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레 삽(캄보디아)에서 만난 소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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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의 한가한 틈을 타 이것저것 읽다가 읽어볼 만한 글이 있어 게시판에 옮겨 적습니다. (캄보디아) 톤레 삽 호수에서 만난 소년 - 윤영수 (방송작가, 소설가) "언니 1달러!" "오빠 1달러, 한국 돈 천 원!" 소형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야말로 새카맣게 몰려든 앙코르 유적지 아이들은 하나같이 조악한 팔찌를 내밀었다.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에 5년 만에 찾은 앙코르 유적지, 아이들은 서툴지만 또렷한 한국말로 남자는 무조건 오빠, 여자는 무조건 언니를 외쳐대는 상인으로 변해 있었다. 호기심과 두려움 가득한 눈망울로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던 5년 전의 캄보디아 아이들은 이제 없었다. 캄보디아 전체 면적의 15퍼센트에 이른다는 거대한 톤레-삽 호수. 호수 위의 수상촌에 가기 위해 버스는 비포장 강둑길을 2킬로미터 가량 다렸다. 건기라 호수 면적이 줄어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선착장에 닿을 수 있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차창 밖 풍경에 넋을 잃고 있는데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말았다 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어린아이의 머리였다. '열 살 남짓 되었을까?' 깡마른 소년 하나가 땀투성이 얼굴로 버스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녀석은 자꾸 나와 눈을 맞추려 했다.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을까? 그때마다 녀석은 씩 웃었다. '녀석, 실없긴..' 선착장도 마찬가지였다. 팔찌 장수들이 덤볐고 디지털 사진기로 관광객을 찍는 아이들도 있었다. 버스를 따라온 녀석은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 채 숨을 헐떡이며 내 앞에 와서 섰다. 나는 멀거니 녀석을 바라보다가 배를 타기 위해 돌아섰다. 녀석도 미련없이 돌아섰다. 호수를 둘러보고 선착장으로 돌아오자 팔찌 장수들이 예외 없이 덤볐고 아까 사진기를 들고 있던 녀석들은 어느새 관광객의 얼굴이 담긴 접시를 팔고 있었다. '아하!, 그 사진기 역시 장사용이었구나.' 울며 겨자먹기로 내 얼굴이 박흰 접시를 사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어떤 녀석이 선착장으로 향하는 반대편 버스를 따라 달리는 것이 보였다. 아까 나와 눈길을 맞추던 그 녀석이었다. 순간 알 수 있었다. 버스 따라 달리기, 그것은 녀석의 영업 방식이었던 것이다. 사진기는 고사하고 팔찌를 마련할 밑천도 없는 녀석의 유일한 상품은버스 따라 달리기 였다. 녀석은 오로지 몸뚱아리 하나로 생활 전선에 뛰어든 캄보디아의 어린 가장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가장 정직한! 그러나 홍수같은 변화 앞에서 녀석의 원시성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 "어른들이 인생이 뭔지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애쓰는 동안,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인생이 뭔지 가르쳐 준다. " (- 안젤라 슈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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