獅子(사자)가 어린羊(양)과 함께 뒹구는 세상을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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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시고] 인생은 세상을 떠나야 하는 과정이 있게 된다. 그것은 죽음이다. 그런 죽음은 언제든지 인간 누구에게나 다가오게 된다. 聖經(성경)이 주는 죽음에 대한 定義(정의)는 내세로 가는 과정 곧 터미널을 말한다. 인간의 몸을 벗고 영혼으로 사는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인간의 靈魂(영혼)이 자기 몸을 옷과 같이 벗는 날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참으로 많게 된다. 육신에 있던 날들이 참으로 짧고 짧은 순간임을 알게 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러한 시간의 認識(인식)을 가질 것임에도 인간은 지상의 육체속에서 마치도 억 천만년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만일 인간이 來世(내세)가 있다는 이 진실을 알고 있게 된다면 결코 인생의 삶을 하나님의 요구에 맞게 살아갈 것이다. 2. 그런 것을 깊이 깨달은 자들은 인생에게 주어진 肉體(육체)의 시간을 私慾(사욕)에 잡혀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사람이 한순간에 세상을 떠나 영혼으로 사는 세상으로 가게 되면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곧 最後(최후)의 審判(심판)을 말함이다. 그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된다. 다시 육체로 돌아올 수 없는 현실에 茫然自失(망연자실)하게 된다. 인간이 최후의 심판으로 나가게 되면 거기서 永生(영생)과 永罰(영벌)로 나누어진다는 秩序(질서)를 알게 된다. 사실 現世(현세)에서 이런 것은 믿음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라고 하여 각기 자기들의 믿음을 중시하는 노력의 내용으로 치부되고 있다. 자기들이 믿지 않으면 그런 진실이 없게 된다고 애써 여기고 사는 것인데, 그런 것은 스스로를 催眠(최면)에 빠지게 할 뿐이다. 그 眞實(진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 인간은 각기 信仰(신앙)이 있고 믿음의 내용은 각기 다 다르다. 3. 진실은 오로지 하나뿐인데 각기 다른 믿음으로 세상에서 자기 길로 마구 달려간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택의 자유일 뿐이다. 인간은 모두 다 死後(사후)에 다가오는 심판, 결코 避(피)할 수 없는 審判(심판)에 나아가야 한다. 永罰(영벌)과 永生(영생)으로 구별되고 거기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심판의 결과를 따라 永罰(영벌)을 받으러 가는 자들과 永生(영생)을 누리러 가는 자들이 구분된다. 때문에 인생의 길을 여기서 분명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이 이 진실을 否定(부정)한다고 해서 그 眞實(진실)은 없어지지 아니한다. 인생관을 성경에 맞춰 생각한다면 참으로 인생은 행복한 영생의 길을 가게 된다. 인생관을 바르게 갖지 못한 인간은 인생에 대한 이기적인 애착에 빠지고 사욕적인 집착에 사로잡혀 악심으로 강해진다. 한번 뿐인 인생을 사악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발생 발동하게 된다. 그것은 현세와 내세의 불행을 자초하는 선택이다. 4. 인간의 사후는 공평하고 엄중한 審判(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은 진실이고, 이 진실은 인간에게 언제든지 참된 믿음으로 里程標(이정표) 한다. 참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善(선)한 길로 가도록 만들어 준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터미널로서 인식되기에 義(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담대함을 갖게 한다. 그런 담대함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가 되게 하고, 의를 위해 투쟁하는 자가 되게 하고, 이웃의 행복을 위해 利他的(이타적) 自殺(자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있기에 인생은 인생에 대한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데 열심 내게 된다. 반면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생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타인의 奴隸(노예)가 된다. 不義(불의)에 굴복하고 타협하게 된다. 의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貞節(정절)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이웃을 위해 희생하기를 거부하게 한다. 주저하게 한다. 삶의 욕구가 너무나 강하여 타인을 희생하게 한다. 또는 자기사랑의 극대화를 노리게 된다. 5. 짧은 세상에서 돈과 그에 해당되는 이득을 위해 자기 양심을 팔아 버린다. 好衣好食(호의호식)하고 모든 法網(법망)을 피하여 酒池肉林(주지육림)에 빠져 살다가 죽으면 흙이 되리라고 마음을 모질게 먹고 온갖 짓을 하게 된다. 영혼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하는 사상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습성을 갖게 된다. 그것이 自由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과 악마의 노예로 전락하게 하여 이 세상을 참으로 荒廢(황폐)하게 만든다. 