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혀있던 통로 열려 가족 만날 날 꼭 올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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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2007-10-12 19:22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녘 땅을 밟는 순간, 누구보다 절절한 심정으로 TV를 응시한 사람이 있다. 새터민 이선호씨(36·가명·대전시 서구). 함경도가 고향인 그는 10년 동안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먹고 살 수는 있었지만 자녀의 미래를 생각해 탈북을 결심했다. 몸서리치게 추웠던 2005년 1월, 어머니와 아내, 네 살배기 딸과 함께 고향을 떠나 그해 7월 대전에 정착했다. “사는 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30년 넘게 몸에 밴 북한 체제를 금세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처음에는 남한 사람들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현 직장(대전병원 원무과)을 구하기 전까지는 여느 새터민처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된 세월을 이겨내야 했다. 일용직 노동, 우유 배달, 자동차 정비 등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린이 집에 다니는 딸아이가 ‘아빠 여기는 무지개나라 같아요’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안정을 찾은 가족의 모습에 행복을 느낍니다. 도와주신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씨는 남한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 대한적십자대전·충남지사 새터민 정착도우미 임영순씨(48)를 ‘이모님’이라고 부르며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1개월이면 봉사기간이 끝나는데도 수개월째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줬다. 그는 새터민의 고용과 의료지원에 배려를 아끼지 않은 대전병원 천의범 원장에 대한 은혜도 잊지 않았다. 어머니가 북에 두고 온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이씨는 이번 정상회담에 소박한 기대를 걸어본다. “노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이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펼쳤으면 좋겠어요. 당장 통일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닫혀 있던 통로가 열려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명절이면 아버지 산소에 가지 못해 가슴이 미어진다는 이씨. 남북 정상이 만나 악수하는 평양의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니 북녘의 큰 누나와 형이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푼돈이라도 저축하며 생활하니 이제 자신감이 생겼어요. 앞으로 병원일과 공부를 병행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다시 만날 때까지 북한의 가족들이 살아만 있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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