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사관의 북한 사람들을 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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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칼럼 2007.09.07 23:04 80년대 말에 본 미국 영화 가운데 ‘스쿠프(scoop·특종)’라는 영화가 있었다. 어느 날 미 대통령과 나사(NASA) 본부장이 은밀한 합의를 한다. 엄청난 돈을 들여 화성 탐사 로켓을 쏴 올리는 건 실익이 없다는 합의였다. 화성 탐사보다 더 급하게 도와야 할 어려운 미국인들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나사 지하에는 우주인들이 탄 캡슐이 설치되고, 온 세계에 TV로 중계되는 로켓 발사 장면은 우주인들이 타지 않은 빈 껍데기로 한다. 우주 공간을 날아가는 우주인이 미국의 중학생 아들과 나누는 대화는 실제로는 나사 지하와 지상 간의 전화 통화로 이뤄진다. 모든 것이 TV 카메라 조작이었다. 이 엄청난 비밀을 나사의 직원 하나가 한 신문기자에게 누설한다. 미 대통령은 이 신문기자를 살해할 것을 지시한다. 살해에 나선 비밀요원과 살아 남아서 진실을 전하려는 신문기자는 쫓고 쫓기는 장면을 연출한다…. 외교 현장에는 비밀이 많다. 비밀을 기자들이 알게 됐을 때 외교관들은 기자들에게 국익을 내세운다. “국익이 손상되니 절대로 보도하지 말아달라.” 그러나 지나고 보면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지켜진 것은 국익이 아니라 외교관들로서 지켜야 할 업무상 비밀에 불과했을 경우가 더러 있었다. 다음달이면 6년째를 맞는 김하중(金夏中) 주중 한국대사에게도 그런 오래된 비밀이 하나 있다. 비밀이란 베이징 시내 한국 영사관 내에 150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지하에 수용하고 있는지, 영사부 내 별도 건물에 수용하고 있는지 기자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알 길이 없다. 영사관 내에 100~200명의 탈북자들이 살고 있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벌써 몇년이 된 일이다. 많을 때는 300명을 넘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식비도 서울에서 타 와야 하고, 수용 업무 관련자도 갈수록 누적 숫자가 늘어나 이미 외교부 내에서는 비밀도 아니다. 국정감사 나온 국회의원들에게 보고를 하니 웬만한 국회의원들도 다 안다. 그저 대다수의 국민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베이징 한국 영사관 내에 많은 탈북자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가족을 데리고 탈출한 40대와 아리따운 처녀가 함께 수용돼 있다가 눈이 맞아 40대 남편과 그 부인이 부부싸움을 벌인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게 뭐 중요한 일은 아닐 수 있다. 한국 영사관에 탈북자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 그걸 묵인해준다고 중국 정부가 북한 보기에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 우리 국익을 해치는 일이 된다는 것이 김 대사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해보자. 베이징 한국 영사관으로 아직도 이렇게 많은 탈북자들이 밀려든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는 유엔 고등난민판무관(UNHCR)에 탈북자를 정치적 난민(難民·Refugee)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한다. 중국 외교부에도 탈북자를 몇 명씩 보낼 때마다 자비와 선심(善心)을 요구할 게 아니라 탈북자들을 난민 대우를 해서 공개적으로 보내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리고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가려는 탈북자의 흐름이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큰 흐름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나중에 역사가 기록하게 한다. 그런 생각은 국익을 해치는 것이고, 베이징 한국 영사관에 수용된 탈북자들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일까. 공개하는 게 지금도 끊임없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건너오는 탈북자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길은 아닐까. 얼마 전 북한에 지난 1990년대 초반보다 더 큰 홍수가 나서 더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넘어오게 됐으니, 이제는 공개적으로 더 많은 탈북자들을 살릴 길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박승준 베이징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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