인간의 성품은 타락하여 있고, 그 타락한 성품은 나날이 腐敗(부패)해져 감으로서 인생이 사악해져가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노력한다. 인간의 이성으로 타락한 성품이 썩어져가는 현상을 막아보고자 하고 있다. 이번에 두 女兒를 잔인하게 죽인 살인혐의자는 高學歷者(고학력자)라고 한다. 고학력이라도 인간을 그렇게 무참하게 죽이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건과 자연재해가 있다. 그런 자연재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단숨에 죽어나간다. 6. 아직까지는 자연이 인간을 몇 백만을 죽였다는 기록이 흔치 않다. 하지만 인간이 수많은 인간을 죽인 패괴함과 강포가 災殃(재앙)처럼 인류역사에 가득하다. 근자에는 김정일이 350만 명의 북한주민을 企劃(기획)살인하였다. 이를 虐殺(학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인간이 인간을 망하게 하는 그런 일은 자연재해보다 더욱 심각한 일로 봐야 한다. 2차 대전 때 5,00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모택동은 자기 정권을 굳게 세우는 과정에서 약 3,000만 명을 굶겨 죽였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을 파멸시키는 재앙은 실로 자연재해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다. 노아 시대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茶飯事(다반사)로 일어났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敗壞(패괴)하였고 强暴(강포)가 땅에 충만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한국은 살인자들이 처처에 가득하다. 그 세상은 네피림의 세상으로 봐야 한다. 네피림이란 타락한 천사와 인간의 여자가 결합하여 변종인간이 나온 것을 말한다. 7. 그들을 巨人(거인)족속이라고 한다. 그들의 한 끼 식사량이 인간의 30배에서 100배라고 한다면 지구는 식량의 고갈을 맞게 된다. 그때의 네피림들은 식량전쟁을 일으켜 마침내 자기들끼리 잡아먹게 된다. 결국 그들시대는, 그 네피림의 전쟁 속에 인간들도 食糧(식량)戰爭(전쟁)에 빠져들게 된다. 식량을 위하여 서로 잡아 죽이는 과정을 되풀이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온 땅이 敗壞(패괴)해졌고 피가 가득하였고, 그 피를 땅에 쏟게 하는 强暴(강포)가 가득하게 된다. 이런 내용들로 현재를 들여다본다면 네피림은 땅의 强者(강자) 또는 강대국으로 묘사될 수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식량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그러한 식량전쟁으로 몰려갈 확률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지구의 현재도 식량이 한쪽에 너무 치우쳐 없는 쪽에서는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이것도 역시 殺人(살인)이다. 8. 땅의 强者(강자)들이 弱者(약자)들을 잡아먹는 세상이라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弱肉强食(약육강식)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는 먹이사슬적 경쟁력이다. 더불어 사는 경쟁력이 아닌 먹이사슬적 경쟁력이라면 비참한 인간의 환경을 갖게 된다. 그런 환경 속에 인간이 노출되어 있다면 인간 속에는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屍體(시체)가 山(산)같이 쌓여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더 많이 먹고자 하는 자기보호본능 곧 타락한 이기심에 의하여 나타나는 문화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지금 정신없이 부패해지고 있다. 强者(강자)들의 세상으로 먹이사슬적 경쟁력으로 몰려가고 있다. 더불어 사는 경쟁력이 아닌 상대를 죽여야만 자기가 사는 세상으로 몰려가고 있다. 결국 韓民族(한민족)은 짐승 이하의 존재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인간의 救援(구원)이 무엇인가? 9. 인간이 더불어 사는 경쟁력을 가지려면 이타심이 있어야 하고 그 이타심은 하나님 것이 최고의 본질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아가페라고 한다. 아가페를 가진 인간만이 인간다운 최고의 아름다움을 갖게 된다. 악마는 사람에게 짐승이 되기를 요구한다. 악마와 결합한 인간은 땅의 强者(강자)가 되어 약자들을 잡아먹고 산다. 김정일이 그러하다. 김정일은 악마와 손을 잡아 얻어진 권세와 악마의 그러한 능력으로 북한 전 주민들을 잡아먹고 사는 존재 곧 현세의 네피림이다. 악마가 주는 간교한 지혜로 핵무장을 하고 自害恐喝(자해 공갈)단 수법으로 온 세상을 희롱한다. 김정일은 자기 배를 채워주지 않으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핵을 터트려 서울을 망하게 하고 같이 죽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것에 화들짝 놀라는 남한의 천민자본주의자들은 김정일의 뜻에 따라주라고 强要(강요)한다. 그 뜻을 잘 따라주는 것이 햇볕정책이었고 지금은 실용주의다. 10. 실용주의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내용이다. 악마와 결합한 인간들의 獨舞臺(독무대)가 되는 地球(지구)는 弱小國(약소국)의 아픔만 가득하게 된다. 전 지구가 김정일類(류) 같은 악마의 종자들에 의하여 유린당하고 있다. 그 강자들의 팔을 꺾고 굴복시키는 힘이 필요한데 그것이 곧 아가페 사랑운동이다. 이 아가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내신 예수의 길을 따를 때에 공급되어진다. 