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머리끈 직접 만들어 착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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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2007-10-04 11:51 탈북 가수가 말하는 실상, 남한 드라마 CD 적발 위해 규찰대 조직도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남한 드라마와 영화가 담긴 CD를 서로 돌려봤어요. ‘가을동화’ ‘겨울연가’ ‘눈꽃’ ‘질투’ 뭐 웬만한 건 다 봤어요. 하지만 걸리면 퇴학이나 유급을 당하고 심하면 온 가족이 심심산골로 추방당하기 때문에 몰래 봐야 했지요. 빨리 보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하니까 밥도 안 먹고 1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밤새워 봤어요. 집에서 커튼을 내리고 문마다 다 잠그고 보다가 인기척이 나면 서둘러 CD를 숨겼지요. 젊은 사람만 그런 게 아니에요. 부모님도 같이 봤으니까요. 사람들이 자꾸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니까 보위부나 보안서에서 임의 순간에(갑자기) 가택수색도 많이 했어요.” 남한산 의류 흉내낸 ‘짝퉁’ 나돌아 ‘달래음악단’의 전 멤버 한옥정(29)·강유은씨(20)는 북한 사회에 부는 남한 바람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8월 결성한 달래음악단은 탈북자 출신으로 구성된 5인조 여성그룹으로 지금은 사실상 해체된 상태. 달래음악단 활동 당시 한씨는 리더이자 보컬을, 강씨는 아코디언과 노래를 맡았다. 한씨는 2003년, 강씨는 2005년 각각 한국에 왔다. 북한에서 평양연극영화대학에 다녔던 강씨는 남한의 드라마나 CD를 가진 대학생을 적발하기 위해 규찰대도 조직됐다고 전했다.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들로 구성된 규찰대는 학교나 거리에서 지나가는 학생을 무작위로 지목, 가방을 뒤져 책갈피에 숨겨놓은 CD를 찾기 위해 혈안이었다는 것.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 시청은 자연스럽게 북한 젊은이들의 패션과 미용에 영향을 끼쳤다. 1999년 ‘안녕 내사랑’을 통해 김희선이 유행시킨 X자 머리핀은 한국 여성은 물론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흰 천으로 풍성하게 만든 머리끈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남한 여배우들이 굵은 갈색 눈썹과 입술로 출연하자 북한 여성들도 따라했다. 한옥정씨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를 ‘황색바람’ 또는 ‘비사회주의 날라리풍’이라며 비판했다고 한다. 황색바람이라고 하는 이유는 미국인의 금발머리를 빗댄 용어로, 자본주의 바람을 일컫는다. “우리는 김희선이나 최진실이 드라마에서 하고 나온 하얀 머리끈을 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직접 만들었어요. 흰 원단을 사서 안에 고무줄을 넣어 꿰맨 다음 머리를 맸지요. 전 고향이 중국이랑 가까운 함경도에 살았는데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청바지를 입었는데 청바지 주머니에 888이라는 숫자가 새겨 있다고 보위원이 주머니를 떼어낸 거예요. 중국은 8자를 좋아해 중국을 통해 유입된 청바지 주머니에 그런 글자가 있었던 건데 보위원이 그 글자를 떼어낸 진짜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어요. 전 서울에서 1988년 8월에 올림픽이 열린 줄도 몰랐는데 청바지의 그 글자가 그것을 상징한다는 거예요.” 두 사람에 따르면 북한에서 남한산 의류는 최고로 친다. 어떤 경로로 남한 옷이 유입되는지는 모르지만 한글이 쓰인 상표를 자른 채 판매하는 옷이 꽤 있다는 것. 상인들은 상품이 남한산임을 강조하고, 비싸게 팔기 위해 상표를 자를 때도 한글이 살짝 남게 자른다. 북한에서 만든 기성복이 없기 때문에 한글 상표가 있는 옷은 모두 남한산이라는 것. 가격이 비싸 남한산 옷을 입는 사람은 상당한 부유층에 속한다. “북한에는 중국산 옷이 많은데 중국산과 남한산은 원단 자체가 다르고 질적으로도 차이가 커 가격차도 크지요. 2004년 중국산 겨울점퍼가 1만~3만 원일 때 남한산 겨울점퍼는 20달러(북한 돈 4만 원)였어요. 그런데 4만 원이면 4인 가족이 한 달 동안 살 수 있는 큰 돈이에요. 남한 기성복을 입는 사람은 극히 소수예요. 그래서 남한 옷 모양을 흉내낸 ‘짝퉁’도 많았지요.” 학생들 사이에서는 ‘~거든’ ‘~했잖아’ 등 서울 말씨를 사용하는 것도 유행했다. 강씨는 “연약한 느낌의 서울 말씨를 쓰는 게 유행하는데 북한 당국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니까 심지어 이런 우스갯소리도 돌았다”고 설명했다. “남녀 학생 둘이 버스를 탔어요. 여학생이 서울 말씨를 흉내내 ‘오빠, 우리 지금 집에 가는 거야?’ 하니까 남학생이 ‘그래, 우리 집에 가는 거야’라고 했대요. 그랬더니 뒤에 서 있던 보안원이 ‘너희 둘,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라고 했대요. 철저해야 할 보안원까지 몰래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보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남한 말씨가 튀어 나왔다는 이야기지요.” 이불 뒤집어쓰고 남한가요 들어 6살 때부터 가수로 ‘키워진’ 한옥정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남한의 노래를 늦은 밤 이불 속에서 몰래 들었다. 특히 트로트를 즐겨 들었다. 가사를 노트 5권에 빼곡히 적어 외웠다. 그 때문에 어머니의 걱정이 컸다. 한씨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 앞에서 남한 노래를 흥얼거릴까봐 염려돼서다. 탈북 후 ‘달래음악단’ 시절, 그가 SBS TV ‘도전 1000곡’에 출연해 우승을 한 것도 북한에서 남몰래 트로트를 포함한 남한 가요를 열심히 들은 덕분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널리 유행한 남한 가요는 김범용의 ‘바람바람바람’과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윤도현밴드의 ‘너를 보내고’ 등이다. 또 북한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의 가사를 모방해 말하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네게 달려갈 테니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니”라고. 각각 서울생활 2년과 4년. 남한에서의 삶은 북한에서 꿈꾼 것과 같지는 않다. 한옥정씨는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으로 남한 사람들은 모두 하늘하늘한 커튼이 달린 2층 집에 살고 자가용을 굴리는 줄 알았다”며 “그러나 막상 겪어본 남한은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고 냉정한 사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씨는 “그런 만큼 남들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매며 노력해 훗날 통일이 되어 고향에 찾아갈 때 친지들에게 남한에서 당당하게 성공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강유은씨는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교통사고가 나는 일이 많아 다 쇼로 알았는데 막상 남한에 오니 진짜 자동차가 많아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본주의 사회가 냉정하기는 해도 좋은 사람도 있는 것 같으니 감사하면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한씨는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솔로앨범을 준비 중이고, 강씨는 최근 서강대 정외과 수시모집에 합격해 남한에서 대학생 생활을 시작할 예정이다.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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