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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만에 부른 "여보"
동지회 899 2007-01-04 10:12:35
1975년 8월 동해상에서 조업 중 납북된 오징어잡이 어선 ‘천왕호’의 사무장 최욱일(67)씨가 31년여 만에 북한을 탈출했다. 최씨는 현재 중국 모처에서 한국 정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으나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씨는 지난달 22일 함경북도 김책시 풍년리를 출발, 24일 함북 혜산에 도착, 25일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옌벤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로 오른쪽 이마 위 8바늘을 꿰매는 등 사선(死線)을 넘어 31일 마침내 옌벤에서 부인 양정자(66)씨와 31년여 만에 해후(邂逅)했다.

최씨는 “이제 죽어도 돌아갈 곳은 내 고향 한국밖에 없다”며 “하루 빨리 한국에 갈 수 있도록 꼭 도와달라”고 말했다. 앞서 납북된 천왕호 선원 33명 중 한명인 고명섭씨가 유일하게 2005년 중국을 거쳐 귀환했다.

◆사선(死線)을 넘어
지난해 12월 8일 함경북도 김책시 풍년리 최욱일(67)씨의 집에 낯선 남녀 두 명이 찾아왔다. 1998년 중국을 통해 남한의 가족들에게 살아있다는 편지를 보낸 뒤 2001년부터 여덟 번째 찾아오는 낯선 이들이었다. 납북된 이래 30여년 동안 한시도 잊지 않은 고향이었다. 하지만 주위엔 날카로운 감시와 경계의 눈초리가 항상 도사리고 있어 그냥 돌려보내거나 보위부 등에 자진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최씨의 꿈에는 부쩍 자주 아내 양정자(68)씨가 보였다. 결국 최씨는 죽음을 각오하고 남한행을 결심했다. 드디어 12월 22일 최씨는 안내인들을 따라 김책시를 출발, 혜산행 화물차에 올랐다.

덮개도 없는 화물차 짐칸에는 쌀부대, 돼지 잡은 것 등 온갖 잡동사니 화물과 그 위에 30여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오금을 펼 수도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앉았지만 12월 험준한 백두산 기슭에서 불어오는 북풍(北風)은 뼈 속까지 스몄다.

24일 밤 혜산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13개의 검문소를 지나야만 했다. 경비대원들은 화물차 짐칸에 올라 꼬챙이로 쌀부대를 꾹꾹 찔러봤다. 이틀 밤을 화물차 짐칸에서 새우잠을 잤다. 24일 마침내 혜산에 도착, 하룻밤을 묵고 25일 초저녁, 최씨는 또 다른 중국인 안내인들과 합류해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나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최씨가 남쪽 가족으로부터 돈만 받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줄만 알고 있던 안내인이 최씨가 북한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중국 공안(公安)에 신고라도 하는 날이면 끝장이었다.

최씨 일행은 두만강을 건너자마자 미리 대기시켜놓은 택시를 타고 쏜살같이 눈길을 달려 그날 밤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바이(長白)에 도착했다. 창바이엔 미리 와 기다리고 있다던 아내와 딸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최씨는 “그때 ‘아내가 날 남한으로 데려가려고 하는구나’ 하고 짐작했다”고 말했다.

12월 26일 오전 최씨 일행은 아내가 있는 곳을 향해 눈길을 달리다 승용차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앞서 가던 원목을 실은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뒷자리 가운데에 앉아있던 최씨는 앞으로 튕겨나가면서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다. 최씨의 이마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겨 8바늘을 꿰맸다. 하지만 언제 또 중국 공안이 들이닥칠지 두려운 최씨 일행은 급히 병원을 떴다.

◆마침내 상봉
그러나 아내를 만나기까지는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다. 12월 31일 오후 드디어 부인 양씨를 만나러 가자는 기별이 왔다. 북한인 안내인을 포함해 안내인들과 함께 중국 모처의 한 식당에 들어섰다. 그곳에 꿈에도 그리던 아내가 있었다.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패이고 돋보기를 썼지만 분명 부인 양씨였다.

하지만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북한인 안내인이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중국인 안내인들이 북한인 안내인에게 술을 권하며 안심시키는 한편 최씨와 양씨가 조용한 곳에서 얘기나 나누도록 하자며 북한인 안내인을 따돌렸다.

최씨 부부는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그곳을 떠나 또 다른 안전가옥에 도착했다. 드디어 최씨가 북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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