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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주군에서 공개총살된 유○희
동지회 614 2006-09-21 09:50:53
“눈 막았다.” 공개총살을 보기 위해 나온 주민들 사이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저렇게 싸매는 구나.” 공개처형을 처음 목격한 듯한 남성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이윽고 “인민의 원쑤를 향하여 단발로 쐇!”라는 구령과 함께 3명의 군인이 동시에 쏜 총구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20일 일본 TV아사히는 북한 함경남도 함주에서 있었던 공개처형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올해 7월 함주군에서 있었던 군중투쟁 및 공개재판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의 원쑤를 향햐여 단발로 쏴”라는 구령과 함께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수인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진다.(사진:TV아사히 캡쳐)

현재 경기도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함주군 출신 탈북자 김옥희(가명, 2005년 입국)씨는 “함주군에 공개처형 하는 곳은 한 곳밖에 없다”며 “공개처형을 했다면 함주군 장마당 뒤의 벌판일 것”이라고 말했다.

함주 동영상은 지난해 3월초 공개돼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함북 회령 동영상과 마찬가지로 공개재판을 포함, 총살 장면이 생생히 담겨 있을 뿐 아니라 공개재판에 앞서 4월경에 열린 것으로 알려진 ‘군중투쟁(이 글에서는 7월 공개재판과 함께 진행된 군중투쟁과 구분해서 사용하기 위해, 이하 군중투쟁은 공개재판 전에 있었던 군중투쟁을 지칭한다)’ 장면까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군중투쟁 자리에서 함주군 인민보안서 서장이 다른 범죄자들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에 의하여 사형에 이르기까지 엄격히 처벌한다”고 선고하고 현장에서 체포를 지시한 함주 ○○공장 노동자 유O희씨가 7월에 공개재판을 받고 총살을 당했다.

보위원 출신 탈북자 이기철(가명, 2005년 입국)씨는 “군중투쟁은 한마디로 약식재판과 공개적 기소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군중투쟁) 그 자리에서 판결을 받고 끝나지만 공개재판까지 세워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철호(가명, 99년 입국)씨는 “군중투쟁을 벌이고 공개재판을 한 후 바로 형을 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공개재판전까지 예심기간을 가진 후 적당한 시기에 총살을 집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함주는 함경남도 소재지인 함흥 옆에 위치해 있다.(사진:NK조선)

이날 공개재판을 받은 사람은 십 여 명, 판결은 죄의 경중에 따라 세 부류로 나눠지는 것 같았다. 녹음상태가 좋지 않아 죄목 또는 판결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우선 첫 번째 부류는 주로 고등중학교 학생들로 판결내용과 죄목은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부류는 노동단련대형을 선고 받았다.

군중투쟁에서의 판결 결과를 미루어 봤을 때 고등중학교 학생들은 불순 출판물과 녹화물(한국이나 외국 영화나 음악테잎 등) 시청, 청취, 보관 등으로 적발돼 청년동맹 등 해당 조직에 넘겨 처벌(훈방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단련대 형을 선고 받은 사람들은 형법으로 처벌하기는 경미한 절도나 폭력 등을 범한 사람들로 보인다.

그리고 세 번째가 공개총살을 당한 유O희씨다. 군중투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유씨의 죄는 지인인 엄모씨의 집에서 강냉이 10㎏를 훔치는 과정에 집에 있던 엄씨의 어린 딸이 저항할 것을 우려하여 살해한 것이다. 이후 유씨는 강냉이를 팔아 3,500원(북한 돈, 최근 북한 암시장 환율로 환산해 보면 약 1달러 정도다)을 마련해 음식물로 바꾸어 전부 소비한 후 도주했다가 2005년 11월에 체포되었다.

한편 본 방송 중국 소식통은 당초 “7월 초로 예정되어 있던 공개총살이 김일성의 사망일인 8일을 피해 10일에 집행됐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함주군 출장 중에 공개총살을 목격한 북한 주민으로부터 이 같은 소식을 들었다”면서 현재 이 북한 주민은 여권을 소지하고 중국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자유북한방송 200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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