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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아가페실천당]의 출발을 보면서...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211 2008-03-25 11:45:01
1.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하나님의 빛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인간일수록 相對的(상대적)으로 어둡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어두운 빛을 갖게 되는 사람들은 눈이 어둡게 된다. 눈이 어두우면 자기 모든 행동이 깨끗하게 보인다. 빛이 어두워 자신의 缺陷(결함)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평가하기를 행동이 깨끗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방면에서 스스로의 淸潔(청결)함을 강조하고, 사람들 앞에 자신의 純潔(순결)을 자랑하게 된다. 예수님은 이에 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하나님의 빛을 强(강)하게 받을수록 그런 것들은 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나님 빛에서 멀어져 어두우면 자기존재가 가지고 있는 ‘몸의 어두움’을 인식하지 못한다.

2. ‘몸의 어두움’이라는 말은 자기 正體(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에 속고 있다는 말인데, 하나님 빛이 밝아야 자신의 正體(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빛을 인간의 눈 속에 넣어주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 속지 않고 밝게 산다는 말이다. 하나님 빛의 분량만큼 청결한 생활을 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빛이 들어온 만큼의 ‘몸의 어둠’을 버리게 되고 빛을 담은 몸이 되고, 동시에 그 빛을 온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데 모든 방해 사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독교의 聖潔(성결)이라고 하고, 그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성결의 靈(영)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빛을 담는 내용은 最低(최저) 線(선)에서 無限大(무한대)의 차이가 있게 된다. 누구든지 자기선택의지로 선택한 만큼 그 차원의 빛을 담아낼 수가 있게 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최저 선은 넘어야 한다. 각기 밝기의 빛을 받게 되면 그 광도 차이만큼 자신 속에 더러움을 보게 된다.

3. 자신 속의 모든 더러움을 하나님의 눈빛으로 보는 자들은 하나님의 빛을 받은 자들이다. 이런 것을 논할 때는 純全無垢(순전무구)하다는 말로 표현을 해야 한다. 기독교의 聖潔(성결)은 겉에서 꾸며지는 修養的(수양적) 淨潔(정결)이 아니다. 마치 平土葬(평토장)한 무덤과 같이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을 완벽하게 커버하고 감추는 것은 기독교의 聖潔(성결)이 아니다. 기독교의 성결은 하나님 자체를 성결이라고 하고 그 이름을 성결의 영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성결의 영은 예수의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하나님의 성결의 영을 歡迎(환영)하고 迎接(영접)하여 자유의지 선택을 분명하게 표시할 때 들어오셔서 그 사람의 행동을 절제시켜 하나님의 본질을 그 사람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한다. 그것이 곧 기독교의 성결이다.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결의 영으로 성결케 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割禮(할례)’라는 말로 성경에서 표현하고 있다.

4. 엄격히 보면 성결이란 하나님의 빛이 인간의 삶을 주관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빛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성결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이 하나님과 동질성을 이루어 간다는데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결의 영으로 도움을 받아 하나님과 동질성을 이룬다면 거기에는 각기 선택의 분량대로 순도의 차이를 갖게 된다. 이를 ‘동질성의 차이’라고 한다. 그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은 인간의 선택의지에 소원의 분량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고,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같고 그 空間(공간) 안에 각기 間隔(간격)을 갖게 된다고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수많은 계단이 있다면 그처럼 하나님의 동질성(하나님의 빛)을 가진 각 사람마다 그 빛의 밝기가 다르게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큰 빛을 받는 사람은 자기 속에 하나님과의 동질성 여부에 관심을 갖게 되고 동질성을 이루도록 달음질하는 渴望(갈망)이 발생한다. 동질성의 순도를 높이려고 더 많이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본질에 자기 육신의 행동을 빨게 된다.