인간의 지혜는 사탄의 간교함을 따르는 것도 있고, 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을 따르는 거기서 나오는 智慧(지혜)도 있다. 知性(지성)이란 첨단기술문화와 첨단지식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타적으로 사랑함에 있다. 참된 知性(지성)은 이웃을 사랑하려고 努力(노력)한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지성은 결코 지성인이 아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자유를 내주고 적들에게 종노릇하는 약한 존재들일 뿐이다. 김정일은 그들의 그러한 弱點(약점)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11. 김정일의 공갈 협박에 굴복한 그들은 김정일의 손에 묶여 온갖 패괴한 짓을 하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세상은 아주 심각한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하심이라.] 죽음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의 아가페뿐이다. 그 아가페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정일의 공갈협박을 이기게 된다. 아가페로 인간을 사랑하는 運動(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망하게 된다. 그렇게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은 인간을 아가페로 사랑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예수의 속죄의 은총을 누림과 아울러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긴 예수를 따르는 연합의 운동을 해야 한다. 12. 속죄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하나님과 연합하는 예수의 길을 따르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예수의 길을 버리고 자기들의 길로 간다면 결국 대한민국은 악마와 結合(결합)한 강자들의 판으로 갈 것이다. 그 결과는 사회적 약자들이 대거 발생하게 된다. 그들이 악마와 결합한 강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피를 흘리며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는 슬픔의 세월이 발생하게 된다. 북한을 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 또 그런 것이 南下(남하)하여 계속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남한의 강자들이 아가페를 따라 약자들을 섬기는 세상으로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현실은 아주 심각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속죄의 恩寵(은총)에만 머물러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의 아가페를 따를 것인가? 땅의 강자들에게 예수의 아가페를 따르라고 명령하는 책망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예수의 지상명령이다. 13. 땅의 약자들을 착취 갈취 사취 탈취하는 자들에게,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들에게 免罪符(면죄부)를 쥐어주는 교회로만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 강자들을 책망하여 예수의 피의 속죄와 더불어 약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과 연합하는 예수의 길을 따르게 하는 교회로 나아갈지를 선택하는 기로에 있다고 본다. 미혹에 빠진 사람들은 악마와 結託(결탁)하고라도 마침내 강자가 되려고 하고 있고, 또 그런 자들끼리 결속하여 巨大(거대)세력을 이루고 가난한 자를 약탈하고 강탈하고 수탈하고 억탈하고 겁탈하고 오히려 당당하게 뻔뻔하게 희희낙락하며 사는 세상으로 가려고 한다. 이는 人性(인성)이 변질된 것이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예수의 길을 따르는 운동만이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운동이 일어나도록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 기도해야 한다. 예수의 길을 따른 결과에 따라 生前(생전)에 행복한 사회를 얻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14. 뿐만 아니라, 死後(사후)에 영생의 결과를 얻게 된다. 바로 그것을 인식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 지구는 악마와 결탁한 강자들의 땅이 아니요 그들의 독무대가 아니라고 시인하고 복종하는 文化(문화)가 자리를 잡게 해야 한다. 때문에 하나님과 연합한 아가페의 강자들이 나와야 한다. 우리 모두 아가페를 통해 獅子(사자)가 어린羊(양)과 함께 뒹구는 세상을 꿈꾸도록 하자.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소망일 것이다. 하루 속히 북한주민이 김정일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으로 강자된 자들의 손에서 행복하게 되기를 소망하자. 그것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다. www.onlyjesusnara.com www.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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