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심리 학자가 보는 남북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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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서울대 명예교수, 한겨레평화공동체 대표) I. 들어가는 말 반세기 이상 분단상태의 남북관계는 2차 세계대전 후 미.소 양대 세력의 한반도 분할점령에 의해 자본주의적 남한사회와 사회주의적 북한사회의 정치이념적 대립관계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6.25 동란은 당시의 미.소 냉전기류와 함께 이 정치적 대립구도를 군사적 대결구도로까지 경화시켰으며, 그 이후의 지속적 분단사회는 작금의 탈냉전(동서 데탕트) 정보세계화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제경쟁적 남북관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치가들은 일제치하를 벗어나 광복되었고 6.25 민족상쟁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남한이 불과 30여년의 짧은 기간에 세계 12위권의 무역대국이 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월드컵 4강의 신화 창조와 세계 최상위권의 정보화 사회가 되었음을 국민들이 긍지로 삼고 살아가도록 교육하고 있다. 또한, 공산 독재 치하에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언젠가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끌어들여 남북통일을 이룩한다는 국정목표의 기조를 정치학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회각계 지도층에서 동감하고 이를 상식화하고 또 합리화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자의 관점에서는, 대한민국의 남한이 아직도 해묵은 이념경쟁의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의 사회임을 직시하게 되며, '얼과 밸’이 빠진 채 제대로의 올바르고 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시되는. 모순투성이의 인간집단들의 사회측면들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남북관계 영역에서, 이 학습된 무력감과 얼. 밸이 빠진 (즉 민족정체성 상실의) 독소현상이 지속되고 있음의 심각성을 지적하지않을 수 없다. 다음에 이러한 배경의 몇가지 심리학적 소견(화두)과 관련 의문들을 어느 정도라도 풀어보고자 한다. 2. 남북관계는 력강자-기강자의 관계인가 한남은 북한에 비해 약 16배의 경제력이 있다고 한다. 즉 남한은 부유하고 국가 경쟁력이 있는 반면에 북한은 가난하고 국가 경쟁력이 미약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남한이 북한을 도와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으므로 대북지원을 하되 절차의 투명성과 대북접근의 속도조절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약한 북한 정권’에 어떻게 하여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고, ‘퍼주기식’ 지원을 해주고도 이렇다 할 응분의 대가를 얻지 못하고 있느냐고 정부의 대북교류.협력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기강자는 력강자를 이길수는 없어도 충분히 대항할 수는 있다‘는 인간세계의 철리가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사회는 비록 경제력은 미약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의 사상무장과 전 인민 군사동원 조직체계화를 바탕으로 하여 정치적으로는 남한사회를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음을 우리가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의 이 정치적 경쟁력은 민족 정통성의 역사문화적 근거 의식(개성의 고려 태조 왕건능, 평양 근교의 고구려 동명성왕능과 고조선 시조 단군능 등)과 함께 ’못살아도 우리가 주인인 자주적 사회‘라는 자존심이 뒷받침되어 힘을 발휘하고 있기도 한것이다. 요컨대, 남한은 경제적 력강자로 그리고 북한은 정치적 기강자로 군임하면서 서로 소모적인 경쟁관계- 개방. 민주사회로의 변화요구 대 민족공조. 자주국가로의 위상요구-가 지속되는 형국인 셈이다. 3. 적색공포(red complex)의 허와 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특히 남한사회의 대북관을 설명하는 진부한 심리학적 개념의 하나가 적색공포이다. 적색공포는 간단히 말해서 적색(red)으로 표상되는 공산주의, 북한 사회주의 체제 및 북한 사람들에 대한 (현실과 유리된) 불합리한 정서(두려움과 혐오감 포함)라고 말할 수 있다. ‘머리에 뿔난 사람들인줄 그렇지는 않더라’ ‘그래도 탈북자를 집안 식탁에 동석시키고 싶지는 않다’ ‘역시 북괴는 양의 탈을 쓴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등 남한사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말들과 선거철마다 정적을 ‘색갈론’으로 비방하는 정당인들의 행태에서 이 불합리한 정서의 흔적과 여파를 자주 읽을 수 있다. 