5. 하나님의 본질과 완전한 호흡일치체(성경의 표현에는 ‘한영’)가 되게 한다. 하나님 본질에 사로잡히면 사로잡힐수록 거룩한 욕구가 발생한다. 마치도 맑고 깨끗한 물로 빨고 또 빨아내는 정결케 하는 것 같은 능력을 갖게 된다. 기독교의 성결이란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결은 인간의 기준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고 우선 예수의 피로 속죄를 통한 주님의 성결의 영이 들어와 그 사람을 불태우고 정화시키고 순화시키고 그리스도의 割禮(할례)를 주어서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가 되는 몸으로 만드는데 있다. 하나님의 본질이 사람의 몸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본질이 인간의 눈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본질이 인간의 귀를 사용하고, 하나님의 본질이 인간의 코를 사용하고, 하나님의 본질이 인간의 입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본질이 그 사람의 팔과 다리를 사용하고, 하나님의 본질이 그 사람의 모든 표현의 세계를 행동의 세계를 활용할 때 그것이 성결인데 그것도 역시 차원이 있다는 말이다.

6. 하나님의 본질의 분량이 그 사람에게 성결의 분량이 되고 하나님의 본질의 분량을 더 많이 받아들일수록 더 성결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 속에 들어와서 그를 淨化(정화)시키는 것이므로 특별히 物理的(물리적) 방법을 쓸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神(신)이 인간 속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본질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성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결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 된다. 이런 것이 어떤 사람 하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본질을 구하는 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주시는 恩寵(은총)이다. 이런 恩寵(은총)을 예수 이름으로 구하여 받는 자들만이 혜택을 보게 된다. 그 자들만이 성결의 靈(영)을 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성결한 자가 된다. 聖潔(성결)이라는 말을 지혜를 통해서도 담아낼 수 있게 된다. 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지혜는 순전무구한 성결이다.

7.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혜는 인간 몸의 모든 신경망에 연결되어 있고 또 그렇게 연결되어서 세상을 살아간다. 그렇게 연결되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의 지혜가 그 사람을 그렇게 그 몸을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만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을 주관한다면 그 지혜만큼 행동의 변화가 찾아온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피로 용서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지혜로 훈련되어 얻어지는 ‘하나님의 지혜의 몸으로 훈련되어 흠이 없는 성결’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성결은 여러 가지이다. 智慧(지혜)의 성결, 아가페 성결 또는 善(선)의 성결이라고 하는 것이 형성된다. 지혜의 성결이란 하나님의 지혜본질을 몸으로 드러내는데 완벽한 호흡일치체가 되었다는 것을 말함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지혜의 몸으로 훈련되어 흠이 없는 성결’이다. 이런 성결의 여러 내용들이 하나님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기는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 눈빛에 더러운 자들로 비춰진다.

8. 세상을 살아가는데 성결한 사랑이라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것이 인간을 진정성 있게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성이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타적 人性(인성)에 의한 본질에서 나오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본질과 사랑과 지혜와 선과 의가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純度(순도)에 있다. 인간의 의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만의 의의 기준을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누릴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한두 사람만 그런 일을 이루라고 하시지는 않는다. 이런 구원의 은총은 ‘누구든지 또는 얼마든지’라고 하셨으므로 누구든지 그런 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러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에 이러한 운동 곧 성결의 운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성령의 운동으로 말미암는 것이어야 한다. 비로소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통해서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임무를 수행케 하신다.

9.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두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드러나는 사람들은 사막과 같고, 광야와 같고, 황무지와 같은 세상에게 꽃이 되고, 장미꽃이 되고, 백합화가 되고, 오아시스가 되고, 행복의 보금자리가 되고, 자유의 수호자가 되고, 義(의)를 이루는 힘이 되어주고, 김정일의 남한적화를 막아주는 능력이 되고, 북한주민을 해방하는 능력이 된다. 그런 자들이 세상을 섬기기 위해 각 職能(직능)으로 들어가서 또는 黨(당)에 들어가서 정치에 入門(입문)한다면 능히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김정일의 남한적화는 악마적 오염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정일에게 汚染(오염)당하는 자들은 결국 김정일의 착취적 기만과 김정일의 착취적 폭력에 물들어 버리고 동류가 되어버린다. 그들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누가 김정일을 이길 수가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를 이기고 그 오염을 막을 수 있는 힘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本質(본질) 밖에는 없다.

