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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드림' 6년만에 이룬 탈북자 이애란씨
United States 걸작품 3 520 2008-03-23 11:42:37
97년 탈북→호텔 청소부→보험왕→석사학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식품영양학 석사학위를 받는 탈북자 출신 이애란씨.
다음 학기에는 박사과정에 입학,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나이 마흔에 조카뻘인 20대 학생들과 경쟁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하지만 남한 생활 6년동안 겪어온 일들을 생각하면서 어금니를 꽉 물었죠.”

탈북자 이애란 (李愛蘭·39)씨가 다음달 말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식품영양학 석사학위를 받는다. 논문제목은 ‘남한 거주 북한 이탈주민의 식생활 행동에 관한 연구’.

국내 탈북자 205명의 사회문화적인 적응과정을 유형화한 이씨는 “남·북 간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같은 음식인데도 북한에 있을 때와 맛을 다르게 느끼는 경우가 많더라”고 말했다.

아이 딸린 홀어미 탈북자 신분으로 지난 97년 10월 남한 땅을 밟은 이후 우연곡절 끝에 통과된 ‘늦은’ 석사논문이기에 이씨의 기쁨은 더욱 컸다. “지난 16일 석사논문을 과사무실에 제출하러 갔는데, 그동안의 남한 생활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그가 자본주의 체제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까지 겪은 일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처음 북한을 떠나올 때만 해도 남한에 가면 집과 돈·직업 등이 기다릴 것으로 기대했죠. 하지만 실제 남한 생활은 전혀 달랐습네다.”

이씨는 지난 97년 8월 남편을 북에 남긴 채 4개월 된 아들만 데리고 북한을 탈출,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공안을 피해 베트남까지 간 후에야 비로소 서울로 올 수 있었다.

“당시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은 1800만원이었어요. 임대아파트 얻고 나니까 800만원밖에는 남지 않더군요. IMF경제 한파 속에 발이 부르트도록 다녀도 ‘아이 딸린 탈북 여성’을 받아주는 직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첫 직장은 호텔 룸메이드. 월급이 너무 적어 그만두고 주위의 도움으로 간신히 들어간 곳은 보험사. 막상 입사는 했으나 친·인척, 친구 하나 없는 남한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보험에 가입시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내심을 갖고 고객들의 마음을 두드린 끝에 한 달여 만에 첫 계약을 맺었다. 3일 동안 서울 잠원동에 한 건물로 무작정 매일 출근했는데 그 건물에 다니는 30대 회사원이 선뜻 암보험에 가입해준 것이었다.

이씨는 그날 너무도 큰 성취감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자신감을 얻은 이씨는 6개월 만에 ‘수습’에서 ‘일반급’ ‘전업급’ 등 4단계를 뛴 ‘전문급’으로 승진한 데 이어 입사 1년 만에 최고직인 ‘프로급’으로 올랐다.

회사 내에서 이씨의 별명은 ‘보험왕’. 이씨가 지난 2001년 1월에 보험사를 관둘 때는 그 회사 전체 보험설계사 6만명 가운데 실적 9등을 차지할 정도로 남한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이다. 제법 많은 돈이 매달 들어왔다.

“제가 생각할 때도 제가 남한사람들보다 소유욕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하도 ‘뭐 주겠다, 곧 뭔가 이루겠다’는 말에 많이 속아 이제는 내 주머니 속에 뭔가 넣어둬야 안심하거든요.” 보험설계사로 최고의 경지에 올랐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학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2001년. 당시 이화여대에서 ‘북한 실상’과 ‘북한 여성’에 대해 특강하던 이씨에게 학교측은 대학원에 입학하라는 제의를 한 것이다.

나이와 생계 때문에 망설이던 이씨에게 학교측은 장학금을 주겠다며 설득했고, 이씨 또한 북한 신의주 경공업대학에서 전공한 발효공학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에 입학을 결심했다.

“대학졸업 12년 만에 다시 시작은 했지만 어려움 투성이더군요. 영어와 컴퓨터가 특히 괴로웠죠. 영어학원에서 초등학생들과 함께 밑바닥부터 시작했어요.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북한에서 ‘천리마 운동’을 하던 생각을 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학기부터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이씨는 “앞으로 탈북 주민들이 남한에서 받는 문화적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작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탈북자는 일을 못한다는 인식은 옳지 못합니다. 폐쇄된 사회에서 30~40년씩 살다보면 뒤처질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들이 조금씩 참고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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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노을 천배로 포근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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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근바구니 2009-03-30 16:20:23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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