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中영상물 시청 ‘노동교화 5년’ 처벌”…관계 경색 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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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이 최근 중국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다 적발된 주민에게 ‘노동교화 5년형’을 내리는 등 대대적으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제까지 한국이나 미국 영상물에 비해 단속이 느슨했던 중국 영상물을 특정해 차단하고 나서 주목된다. 복수의 데일리NK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외부 영상물 단속 조직인 ‘109상무’가 최근 평양부터 산간 지역까지 파견돼 불시에 가택을 수색한 뒤 중국 영상물 소지자를 발견할 시 즉각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이 109상무는 평양에선 세 명씩 한 개조로, 지방에선 다섯 명씩 한 개조로 활동하면서 감시망을 좁혀오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특히 검열 대상이 되는 영상물에는 최근 제작된 드라마나 영화뿐만 아니라, ‘서유기(西游记)’ ‘수호전(水滸傳)’ ‘양산백과 축영대(梁山伯與祝英台)’ 등 중국의 고전 작품들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영상물의 장르나 내용과는 상관없이 ‘중국산(産)’이라면 전부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최근 데일리NK에 “109상무가 집집마다 불시에 단속을 벌이고 있다. 단속에 걸리면 영상물을 모두 빼앗긴 채 이튿날 보위부에 가서 사상교육을 받고 벌금을 내야 한다”면서 “이미 한 번 처벌을 받은 사람이 또 중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적발되면 노동단련대 6개월 형부터 시작해 점점 처벌 강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중국 영상물을 대량 소지했거나 주변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평균 노동교화 2년에서 5년가량의 처벌을 받는다는 증언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함경북도 소식통은 “온성군에서 중국 드라마를 시청하던 주민 한 명이 보안원 단속에 걸려 ‘노동교화 5년형’을 선고 받는 일이 발생했다”면서 “종종 중국 위성TV 채널이 잡히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중국 드라마나 영화 시청은 꽤 공공연한 일이지 않나. 중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교화 5년을 받는 사례는 처음 봤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어 “큰 처벌을 피하기 위해 남조선(한국) 드라마 대신 중국 드라마라도 찾아보던 주민들은 ‘이제 사회주의 중국 것을 봐도 막 잡아간다’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라면서 “웬만해선 단속원에 뇌물을 고여도(바쳐도) 통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 109상무는 북한 주민이 아닌 화교(華僑)의 집까지 불시의 수색하며 중국 영상물 단속에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예전에는 109상무라 해도 인민반 반장의 허락을 받고서야 화교의 집을 수색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인민반 반장의 허락 없이 화교의 집을 먼저 수색하고 뒤늦게 양해를 구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화교는 중국인인 만큼 중국 영상물을 봐도 ‘유포하지 말라’는 경고만 한 뒤 체포하지 않는다고 소식통은 부연했다. 北, ‘혈맹’이라던 중국까지 ‘반(反)체제’ ‘퇴폐 문화’에 포함시키나 북한 당국이 비교적 단속을 느슨히 해왔던 중국의 영상물에 대해 최근 경계를 강화한 건 지난 2015년 개정 형법의 연장선에 있다고 풀이해볼 수 있다. 올해 4월 연합뉴스가 입수한 북한의 2015년 개정 형법을 보면, ‘퇴폐적인 문화’를 반입·유포·불법보관(183조)하거나 ‘퇴폐적인 행위’를 한 죄(184조)에 대해 정상이 무거우면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퇴폐적 행위’에 대해 개정 형법은 ‘퇴폐적이고 색정적이며 추잡한 내용을 반영한 그림, 사진, 도서, 노래, 영화 같은 것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재현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사실상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등 자본주의 문화를 접하는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북한 전역에서 이뤄지는 중국 영상물 단속 행태를 보면, 이른바 ‘퇴폐적 행위’라는 데 ‘혈맹’이라 강조해온 중국의 문화까지 포함시키려는 모습이다. 자본주의적 요소가 들어있지 않는 중국 고전 작품마저 단속하는 양상은 이례적이다. 재북 당시 한국 드라마는 못 봤어도 중국 드라마는 즐겨 봤다는 탈북민들도 “북한 당국의 정보 통제 의지가 10여 년 전보다 더 강한 것 같다”는 반응이다. 북한에서 중국 드라마 ‘수호전’ ‘양산백과 축영대’ 등을 챙겨 봤다는 탈북민 A씨(2013년 탈북)는 데일리NK에 “지인들과 만나면 대화의 단골 주제가 각자 본 중국 드라마나 영화 얘기였다”면서 “그 때는 단속에 걸려도 중국 영화 정도는 뇌물을 고이면 봐주고는 했다”고 전했다. 北, 中 ‘자본주의화(化)’ 경계하나…북중관계 악화도 주요 원인? 북한 당국이 중국 영상물 차단에 주력하고 나선 데는 최근 중국 문화 콘텐츠에 자본주의 요소가 가미되는 일이 부쩍 늘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수 있다. 약 10년 전부터 중국에서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중국 방송계에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예능과 유사한 포맷을 차용하거나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 영상물 적발이 두려워 중국 영상물을 주로 보던 북한 주민들이 덩달아 한국식(式) 자본주의 문화를 접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실제 중국 영상물에 녹아든 자본주의 문화를 따라하는 북한 청소년들이 많아지면서 학교 차원에서도 이를 단속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양강도 소식통은 “중학교 학생들이 중국 영상물에서 본 자본주의 행위를 그대로 재현하는 일이 자주 발생해 학교에서 ‘자본주의 황색바람 척결’이란 명분으로 학생들 가방을 수시로 검열한다”면서 “학부형회의와 인민반회의에서도 학생들의 자본주의 황색바람 처벌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중국 고전 영상물까지 차단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북중관계 악화에 따른 조치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지난해 중국의 유엔 안전보장회의 대북제재 결의 동참 이후, 줄곧 관영매체 논평이나 대중 강연 등을 통해 중국을 비난해 왔다. 앞서 데일리NK는 올해 초 북한 당국이 ‘중국은 통일을 가로막는 나라’ ‘조중(북한과 중국)관계의 파국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대중 강연을 열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북한 “中, 형제 아닌 통일 가로막는 나라” 주민 강연) 이밖에도 북한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는 중국에 대해 ‘미제를 추종하는 나라’ ‘조중 관계의 붉은 선(레드라인)을 넘어선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내 왔다. 다만 북한 당국이 중국 영상물을 특별히 차단한다기 보단, 체제 결속을 위해 외부 정보를 차단하는 과정에서 중국산 정보까지 포함시키려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 당국이 일괄적으로 외부 정보 차단을 지시했는데, 하부의 단속원들이 이제까지와 달리 중국 콘텐츠 단속까지 나서면서 주민들 사이에 혼란이 빚어진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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