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 ⑧북한의 내우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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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07-12-24 07:05 '주체' 수십년에 체제 생존게임 전락 북한 정권도 2008년 환갑을 맞는다. 1947년 유엔이 '유엔 감시하의 남북한 총선거'와 '북한 불응시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결의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1948년 8월 북한만의 선거를 실시, 9월9일 제1기 최고인민회의를 구성했으며 단독정권을 세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출범시켰다. 만주에서의 항일투쟁 경력을 내세운 김일성 주석은 당시 초대 내각 수상에 올랐고 그의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을 지배하는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공산주의 건설을 구호로 소련과 중국의 후원 속에 출범한 북한 정권은 '남조선 해방'을 내세워 일으킨 6.25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정치.군사적 대립구도에 빠졌고, 특히 소련 해체를 계기로 국제적인 고립 속에 급격한 체제 몰락을 겪으면서 지금은 생존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북한이 자초한 첫 시련인 6.25전쟁에서 북한은 인적 손실은 물론 산업시설과 농토 대부분이 초토화되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고, 결정적으로 미국의 대 공산권 봉쇄망에 갇히게 됐다. 전쟁의 상처를 복구해 가는 가운데 북한은 내부적으로 정치권력 투쟁이 본격화됐고 결국 김일성 세력의 승리로 막을 내려 김일성 유일지배 체제의 기반이 구축됐지만, 이 역시 북한 사회의 역동성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전쟁과 전후 복구 과정에서 친중(연안)파인 무정과 친소파인 허가이, 남한 출신의 남로당파인 박헌영 등 권력의 경쟁자들이 줄줄이 제거됐고, 특히 1956년 8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소련파와 연안파를 일소함으로써 김일성 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이 공고해졌다. 1960년대 들어서는 중.소 갈등 속에서 초반엔 소련과, 후반엔 중국과 격렬히 대립하면서 외교적 시련을 겪어야 했다. 북한 정권은 최대 후원국이었던 소련과 중국간 갈등 때문에 줄타기를 하면서 생존전략으로 주체사상을 내세우기 시작해 '사상에서 주체, 경제에서 자립, 정치에서 자주, 국방에서 자위'를 모토로 군사화와 경제발전의 병행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전략은 경제침체로 이어져 1967년 종료할 계획이었던 7개년 계획은 3년이 지난 1970년에야 가까스로 마칠 수 있었다. 경제.외교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김일성 주석의 장남 김정일 현 국방위원장이 1960년대 후반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한 주요 부서에서 출발해 1974년 2월 중앙위 정치위원이 됨으로써 후계체제가 구축됐다. 그는 이어 1980년 10월 열린 제6차 당 대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군사위원회 위원자리를 거머쥐면서 후계체제를 공고히 했다. 북한이 1980년대 내부 정치에 골몰해있는 가운데 국제적으로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줄줄이 붕괴하고 소련과 중국 등이 무역대금의 경화 결제를 요구하면서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북한의 경제 침체는 최고조를 향해 치달았다. 외교적 고립과 1990년대 초.중반 심각한 경제난으로 북한 정권은 남한과 미국을 통한 돌파구 마련에 나서 남한과는 총리급 고위급회담을 통한 '기본합의서'를, 미국과는 핵을 카드로 대화를 시작했다. 포용을 대북정책의 근간으로 하는 남한의 김대중 정권과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포진한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 및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방미가 이뤄지는 등 북한의 대외환경에 큰 전기가 오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 의혹을 제기, 제2차 북핵 위기가 생기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체제위기 타개 전략은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결국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해 북한의 마지막 카드로 간주되던 핵실험을 강행했고, '때마침' 중간선거에 참패한 부시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압박 일변도에서 협상 기조로 바꿈에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번째 기회를 맞고 있다. 북핵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및 대적성국교역법 대상 해제와 북한의 핵불능화 및 핵프로그램 신고를 맞바꾸는 합의가 이행되고 있는 것이다. 북핵 해결 과정에서 최대 고비로 간주되는 이 합의의 이행 결과에 따라 북한 정권이 출범 60주년을 맞는 2008년은 6.25전쟁에서 비롯된 북미간 적대관계가 해소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문제는 북한 정권의 결단. 미국은 북한이 성실신고하면 북미관계 정상화를 비롯해 북한에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 보낸 구두답신은 현재로선 신고 수준을 짐작하기 어려운 원론 수준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인 2008년은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며 "북한이 핵프로그램 신고라는 장애물을 잘 넘긴다면 북미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도 내년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북한은 늦어도 8월까지는 문제를 풀어야만 할 것"이라며 "북한이 여기서 2000년 클린턴 행정부 말기 협상 때처럼 머뭇거린다면, 60년만의 기회를 놓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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