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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최대 구리생산지 혜산광산 침수돼
REPUBLIC OF KOREA 관리자 616 2007-10-31 12:16:02
데일리NK 2007-10-30 14:18

소식통 "삼수발전소가 침수 직접원인…가동 어려운 상태"

북한 최대 구리(동) 생산지인 혜산청년광산이 침수돼 광산 가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대북 소식통은 30일 “양강도 혜산청년광산 지하 갱도에 물이 차서 상당부분 침수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삼수발전소가 담수를 시작한 지난해부터 물이 차올라 이제는 광산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혜산광산은 북한 구리생산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은 이곳에서 향후 40년간 구리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롼허(灤河)실업이 혜산청년광산의 지분 51%를 매입하려고 시도했으나 제2경제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삼수발전소는 2004년 1월부터 ‘당 사상선전일꾼 돌격대’ 연인원 3만명을 동원해 건설한 수력발전소다. 이 삼수발전가 북한 최대 구리생산지인 양강도 ‘혜산청년광산(혜산광산)’을 침수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

혜산광산이 침수될 경우 북한은 막대한 양의 구리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정치적 이유로 추진한 5만kW발전용량을 가진 댐 건설 때문에 북한 최대의 구리 광산을 포기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관련기사=삼수발전소는 선전부와 조직부 권력 암투 산물]

올해 7월 국내에 입국한 혜산 출신 탈북자 정윤심(가명·37) 씨는 “혜산광산은 이미 포기한 것이나 같다. 삼수발전소 언제에 물이 다 차오르자면 3년이 걸린다. 지금 광산으로 유입되는 물도 처리 못하는데 총 담수량이 13억 입방(㎥)미터가 넘는 수압으로 침수되는 물을 뽑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삼수발전소냐 혜산광산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수발전소는 양강도 혜산시 장안리에 건설됐고, 혜산광산은 혜산시 마산동 부근에 위치해있다.

삼수발전소는 2004년 2월 건설 당시부터 내부적으로 논란이 큰 사업이었다. 삼수발전소가 건설될 경우 혜산광산 지하 갱도가 침수되기 때문에 건설은 절대안된다며 중앙당 조직지도부와 탐사관리국, 채취공업성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당시 정하철 선전선동비서와 최춘황 중앙위 제1부부장(두 명 모두 정치적 숙청이 확실시 됨)이 정치적인 입지를 세우기 위해 김정일에게 강력히 건의, 발전소 건설 승인을 얻어냈다.

당시 선전부는 언제(댐) 바닥에 시멘트물을 높은 압력으로 분사해 넣고 진흙을 3m로 다지면 누수를 막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당시 현지를 탐사했던 프랑스 댐 건설 관계자들마저 지질이 석회암 지대인데다 지형마저 불안정해 누수를 막을 수 없다며 건설을 반대했었다.

혜산광산은 1960년대 개발돼 연간 1만톤의 구리 정광 생산능력을 가진 광산이다.

일제시대 개발된 ‘갑산 동점광산’이 1990년경 광맥 고갈로 폐광되면서 혜산광산은 북한 동 생산의 ‘생명선’으로 간주됐다. 이 광산은 1990년대 중반 침수되었다가 다시 복구됐다.

당시 북한 전체의 전력 사정이 악화되면서 지하 갱도에 있는 양수설비들이 가동을 멈춰선 것이 침수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광산 관계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시간당 480㎥씩 차오르는 물을 퍼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7년 1월 북한의 다른 광산들과 마찬가지로 혜산광산은 완전히 물에 잠겼다. 갱 안에 있던 모든 설비들도 함께 수장됐다.

혜산광산 침수의 또 다른 원인은 노동자들이 광산 설비 자재에 들어간 구리를 떼내 중국에 밀수출하면서 기계설비들이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1999년 혜산광산을 방문한 채취공업상은 간부들 앞에서 “지금 제2경제(군수경제)에 들어갈 구리가 없어서 나라사정이 어려운 형편에도 칠레에서 달러를 들여 사오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양강도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1998년 10월 김정일은 양강도 현지지도를 하면서 혜산광산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를 받은 뒤 “어떤 대가를 치르고도 광산을 살리라. 필요한 자금은 내가 보장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즉시 양강도 책임비서와 채취공업상을 책임자로 하는 광산 복구 실무그루빠(그룹)가 조직됐다.

김정일은 ‘혁명자금’ 명목으로 1998년에 380만 달러, 2001년에 260만 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광산에 보냈다. 1998년에도 아사자가 속출하던 시기로 당시 중국에서 사오는 옥수수 가격이 톤당 137달러였다. 약 2만8천톤의 옥수수를 사올 수 있는 액수였다. 당시 양강도 주민들은 '장군님의 혁명자금'에 대한 강연제강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복구 지시가 떨어지자 혜산시 마산 1동과 2동의 주민들이 주말마다 동원돼 갱 안에 차있는 감탕(뻘)을 퍼냈다. 2003년 5월 1일 지하 710m 막장까지 물을 다 퍼내는데 성공했다. 그 해부터 광산은 1500톤의 구리 정광을 생산했고, 2004년에는 3000톤을 생산해냈다.

김정일의 지시로 숱한 주민들의 희생과 700만 달러를 들여 복구한 광산이 삼수발전소 건설로 다시 침수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 씨에 따르면 김정일은 양강도 현지지도에서 혜산광산의 침수 사실을 전해 듣고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라며 말을 바꾸었다고 한다.

삼수발전소의 발전능력은 5만kW이다. 2003년 완공된 양강도 삼지연군에 새로 건설된 아파트들에 소요되는 전기소요량만 6만kW이다.

결국 김정일은 5만kW 삼수발전소를 짓기 위해 3만 명의 인원을 3년 반 동안이나 하루 580g의 배급으로 14시간의 노동으로 혹사시켰다. 그리고 북한 내 최대 구리 생산 광산인 혜산청년광산을 희생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김정일에게 “국정 상황을 꿰뚫어보는 능력과 북한 체제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가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치켜세웠다.

문성휘 기자(자강도출신, 2006년 입국), 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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