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먼 이야기? 우린 南北이 서로 부대끼며 꿈꿔요” |
---|
‘탈북민 3만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북한 주민들이 한 공간에서 어울리는 모습을 포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와 문화 차이 등을 이유로 탈북민 고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 데다, 심지어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곳에서도 정작 ‘남(南)끼리 북(北)끼리’ 따로 모여 통일을 말하는 모양새다. 이에 데일리NK는 통일 후의 모습을 미리 한국에서 구현하고 있는 사례를 취재했다. 이들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통일’의 모습을 만나보자. “명색이 탈북민 정착 돕는 기관…‘작은 통일’ 실천 솔선수범 하고 있죠”
인사 관리를 담당하는 한상우 운영팀장은 데일리NK에 “남한 출신 직원이 아무리 직접 만나고 책을 읽어도, 탈북민 직원만큼 탈북민을 잘 이해할 수는 없다”면서 “특히 탈북민 직원들이 갖고 있는 탈북 사회 네트워크는 재단이 사업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우리 재단은 국내 공공기관 중에서 유일하게 탈북민 정착·지원을 하고 있는 법정 기관”이라면서 “그래서 탈북민과 함께 해야 한다는 사명과 소명 의식이 다른 기관에 비해 더 특별하지 않나 싶다. 탈북민 채용을 적극 해오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탈북민 출신으로 8년째 재단서 일하고 있는 오태봉 교육개발부 대리는 “통일 후 남북한 주민의 가교 역할을 할 탈북민 리더를 육성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 대리는 “탈북민들이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늘 어떤 지원 정책이 더 필요할지, 예산은 어떻게 분배하는 게 좋을지 고민한다”면서 “탈북민들이 재단 사업을 통해 혜택을 받고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상당한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상이한 두 체제에서 살던 남북한 직원들이 한 군데 모여 있으면 예상치 못한 갈등도 있을 것이다. 이에 한 팀장은 “직원들 간 마찰이나 갈등이 발생하면 오히려 이를 숨기지 않고 아예 공식 의제화해 해결해가고 있다”면서 “남북한 직원들이 조직 내 문제를 직접 극복해가게 함으로써 직원 간 융합과 소통 능력도 더 개선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 대리도 “어느 조직이든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건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면서 이를 해소해가냐는 것”이라면서 “마찰이 생겼을 때 ‘남(南)이나 북(北)이냐’를 두고 바라볼 게 아니라 서로의 성격이나 살아온 배경, 일하는 스타일부터 이해하려고 하면 실마리가 보인다”고 밝혔다. 어떻게 얻은 노하우냐는 질문에 그는 “다른 탈북민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특히 한국 사회 내 조직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일부 탈북민들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오 대리는 “탈북 후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이런 게 차별인가’ ‘나를 외면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위축될 수 있지만, 본인이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다”면서 “긴 안목을 갖고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다보면 조직 내에서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하나 둘씩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장이 막내 탈북민 직원까지 직접 만나 소통…회사 향한 애정 배가 돼”
친밀함의 비결을 묻자, 김영배 대표는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모두 버리고 먼저 다가가 소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와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배운 정도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탈북민들의 성실함은 남한 출신 젊은이들 ‘저리 가라’ 할 정도”라면서 “뒤늦게 기술을 배워 일의 능률이 빨리 오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곤 한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탈북민 직원들은 월급을 한국 사회 정착 비용으로 쓸 뿐만 아니라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친척들에게까지 보내야 한다”면서 “그렇게 쓰고 나면 수중에 남는 게 많지 않을 텐데, 그래도 알뜰살뜰하게 저축하며 살아가고들 있다. 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사장으로서 월급에 한 푼이라도 더 보태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탈북민 박준형(가명) 씨는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남한 출신 직원들과 다른 점이 분명 있지만, 그런 것들로 부딪힐만한 일이 생길 때마다 사장님과 가까이서 소통하니 문제가 금방 풀린다”면서 “요즘은 그저 엘리베이터 한 대 한 대 설치할 때마다 자랑스럽고 기쁘다. 이 기술 열심히 배워두면 통일 후 대박 나겠구나 싶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지금은 이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의 조직으로 거듭났지만, 초반엔 남한 출신 직원과 탈북민 직원 간의 이해가 부족해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김 대표는 “때론 탈북민 직원들이 북한에서의 습관이나 버릇을 지나치게 고집해 난감할 때도 있었다”면서 “그럴 때면 무작정 ‘남한 식(式)으로 해라’라고 강요하는 대신 유대감부터 갖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덕분에 탈북민 직원들도 한국의 조직 문화를 잘 이해하게 됐고, 남한 출신 직원들도 탈북민들이 북한서부터 체득해온 경험을 존중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만의 참신함으로 두 체제서 겪은 경험 녹여내…남북 통일세대 가교 역할 할 것”
통일의 별 회원들은 진정한 통일 준비란 공감대 확산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SNS(사회관계망)와 캠페인, 문화 행사 등을 중심으로 젊은 층에 북한인권과 통일 이슈를 알리고 있다. 언뜻 보면 여느 통일 관련 청년 단체들의 활동과 유사해 보이지만, 이들은 모든 활동에 있어 ‘남북 청년이 함께’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큰 홍보 없이 마련한 캠페인에 수십 명의 탈북 청년이 자발적으로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간 통일의 별이 탈북민과 쌓아온 신뢰 덕분이다. 박현우 대표는 “남북한 청년이 ‘통일의 주역’이 되려면 지금부터 통일 준비를 위한 주체적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봤다”면서 “‘통일의 별’을 운영할 때도 탈북 청년들에게 직접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맡긴다. 아직 미숙해 효율성은 조금 떨어질지언정, 이 과정을 통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남북한 청년들이 모여 토론하다 보면 통일세대들에게 필요한 ‘니즈(Needs)’가 뭔지 금방 깨닫게 된다. 각자 남북한에서 체득한 경험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훨씬 더 세련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는 것”이라면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활동들이 향후 남북한 청년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남북한 청년들의 공동 활동은 비단 같은 청년세대뿐만 아니라 통일의 당위성이나 한민족에 대한 정(情)을 잊고 살았던 윗세대들에게도 다시금 통일을 생각할 계기를 주고 있다고. 특히 이북오도 실향민들에게 남북 청년들의 화합은 언젠가 다시 꼭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고 한다. 백인주 상임이사는 “어르신 분들은 남북 청년들이 함께 어울려 통일 준비를 한다는 것 자체로도 든든한 후견인을 얻었다고 느끼신다”면서 “연일 북한 정세가 복잡하게 흘러가면서 윗세대에도 ‘과연 통일이 되겠느냐’는 회의가 없지 않은데, 이럴 때 남북 청년들이 어울리는 모습이 다시금 통일을 내다보실 수 있게끔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 이사는 이어 “통일 후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등 각종 마찰이 아예 안 일어날 수는 없겠지만, 지금부터 미리 남북한 주민들이 어울려 살아가다보면 통일 후 사회 통합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더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통일의 별’ 활동도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작은 통일을 먼저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