10. 하나님의 본질만이 죽음에 屈伏(굴복)하지 아니하고 자유를 지키고 공갈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이웃사랑을 지키고 자기희생을 통해 북한주민을 해방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들로 인하여 대한민국이 지켜지고 그런 자들의 주도하에 대한민국이 경영되어진다면 그때는 대한민국이 세계민족위에 뛰어난 민족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或者(혹자)들이 국가 헌법을 기초로 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기준일 뿐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能力(능력)으로 성결하게 살았다고 하여도 오로지 그것은 하나님의 성결이 아니라, 인간의 성결일 뿐이다. [기독사랑실천당(기독당)]이 나왔다고 한다. [기독사랑실천당]이라고 한다면 ‘예수의 아가페사랑실천당’이라는 말이다. 그 黨(당)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성결로 순전무구한 사랑과 지혜의 경지에 도달한 지도자와 당원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아져서 그 일을 해야 한다.

11. 성령의 감동으로 뭉쳐진 자들 말고, 인간의 육적으로 기독 교세를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다. 소위 말하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통해 정치하려는 사람들이다. 기독교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 기독교 근본주의식으로 이용하여 정치하려고 하는데, 기독교 근본주의라는 것은 이미 어떤 뜻으로 규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 뜻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독교 根本主義(근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우선 기독교 국가라는 말을 품고 있고, 또는 기독교 국가로 나간다고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고,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의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 기독종교란 인간의 힘으로 작위적으로 인위적으로 하나님의 성경의 요구를 달성하는 목표를 두고 행하는 가르침(교육)을 의미해야 한다. 그것이 일반적 종교들의 근본주의 내용과 다를 바가 없는 분류에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함이다. 많은 기독인들은 타종교들처럼 기독종교의 힘을 빌려 神政(신정)일치를 통해서 효과적인 세상을 만드는 경영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고 비성서적인 선택이다.

12. 아마도 그것이 基督黨[기독당]을 만드는 이유라면,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비성서적이다. 성경은 예수의 弟子化(제자화) 곧 하나님의 성결의 영을 통해서 훈련되어진 자들과 그런 집단(교회)을 통해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민주정당의 각 당원이 되고 각처에 들어가서 예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오히려 예수의 이상을 이루는 捷徑(첩경)이기 때문이다. 타종교의 근본주의처럼 교회를 이용하려는 비성서적인 인간적 기준의 성결을 가진 자들이 국가의 공권력으로 국민의 신앙의 자유를 속박하고 독재마인드로 聖經(성경)의 기준을 지키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성결을 끌어내려는 행동을 기독교 근본주의적 행태라고 본다. 그것은 蠻行(만행)이지 아가페가 아니다. 근본주의적인 행태는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이지 하나님이 인간을 통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제 시작하는 [기독당]에 대한 것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13. 만일 한반도에 오순절 성령 운동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성결의 영이 전국적으로 복된 장마 비처럼 대한민국 사람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들이 하나님의 성결을 가지고 不義(불의)와 세상의 惡(악)과 싸우는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 [기독당]을 구성하는 지도자들이 당명에 내건 아가페로 북한주민의 참담한 고통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돌아보았는지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웃사랑을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기초하여 김정일을 위해 일하는 목사들에게 무슨 경고를 했는지? 북한주민을 그 노예상태에서 해방하려는 행동을 얼마나 했는지? 기독교 내에 富者(부자)들에게 구제와 더불어 賃貸費(임대비)를 내려주라고 責望(책망)한 적이 있는지? 농약으로 농사를 짓는 기독인들에게 그것은 간접살인에 해당된다고 소리친 적은 있었는지 묻고 싶다.

14.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은 소경된 인도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인간의 힘으로 작위적으로 인위적으로 정치하여 하나님의 아가페 요구를 만족시키려는 [기독당]이라면 참으로 하나님께 누를 끼치게 된다고 본다. 그들이 내건 아가페 당이라고 하는 것은 그 黨(당)이 당이 구성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아가페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가치,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 자본주의의 가치, 인권의 가치를 위하여 싸워온 자들인가 아닌가를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아니라고 본다면, 그들의 행동은 기독교 근본주의를 이용한 권력에 대한 鄕愁(향수)일 뿐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아가페가 얼마나 强(강)한지 또는 그것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들은 과연 아가페의 종이 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일이다. 주변국에 떠도는 탈북자들을 외면하는 ’기독아가페실천당‘이라면 불신자들의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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