘의 독일, 군국주의 일본, 파시즘의 이태리는 패배했다.

미국과 영국을 도와 연합군에 참전했던 소련의 스탈린(stalin)은 2차 대전의 승전국의 영예를 누릴 수 있었고, 2차 대전후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국가들과 경쟁을 하며, 세계를 공산화 시킬려는 무모한 짓을 했다.

솔제니친은 볼세비키 공산혁명으로 6000만명의 소련 사람들이 숙청됐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도 이유의 한 가지는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고귀하다”는 휴머니즘이라는 사상이 소련의 공산당 지도자들의 머리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였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이 휴머니즘에 정면도전하는 잘못된 사상이었다.

노동도 생산하고, 자본도 생산하고, 기술도 생산하고, 경영도 생산하는데,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생산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여 자본이 생산한 이윤, 이자, 임대료는 노동이 생산한 대가로 받고 있는 임금 이외의 나머지 가치(잉여가치)라고 어거지 주장을 하였다. 이 어거지 주장 즉 잉여가치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이 생산한 이윤, 이자, 임대료를 획득하는 자본가들은 노동도 하지 않고 소득을 얻고 있는 사람들 즉 불로(不勞)소득자들이라고 인정했다.
자본이 생산한다는 혼합경제의 이념에 따르면 적정한 이윤, 적정한 이자, 적정한 임대료는 자본이 생산한 정당한 대가이며, 불로소득이 아니라 자본소득(資本所得)이다.

적정수준을 초과한 이윤 즉 폭리(暴利).
적정수준을 초과한 이자 즉 고리(高利).
적정수준을 초과한 임대료 즉 고임대료를

획득하는 자들은 自由民主主義 국가에서는 法으로 다스려야 한다. 자유민주사회에는 言論의 自由가 있어서 오부(汚富), 탁부(濁富),졸부(猝富)를 경멸할 수는 있으나, 폭력으로 타도할 수는 없고, 法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정재(淨財)를 모은 청부(淸富)는 존경받아야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부르조아지(자본가 계급)를 폭력혁명(총,탱크, 각목 ,죽창 ,돌멩이로 사람들을 죽이고 정권을 탈취하는 일)으로 타도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사회에서는 살인행위(殺人行爲)로 인정하고 이를 배격한다.

自由民主主義의 사회에서는 국민들이 선거에서의 투표행위(voting behavior)로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할 수는 있으나, 폭력혁명은 허용되지 않는다.
레닌 ,스탈린은 마르크스는 천재이고, 마르크스를 구세주처럼 생각했고, 마르크스 사상에 따라 소련에서 부르죠아지를 타도하는 공산주의 혁명을 했고, 프로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시작했다.

1917년에 폭력혁명(violent revolution)으로 정권을 장악한 소련의 공산당은 소련 국민들의 모든 사유재산을 강탈하고 6천만명의 소련사람들을 숙청하는 잔인무도(殘忍無道)한 짓을 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945년에 끝난 2차 세계대전에서는, 공산주의의 소련이 민주주의를 하는 미국, 영국, 중국 등과 연합군에 가담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은 2차 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소련의 공산당 정권을 이용했고, 세계공산주의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대가를 지불했다.
2차세계대전 후에 소련은 중국의 공산화와 동유럽제국의 공산화에 성공했다.
한반도의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은 공산주의 정권을 탄생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38°선 이남에서는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노동당이 인민봉기에 의한 한반도의 공산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월북한 박헌영은 김일성과 함께 6․25 무력남침으로 한반도의 공산화를 시도했으나 UN군의 참전으로 실패했다.
박헌영과 김일성은 마르크스주의자이고, 레닌주의자이고, 스탈린주의자였다.
박헌영이나 김일성을 중심한 조선공산당원이나, 남조선노동당원이나. 북조선노동당원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잘못된 사상인 것을 모르고 이 마약같은 사상의 포로가 되버렸다.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는 무자비한 살인행위가 인민항쟁이 되고 구국투쟁(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구출하는 투쟁)이 되고, 프로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위한 폭력혁명이 된다는 마약같은 사상에 취한 자들이 미친 사람들처럼 고귀한 인간을 죽이는, 하느님도 사람도 용서 못할 짓을 했다.

