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반간첩투쟁전람관에 조작 간첩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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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NK 2007-09-19 18:09 어둠의 권력 국가보위부의 간첩조작 실태 지난 5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외국인 간첩 및 이들에 협조한 북한 주민들을 검거했다며 이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열어 대외에 공개했다. 북한이 이번 사건 발표와 함께 여러 물증을 공개했지만 그동안 북한 내에서 이뤄진 간첩 조작사건이 많아 탈북자들 다수는 조작 내지 확대 포장 가능성을 놓지 않고 있다. 2006년 1월 26일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는 ‘동백림사건’이 실체는 있으나 당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간첩단’으로 확대됐다고 발표했다. 진실은 더 살펴야 하지만, 탈북자들은 정작 과거사위원회가 필요한 곳은 북한이라고 말한다. 북한에는 각 도(道)마다 ‘반(反) 간첩투쟁전람관’(안보전시관에 해당)을 만들어 간첩사건 연루자와 물증에 대한 사진 등을 전시해놓고 있다. 북한이 반세기 동안 강조해온 반제 반미 투쟁의 산 교육장소가 바로 이 전람관이다. 함경북도 청진시 ‘반(反) 간첩투쟁전람관’에는 황금 절도범이 간첩으로 둔갑해 처형된 뒤 그 사진까지 전시된 기막힌 사연이 있다. # 사례1. 금 밀수범 가족 전체가 간첩단으로 몰려 2002년 국내 입국한 탈북자 한철준(가명·36) 씨는 함경북도 온성군 온탄구에서 한 인민반에 속해있던 가족이 순식간에 간첩으로 체포된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이 가족 사건은 수사가 종결된 후에 반간첩투쟁전람관에 관련 사진과 함께 전시됐다. 간첩사건 주인공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거주하며 외화벌이사업소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직장인 장경민(가명)씨. 이 사건의 배경이된 함경북도 온성군 온탄구는 그의 부모님이 계시던 고향이었다. 한 씨는 “1988년이었다. 10월 어느날 저녁 9시경에 우리 집을 방문한 장 씨 어머니가 집에서 사용하던 일부 부엌세간도구들을 들고 왔다. 웬일인가 했더니, 우리 엄마에게 그 물건들을 주면서 그동안 잘못한 일이 있다면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장 씨 어머니는 밤 늦도록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는데 다음날 일이 생겼다. 장 씨 가족 모두가 중국으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당시 장 씨 가족은 두만강을 건너다가 7살 난 딸과 아버지가 물에 빠져 죽었다. 한 씨는 “당시 인민반 모임에서 장 씨 가족이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이며 살아남은 가족들은 전원 중국에서 송환될것이라고 인민반장이 보고했다.” 이어진 한 씨의 증언은 매우 충격적이다. “얼마 후 살아남은 장 씨 가족은 전원 북한에 송환됐다. 그 후로는 장 씨 가족의 소재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참 무서운 일이 있었다. 죽은 장 씨의 딸과 아버지는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온탄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사거리(토사 도로)의 교차점에 묻어버렸다. 조국반역자들이어서 죽어서라도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라는 말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장 씨는 금을 밀수하고 해외로 도주한 조국 배반자였지, 간첩 혐의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한 씨는 2년 후 중학교 6학년(17살)이 돼서 교육교양차원에서 학교가 조직한 함경북도 청진시 ‘반 간첩투쟁전람관’을 학급 동무(학생)들과 방문했다. 전람관을 관람하던 중에 '반공화국 간첩분자'라는 설명과 함께 벽에 장 씨 어머니와 살아남은 가족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일부 장 씨 가족을 알고 있던 동무들도 모두 금 밀매자가 간첩으로 둔갑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장 씨는 간첩이 아니라 금을 몰래 빼내다 판 밀매업자였다. 당시 인민반장이나 온성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북한에서 금은 모두 김정일 손에 들어가게 돼있다. 사실 북한에서는 큰 죄다. 그래도 간첩은 아니질 않는가. 금 밀수가 들통나면서 보위부 조사를 받게 되니까 몰래 가족을 데리고 온성에 와서 부모님과 남동생을 데리고 탈출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 사례2. 성경책만 소지해도 간첩이 된다 양강도 보천군 가림리(가산리)역 근처에 살던 안금숙(가명, 체포당시 24세)씨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에 먹고살기 위해 압록강을 넘은 평범한 북한 여성이다. 1996년 첫 탈북을 한 이후 2차례나 북한을 다녀가면서 홀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조했던 안 씨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3번째 방문 때에는 성경책을 가져왔다. 그러나 안 씨가 북한 국경경비대 군인들에게 체포되면서 성경책 휴대사실이 발각됐다. 안 씨는 성경책을 들여오려 했다는 죄목을 쓰고 보위부에 넘겨졌는데 이후 안 씨는 영영 볼 수 없었다. 2005년 남한에 입국한 양강도 출신 탈북자 박명철(가명)씨는 “북한은 안 씨가 남조선의 안기부 놈들이 중국 흑룡강에 만들어놓은 종교학교에서 간첩임무를 받은 간첩이라고 선전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양강도 혜산에 위치한 ‘반 간첩투쟁전람관’에 가면 체포 당시 안 씨가 휴대했던 성경책도 있다”며 “북한이 안 씨의 사진을 걸어놓고 전람관 방문자들에게 반 간첩투쟁의 당위성을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북한에서 간첩은 어렵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중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고향소식을 전해도 간첩이 될 수 있다. 최근 북-중 국경지역에서 주민들이 핸드폰으로 남한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를 하다가 잡혀도 간첩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보위부가 어떻게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90년대 후반 사회안전부(경찰청)가 '심화조'라는 간첩잡는 조직을 만들어 농업담당비서 서관히와 평남도당 책임비서 서윤석 등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때 2만 5천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간첩혐의로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번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발표한 간첩사건에 언급된 현지 동조자도 ‘반 간첩투쟁전람관’에 교양자료로 선전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북한에 ‘반 간첩투쟁전람관’은 평양과 각 도소재지들에 한 곳씩 있으며 각 도‘국가안전보위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김민세 기자(신의주 출신, 2005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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