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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이라 불리우는 삶의 얘기들
Korea, Republic o 정X구 2 280 2008-02-21 09:37:46
서울에서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그 해 겨울방학 때

네 살 된 아들이랑 데리고 이민을 왔다.
사흘뒤에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시 1학년으로 입학을 시켰다.
오랫동안 이민길이 닫혀있던 때라 영어를 못하는 아이는 내 딸 뿐이었고,
학교에선 딸만을 위한 언어지도교사를 다른 학교에서 초빙해왔다.
그리고 가르치는 도중에 간간 학급에 들어가 친구도 사귀고 하게 해 주던 때다.

근 30년이 되지만 딸과 가족은 그 어여쁘고 자상한 라이벨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며칠 뒤, 차분한 성격의 딸아이가 신발도 벗어 던진 채 거실로 달려와
숨가쁘게 엄마 아빠에게 얘기하는데,
'엄마, 교장선생님이 쓰레기 봉지를 들고 다니며 교실에 들어와 글쎄 쓰레기를 치웠어... '
서울서 담임선생님을 신처럼 생각했던 아이가
교장선생님은 어떻게 머리에 각인 되어 있었겠는지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윤희야, 이 나라는 높은 사람일수록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단다.
사실 쓰레기 줍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니?'
그리 말하면서 속으로 그 교장선생님이 그리도 고마웠다.
딸아이에게 일의 신성함을 몸으로 보여 준 게 고마웠다.
딸아이에게 평등과 협력을 몸으로 보여준 게 고마웠다.
딸아이에게 직업의 귀하고 천함이 없음을 몸으로 보여준 게 고마웠다.


매일같이 마당에 나가 칼싸움하던 동무들 다 놔두고

여기에 와서 맥없이 지내던 아들녀석이 파리라도 한 마리 들어오면

'이놈, 미국 놈의 파리...'하며 쫓아 다닌다.
'아빠, 우리 서울로 빨리 가자.. '라는 얘기가 녀석의 종종걸음에 배어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청 쓰레기 수거차량이 요란한 소릴 내며 아파트 단지에 들어왔다.


서울서와 달리 키가 2층 높이나 되는 게 두 뿔이 달리고 무척 컸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녀석이 달려나갔다.
두 뿔로 엄청나게 큰 쓰레기통을 번쩍 들어올려 위에 쏟아 붇곤 꾹꾹 누른다.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녀석이 들어와 하는 말이,
'아빠, 나 이담에 쓰레기차 운전수 할거야.'

순간적으로 좀 섭섭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녀석에겐 기계류를 다루는
소질이 있어 보였다.
고만한 나이에 요란한 소릴 내는 그 차를 보면서 겁에 질려 우는 아이라면
아마 다른데서 소질을 찾아야 하리라.

녀석이 자라 컴퓨터 기술자가 된 때도, 그 다음에 회계학을 공부하던 때에도
나는 아들에게 몇 차례 얘기 해 주었다.
'아빠는 네가 건설업이나 다른 육체적인 노동 일을 하면 좋겠다.
육체적 노동은 자유로운 마음과 정신을 항상 가진 채 일 할 수 있고,
건강에도 좋고, 덜 스트레스를 받는다.
네 성격이 온화하고 차분하고 조심스럽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도 적다.'

누나와 달리 차분하게 책상머리에서 하는 걸 별 안좋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직업의 귀천을 생각하기 전에 자식의 소질을 먼저 생각할 여유를 가진 건
사실은 이곳의 사회적 환경에 힘입은 바가 크다.
다시 말하면, 내가 서울에 그냥 살고 있다면 그리 할 수가 없었을 거란 생각이다.

나도 자식을 무슨 xx사가 되도록 강제 했을 것만 같다.
말로만 귀천이 없다고 하지 현실이 그게 아니란 걸 누구만큼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 키우며 축구 학키 스키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응급구조 수영..
무어든 다 기본적인 걸 가르치다 아이가 싫어하는 건 그냥 그만두고
학업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었던 게 그리 마음에 흡족 할 수가 없다.
지식 쌓기가 아니라 바른사람에 목표를 두고 가르칠 수 있은 게
그렇게 흡족할 수가 없다.
비올라를 삶의 투쟁을 위한 칼이 아니라 삶의 풍요를 위해 가르칠 수 있었던 게
마음에 이리 좋을 수가 없다.
공부에 간섭치 않고 학업에 찌들지 않게 키워 온 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미 둘 다 30도 넘었지만 자식들의 성격이 밝고 구김살 없는 게 볼수록 대견하다.

지금은 토론토 가까이에 있는 오크빌이란 도시에서
전기시설 공사를 하는 회사에 일하며
생산공장의 콘베어 시설, 전철역사의 전기공사 등 산업전기시설 일을 하는데
아들이 직접 설치한 배전판이며, 전봇대며, 자동 개폐시설이며.. 이런 걸 배경으로
헬멧에 작업복을 입고 땀이 밴 모습으로 자랑스럽게 팔짱을 끼고 서서 찍은 사진들을
몇줄 안부에 끼워 간간이 엄마 아빠에게 보내 온다.

곁들여 보내 오는 며느리의 밝은 표정이

아내의 마음을 행복에 싸이게 해 주는 게 이렇게 흡족 할 수가 없다.


말로만 하는 교육은 백 번을 말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교장 선생님이 있고,

이런 사회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환자의 경중에 따른 병실의 차이는 있지만
환자의 사회적위치나 물질이나 금전적인데 따른 병실의 구분이 없는 사회이기에 가능하다.


공평과 양심, 성실과 헌신...

이 나라 지도급 인사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

그저 머리로 생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감동적이다.

그들의 힘은, 이 사회의 혼탁한 모든 걸 조용하게 가라 앉히고 있다.

자식에게, 제자에게 허구를 가르치기 이전에

스스로 현실을 바꿀 의지와 행동,

지도자 스스로가 몸으로 보여주는
진정한 사회적 양심과 행동이 선행 되어야만 하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아이를 바르게, 밝게 키워야 할 사회적 의무가 있다.



간간 아내가 직장일로 자리라도 비운때면 딸이

출근복을 입은채로 얼른 팔을 걷어 부치고 설거지를 말끔하게 해 치운다.

첼로를 공부하러 서울서 와있는 조카 딸이 얼핏 머리를 스친다.

그래...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산 교육이지...

이제 나도 이만 하고, 아내를 도와 빨래를 해야겠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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