4.3폭동은 마약같은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짐승만도 못한 잔인한 짓을 방지하고, 질서를 회복하기위해 공비(共匪)들을 소탕한다는 토벌대는 공비만 소탕한 것이 아니라 선량한 良民들을 사살하는 과잉진압을 했다.

공비와 내통한 사람 즉 통비(通匪)분자라고 하더라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서 재판이라는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선량한 良民들을 처단하는 과잉진압을 했다.

설혹 공산주의자라고 하더라도 무장공비가 아니면 체포하고, 수사하고, 송치하고, 기소하여, 제1심재판, 재2심재판, 제3심재판까지 받을 수 있게 하였더라면, 2년이나 3년 징역형 정도 받고 풀려날 수 있는 사람들도 수없이 죽었다.

여기에 제주사람들의 설움이 있다.

제주사람들은 공비 (共匪) 들에게 죽창으로, 돌로, 총으로, 죽음을
당했다.

여기에 제주사람들의 설움이 있다.

제주사람들은 토벌대의 무분별(無分別)한 과잉진압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여기에 제주사람들의 설움이 있다.

4.3사건의 要因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10년 大韓帝國을 일본제국(日本帝國)이 멸망시키지 않았었다면, 다시말해서 대한제국이 국력을 강하게 길러 일본제국에게 主權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36년 식민지 생활도 없었고,
38°선도 없었고,
美군정도 蘇군정도 없었고,
4.3사건도 없었고,

한국군15만명이 전사하고, 23만명의 한국인들이 인민재판으로 학살당하고, 29만명의 한국인들이 이북으로 납치당했던,6.25도 없었을 것이다.

강력한 국력을 길러야 하는 것은, 그때나, 이때나, 앞으로도 나라의 사명이다.

둘째, 大韓帝國이 멸망한 후에 일본제국이 36년동안 무자비한 식민통치를 하지 않았다면, 韓人독립운동가들을 학살하지 않았었다면, 3.1운동 때,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는 것 때문에, 日帝는 8000명의 韓人들을 죽였는데, 이렇게 하지 않았었다면, 創氏改名도 하지 않았다면, 韓人들의 自治능력을 말살하지 않았었다면, 日本帝國이 1945년8월15일 패망한 때부터
韓人들을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국토분단도,
좌우파의 대결도,
美蘇의 군정도 없었을 것이고.
4.3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선량하지 못한 친구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큰 불행이고 선량하지 못한 이웃 나라가 있는 것도 힘없는 나라에게는 엄청난 불행이다.

셋째, 박헌영이가 이끈 조선공산당이나 남조선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스탈린주의에 마취되어 한반도에서 정권을 장악하는 데는 폭력혁명(violent revolution)을 통해서 하려고 했다.

박헌영이나 남로당의 당원들이 오늘(1991년7월)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공산당의 서기장이고 소련의 대통령 고르바초프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폭 수정하고 있고, 수천만명을 학살한 스탈린을 살인의 미치광이로 규탄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박헌영이나 남로당 당원들이 동족을살해하고, 이웃 사람을 죽이고, 투표소를 쳐부수고(제헌의회 의원 선거),투표함을 불태우고, 경찰지서(파출소)를 습격하고, 경찰관을 죽이는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共匪들 즉 인민행방군은 1,300여명의 공무원과 良民을 납치참살했다고도 하고(제주신보1957.4.3)4,200여명의 우익계인사를 살해했다(현대공론 1988.7월호 유관종)고도 하고 있다.

여기에 제주사람들의 설움이 있다.

思想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석가모니의 大慈大悲 思想은 사람들에게 慈悲로운 행동을 유발케 하고, 孔子의 “자기가 원하지 않은 바를 남에게 하지 말라”는 思想은 사람들에게 仁 의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예수그리스도의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思想은 사람들에게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동을 일으키게 한다.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의 폭력혁명 思想은 이 사상에 취한 사람들이 부르죠아지를 죽이고 살해하는 살인이라는 殘忍無道한 짓을 하도록한다.
思想은 선량한 것도 있고 무서운 것도 있다. 좋은 思想과 나쁜 思想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하고 개발하여야 한다.

넷째, 美軍政下의 한민당(한국민주당)정권은 치안유지 능력이 없었다. 美 군정의 공무원의 70%이상이 한민당 당원이지만 국방경비대를 구성할 때 조선공산당과 남로당의 당원들이 프락치를 침투하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미국정의 美軍고급장교가 공산당 간첩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기도했고, 국방경비대 내에 적지 않은 남로당 당원들이 있었다. 제주도에 서 창설 9연대 내에도 남로당 프락치 문상길 중위 등이 있어서 박진경 연대장을 살해하고 제주도 남로당 조직과 연락하며 폭동을 조장했다.

