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앞서간 개방파 결국 낙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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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앞서간 개방파 결국 낙마 김달현(金達玄)과 김정우(金正宇).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 속에 1990년대 북한의 경제 개혁과 개방을 이끌던 고위 경제 관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김 위원장에 의해 이제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김 위원장은 평소 자신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참모가 없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은 “그렇지만 ‘한 발 앞서 나갔다가 잘못되면 책임을 면치 못한다’는 분위기 때문에 앞서가는 참모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달현·김정우 등이 바로 그런 분위기의 희생자인 셈이다. 김달현 전 부총리는 김정일이 1992년 7월 경제대표단 단장이라는 모자를 씌워 ‘서울에 가서 배우고 오라’고 지시했을 만큼 각별히 아꼈던 사람이다. 김 전 부총리는 서울에서 남한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직접 보고 평양으로 돌아가 “군수(軍需)용 전력을 민수산업 쪽으로 돌리는 게 어떠냐”고 주장했다가 군부의 반발을 샀다고 한다. 또 그해 10월 남측의 대우 남포공단 관계자들이 방북했을 때는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로 시장이 없어져서 자본주의 국가와 협력을 해야만 한다”고 했을 정도로 개방 지향적이었다. 김정일 외할머니(강반석)의 인척에다 화학·경공업·무역 전문가여서 일찌감치 총리감으로 지목되던 그였다. 그러나 1993년 12월 부총리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탈락했다. 김달현은 김일성 사후 김정일 위원장이 전권을 행사한 시기에도 복권(復權)되지 못했다. 김달현은 2000년 12월 사망했다. 나선(나진·선봉)경제특구사업을 총지휘했던 김정우 전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장관급)도 마찬가지 경우다. 1996년 4월 대외경제협력추진위 부위원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국제여건이 변하고 있는데 대외 협력을 무시하는 것은 시대 착오”라며 “북한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이점을 충분히 알고 있어 앞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시장 진출에 비중을 두게 될 것”이라고 ‘폭탄선언’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이듬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도 참석, 시장 논리의 도입 등을 역설했지만 그는 나선특구가 흐지부지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1998년 말 나선특구 외국 기업 유치와 관련해 부정 축재를 했다는 혐의가 씌워졌다. 1997년 WEF 동아태 경제정상회의에 참석, “남포와 원산을 보세특구로 개방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던 김문성(金文成) 전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도 이 발언 이후 1998년부터 종적을 감춘 뒤 여태껏 공개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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