적색공포는 6.25의 참화를 직접 체험한 노인층 및 실향민들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의 2세 세대와 분단체제의 기득권층 영향하에서 성장한 일부 청장년층 외에는 그 ‘신화적 위력‘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거나 미미할 정도로 잠재화된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그러나, 언론에 과장 보도된 탓으로 북한측 인사의 ’서울 불바다론‘에 곧이어 일부 강남 아파트 주민들의 비상식량 사재기 소동이 있었고, 최근까지 논란되었던 국가보안법 개폐론, 북한정권과 함께 한총련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대법원 판례, 그리고 송두율 교수 관련 정부측 ’감싸기‘는 ’대한민국 정체성과 상치되며 위헌적 발상‘이라는 보수 언론의 논조 등은 모두 적색공포라는 정서복합 및 관련 심리적 방어기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요컨대, 6.25 전후 적색공포의 생성과정에서는 그런대로 타당한 실질적 정서구조로 볼수 있었으나, 지금의 비현실적으로 확대 재생산된 색깔론 형태의 공포정서와 그 방어기제로서의 모순된 정치행태와 이른바 이념적 남남갈등은 하루 바삐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4. 단안시적 시각,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극복 한국인의 사고방식은 복합적인 관점에 기초하기보다 주로 단안시적 시각(양자택일적 취향 포함)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장기적 지연후의 실질적 만족보다 단기적 결과에 자족하는 성향이 있고, 중국인에 비해 청결하고 총명한 반면에 ‘굴종적이며 일과성 정열(‘냄비 근성’)이 특징이며 일본인에 비해 솔직하고 인정적인 반면에 단결심과 대인 예절이 부족하다는,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역구결과들이 있다. 또한, 주목되어야할 한국인 사회집단의 특징으로서 내재화된 분노감정, ‘한’의 심리기저가 있으며 불안,긴장으로 점철된 의식구조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의식구조 성향과 사회집단 특성이 남한 측의 대북접촉과 남북관계에 간접적이긴 하지만 상당한 정도의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성향 배경은 대륙-해양 세력의 교량적 특성인 이른바 ‘반도 근성’이나, 반만년 민족사를 통틀어 보면 2년에 한번 꼴로 국난급 외침과 내란이 있어왔다는 환난 통계 속설로도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으로도 접근해봄직 할것이다. 여기서 ‘외상’은 생명과 생활기반에 근본적 위해가 될 정도의 충격적 정서경험을 말한다. 이러한 극히 충격적인 경험 후의 인간은 거의 자연스럽게 불안을 수반하는 긴장(스트레스) 증후군을 보이게 되며, 이 스트레스 증후군은 간헐적인 일과성 정열(‘신바람’ 포함)과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내재화된 분노정서, 소극적 공격성(passive aggresiveness)의 표출 등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는 성격의 증후군이다. 한국 사회의 외상적 경험은, 일제 40년 강점기 중의 전통적 사회정체성의 상실, 여러 피압박적 인권침해 등과, 한국동란을 포함하는 반세기 이상 분단체제 속의 단기적 고도 산업화에 따른 파행적 사회발전 및 기본 가치관의 혼돈 등 여러 가지 사회요인들이 연이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왔다. 남북 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은 물론 이려니와, 최근의 IMF후 1백만 실업자 및 탈모 현상까지의 스트레스 경험 중의 20만 청년실업자의 발생. 세계 최상위권의 자살율, 교통사고 사망률 등은 이 사회의 집단적 외상 경험예들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5. 상생협력의 합리적 남북관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 입안자들과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의 특성을 대체로 ‘2중성-잠정성-특수성’으로 요약하고 있다. 또한 ‘평화와 안보의 2중 전략’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을 것을 주문받고 있고, 현 노무현 참여정부도 대체로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대북접근은 ‘정치체제, 법리상 시각’의 접근과 ‘생명조직, 인격체적 시각’의 접근을 동시에 아우르는, 즉 단안시적 시각을 넘어서는 과거보다는 전향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으로 보여진다. 필자는 정부조직도 예컨대 통일원을 (부총리급) ‘남북관계위원회’로 개편하기를 주장해 왔다. ‘(국토) 통일원‘은 오늘날 국경을 초월하는 시장경제와 정보화시대에 걸맞지않을뿐더러 평화공존의 합리적 남북관계 조성을 위한 과정에서도 기본 개념상의 모순을 안고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남북관계 관련 남남갈등의 극복을 위해서도 인권침해와 고통.소외감 경험의 ‘주변적 사회집단’의 심리적 치유를 위한 정책 입안과, ‘화이부동’의 사회가치관 생활화와 갈등.분쟁 조정능력의 새 시대 지도자교육을 위한 제도적 체계화를 건의하는 바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제주 방문 길에 4.3 사건 피해 유족들에게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사과 표명’을 한 노 대통령의 처사는, 그의 국가지도자로서의 언행 중 가장 환호를 받을만한 것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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