美군정하의 경찰조직인 경무부도 폭동진압의 경험도 없었고, 부모처자(父母妻子)를 김일성공산당에게 학살당하고, 모든 재산을 강탈당하여, 월남한 서북청년들을, 김만철 일가 대우하듯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서울에서 일자리도 만들어주고, 가정을 이룩하도록 해 주지는 않고, 한국에서 가장 강한 남로당의 게릴라를 소탕하는데,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서북청년들을 제주도로 파견한 한민당 정권의 처사도 非人間的이었다.

남로당의 폭도들이 경찰지서(파출소)를 습격하고, 경찰관을 살해하고, 민간인을 납치참살하고, 약탈, 방화하면서, 제헌의회 의원 선거의 투표소를 쳐부수고, 투표함을 불태우고, 제헌의회 의원선거를 보이코트 시키니 한민당정권은 당황했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하며 적기가(赤旗歌)를 부르고,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죽은 우리의 죽음을 슬퍼말아라. 덮어다오 붉은 깃발을..」하며 인민항쟁가를 부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세」를 외치고,

「五角별 공화국 깃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깃발)」을 한라산에서 휘날리게 했던
共匪들은 3,000명 전후인데, 共匪들의 협박과 공갈에 겁집어 먹고 入山한 사람들 수만명을 무장 共匪들과 꼭 같은 무리라고 한민당 정권은 생각했다.
공비의 협박으로 入山한 사람들도 있으나, 토벌대의 과잉진압이 무서워 피난 겸 入山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도 共匪로 생각했다.

한민당 정권은 사상교육과 선전에서 뒤떨어져 있었다.

한라산의 共匪들은 “김일성 인민군이 목포까지 내려왔다”는 등 인민해방군(인민유격대) 즉 무장공비들이 곧 승리할 것이라고 제주도민들을 속였는데 이에 대한 대항선전을 한민당 정권은 못했다.

인민해방군 즉 共匪들이 승리할 것으로 알고 이기는 편에 붙어야 산다는 생각에서 入山한 사람들도 共匪로 생각 했다.
한민당 정권의 과잉진압은 共匪와 良民을 구별하지 못한데서 발생했다.

무장공비3,000명(김봉현의 제주도민들의 4.3무장 투쟁사)전후만을 소탕한 것이 아니라, 군경200여명의 희생에 공비 사살7,800여명이라고(제주신보1957년4월3일)하고 있는데 ,이 숫자가 사실이어도 4.800여명은 과잉진압으로 희생됐다.

4.3의 인명피해가 27,719명(제주도誌 1984.도지사 최재영, 제주 百年1984.강용삼, 현대공론 1988.7월호 4.3진상,유관종)이라고 하고 있는데, 共匪들을3,000명 전후라고 보면(김봉현)20,000여명이 한민당정권의 과잉진압으로 희생됐다.



(4. 3 특별법을 만든후에 4.3진상조사 및 명예회북위원회가 구성되고
제주도에서 4.3 사건 당시 희생자 예정자를 조사한 결과 14,000 여명이었다.
제주도지 등이 인명 피해가 27,719 명이라고 기술한 것은 고쳐야하고 이 머리말에 있는 27,719 명도 고쳐야할것이다.)

유관종은 군경(軍警)의 희생자를 5,00여명으로 보고있는데, 5,00여명의 군경희생에 27,719명의 인명피해는 분명한 과잉진압이다.

( 27,719 명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14,000 여명으로 수정하여야한다)

여기에 제주사람들의 설움이 있다.

필자는 제주사람들의 설움을 밝혀 내는 총론적 작업으로 「박헌영과 4.3사건 - 남로당의 제주폭동과 한민당정권의 과잉진압-」을 편집 저술한바 있고 1989년 3월에 출판됐다.

「박헌영과 4.3사건」을 집필하기 시작한 1988년부터 4.3사건의 쓰라림을 체험했던 분들과의 대화를 모아 「제주사람들의 설움」이란 제목으로 책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헌영과 4.3사건」이 총론적이라면 이제 출판되는「제주사람들의 설움」은 각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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