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까지 평양 수해복구 가능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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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NK 2007-08-20 10:48 [긴급점검]대성·중구역 최우선 수습…전체복구에 최소 3개월 소요 북한이 수해복구를 이유로 남북 정상회담을 10월 초로 연기함에 따라 한달 남짓한 기간에 평양시를 완전하게 복구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18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명의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최근 평양을 비롯한 북한지역에 수해로 인해 복구가 시급한 점을 고려해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10월 초로 연기할 것을 제의해 왔다. 북한이 명시적으로 북한 전지역의 수해복구를 이유로 들었지만 사실상 평양 복구에 최소 한 달이 소요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상회담을 준비할 여력도 부족했겠지만 평양을 찾는 노무현 대통령과 남측 방북단에 '전시(展示) 도시'로 만들어진 혁명의 수도 평양시마저 비 피해로 폐허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 당국은 앞으로 한달여 기간 동원 가능한 모든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 평양시 복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타지역 인민군·돌격대는 평양 복구 불가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는 16일 "7일부터 11일사이에만도 시에는 40년전(1967.8.25~29)에 평양일대를 휩쓸었던 큰물때보다 224㎜나 더 많은 비가 내렸다"고 밝혔다. 평양 일부지역은 수위가 2m까지 차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동강과 보통강 주변 도로와 공원 등이 상당부분 침수됐고, 3~4개의 지하철역이 물에 잠기는 등 대중교통수단이 전면 중단됐다. 외빈들을 수용하던 보통강호텔도 일부 침수됐으며 청류관, 안산관 등 유명 식당들과 15만석 수용능력의 5.1경기장도 침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영상만 보더라도 대부분 평야지대인 평양시의 침수면적은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 같이 넓은 면적에 밀려온 감탕(뻘)과 토사를 우선 치워야 하는데 복구 중장비 부족으로 대부분 인력으로 걷어 내야 한다. 일부에서는 인민군과 각 지역에서 조직된 복구 돌격대를 평양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평양 외곽지역을 제외한 중심부는 일반 군대와 노동자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할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도 평양은 통행증이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복구 인력도 예외는 아니다. 평양 중심부 복구에 투입될 수 있는 인력은 평양방위사령부와 호위총국, 그리고 일부 공병대와 평양 주민들이다. 물론 동원할 수 있는 중장비를 모두 동원하겠지만 이마저도 복구 작업에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성구역과 중구역 복구에 전력 기울일 듯 따라서 남은 한달여 기간 정상회담에 차질이 없도록 평양 시내 주요 시설과 도로에 대한 복구 작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그 외 지역은 정상회담 이후까지 복구가 진행될 전망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백화원 초대소가 소재해 있는 대성구역과 중구역의 도로 정비와 시설 보수, 초대소 북쪽에 위치한 금수산기념궁전 구역 복구를 최우선적으로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예정대로 육로방북을 추진한다면 평양-개성 고속도로 정비에 지방 군부대를 총동원할 것이다. 북한 당국이 남은 한달 기간 복구에 최대한 노력한다면 정상회담이 열리는 10월 초까지 평양 중심부는 겉으로는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곳곳의 수해 흔적은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수해복구 사례를 보면 수해 자체뿐만 아니라 복구도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의 기간임을 말해준다. 1995년 압록강 상류에 내린 집중호우로 수풍댐의 전체수문을 개방시키자 신의주, 의주지방과 중국 단둥이 물에 잠겼는데 당시 '신의주 대홍수' 복구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신의주는 아파트 1층까지 잠기고 도로에 물이 범람해 교통이 마비됐다. 당시 단둥은 주요 건물들의 아랫층이 물에 잠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수해복구작업에 동원됐던 신의주 관서대학 출신 탈북자 김정철(가명)씨는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거리바닥과 중학교실 안에는 감탕이 50cm나 쌓였던 곳도 있었다"며 "신의주 시내 관서대학, 경공업대학, 차광수대학, 만풍대학 등 주요대학과 중학교, 인민반원들이 총동원 됐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당과 시당국에서 '수해복구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매 단위별로 구간마다 끊어 맡겼다"며 "사람들은 삽, 곡괭이, 맞들이(들것)를 들고 감탕을 퍼내 순전히 등짐으로 날랐다"고 말했다. 그는 "홍수에 스러진 물퉁이(여물지 않은) 옥수수를 따다 삶아먹고, 현미쌀 한 공기씩 먹고 일했다"며 "대학마다 경쟁을 시켜 어느 대학이 빨리 강둑을 쌓는가하는 경쟁을 붙였다"고 술회했다. 이렇게 시작된 수해복구는 8월 중순에 시작돼 11월까지 약 석달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중장비라고는 블도젤(져)이 한대 있었는데 기름이 없어 쓰지 못하자 지휘부에서 기름 한 드럼통(180kg)을 가져오는 사람은 작업을 면제시켜준다고 선포하자, 두 명의 학생이 돈으로 기름을 사다 바치고 놀았다. 그러나 돈이 없는 나를 비롯한 대부분 학생들은 몸으로 때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수해상황과 관련해 "물론 평양시민들이 조직력이 있어서 감탕과 모래를 빨리 퍼낸다 해도, 건물 도색을 다시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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