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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한의사의 신통방통 침술
Korea, Republic o 관리자 2012 2008-01-09 03:18:34
자유북한방송 2008-01-08

남북한이 다른 점은 민주주의사회와 독재사회라는 제도의 이질적 차이 일뿐... 北에서 능력발향은 사실 어렵다.

침통 하나들고 탈북 해 남한으로 내려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멋진 성공신화를 쓰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탈북자가 있다.

그가 바로 2006년 한국에 입국, 현재 “광명 평생 침술원”원장으로 사업하고 있는 북한 한의사 출신의 탈북자 최철명(45)씨이다. 금침하나로 현대의학으로 치유가 어려운 병을 고치겠다고 나선 최 씨는 남한에 입국하여 지금까지 1년간 여러 명의 중풍환자와 간암말기 환자, 교통사고로 전신감각이 마비된 환자, 안면신경마비 환자를 치료했다.

그는 현대의학으로는 고치기 힘들다는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자신이 몇 십년간 연구 터득한 금침시술로 치료해 거의 완치수준으로 회복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신의주 의학대학 출신으로 북한에서 군부대 한의사로 근무했던 최철명씨는 북한의 식량난이 한창이던 1997년 부대를 떠나 독자적으로 돈벌이에 나선다. 워낙 아는 것이 많고 침술에 능한지라 최 씨는 얼마 안 돼 “신통한 명의”로 신망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2년간 온 평북도 땅을 누비며 치료활동을 하던 최철명씨는 의료행위에 미신행위를 접목했다는 죄명을 쓰고 보안서에 체포된다. 최 씨는 자신의 침술을 미신행위로 매도하는 안전원들에게 “자신의 침술은 동의보감과 이제마의 사상의학”에도 나오는 의료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신고를 받고 그를 잡아들였던 안전원들도 그의 말에 공감하고 석방하려고 했으나 보위부에서는 계속 잡아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최철명씨가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러시아에 임업대표부 한의사로 들어가 있으면서 말실수로 보위부 조사를 받았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벌목공으로 나온 한 친구와 술을 마시다“여기 나와 보니까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못 사는 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독재국가이다.”라는 한마디 말 때문에 보위부에 잡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동안 보위부에서는 최씨를 석방한 후 줄곧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왔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는 침술을 미신행위로 몰아 사람을 괴롭히고 감시하는 북한체제가 싫어 1년 후 안전부감방에서 풀려난 뒤 바로 침통 하나를 들고 탈북하게 된다.

중국에 들어와서도 침술로 여러 환자들을 고쳐주며 신임을 얻게 된 최씨는 사람들의 소개로 중국공안간부를 알게 되며 그의 장모의 병을 치료해 주고 도움을 받는다. 그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오게 된 최철명씨는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침술원을 꾸리게 된다. 처음에 최씨가 침술원을 꾸리고 환자치료를 한다고 하자 많은 이들이 그를 비웃었다. “도무지 검증 안 된 침술을 누가 믿겠냐? 자격증이나 있냐? 북한에서 온 한의사가 안 봐도 돌팔이지”라고 말이다.

그는 처음 온통 자격증 천지인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정상적인 의료 활동을 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격증을 취득한다.

최씨는 “북한사람은 무조건 부족하다고 여기는 일부남한사람들의 인식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며 “남북한이 다른 점은 민주주의사회와 독재사회라는 제도의 차이일 뿐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은 다 같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북한이 발전하지 못한 원인은 김정일 독재정권이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인재들의 창의적 발전을 억누르기 때문이다”며 “북한주민들도 민주주의 사회가 되면 남한보다 더 발전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발전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가 속한 여단은 금광을 캐는 외화벌이 부대로서 중좌급 이상의 군관들만 쌀밥을 먹고 나머지 군관들은 모두 옥수수밥에 염장무(단무지)만 먹을 정도로 사정이 한심했다고 한다. 군인들은 어떻게든 굶어 죽지 않으려고 밤이면 군관들의 인솔 하에 민가를 습격하고 농장을 터는 도적떼로 변했다고 한다. 1999년 여름, 한 개 중대의 군인들이 평북 동림군의 한 농장을 습격하다 경비를 서던 제대군인들과 싸움이 붙어 5명이 맞아죽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여단 군의소 한의사로 있을 때 영양실조에 걸려 비틀거리던 수백 명의 군인들이 눈앞에 얼른 거린다며 아무 죄도 없이 군대에 끌려나와 비참하게 청춘을 유린당하는 그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김정일 독재정권은 무너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희망이 있다면 “3층짜리 빌딩을 하나 구입하여 1층에는 한의원을 차리고 2층은 살림집 3층은 실험실겸 임대사무실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만약 이런 포부가 현실로 된다면 북한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힘껏 보탤 것이라 밝혔다.

김대성 기자 lstar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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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다쟁이 2008-01-09 12:12:50
    이 침술원이 어데있어요?위치를 알려주실수 없어요??저는 회사직원이라 시간은 일요일밖에 없는데 일요일이면 병원마다 문을 닫아서 치료받고 싶어도 못가고 있는데요..함 이곳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고 싶습니다.메일은bcm924@dau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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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술원 2008-01-09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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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대직이 2008-01-09 15:43:46
    맞아요.
    침술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우리 아버님께서도 북에 계실 때에 한의를 하셨지요. 물론 할아버님때 부터 였나 봅니다.
    6.25가 나자 배낭하나 걸머지고 일찍이 피난하셧습니다. 당시에 빨갱이들은 지식인은 모두 반동으로 분리했거든요. 피난 나온 과정과 아버님을 만난과정은 너무나 극적인 사건이라 여기서 말씀드릴수 없고...
    하여튼 1.4후퇴이후에 경기도 강화에서 아버님을 만났는데
    당시에 강화에는 병원이나 약방이 다 피난을 가서 없었습니다.
    전쟁 이후니까 전염병이 말 할 수없이 돌았는데 모든 환자를 아버님이 혼자 감당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돈이 많은 집의 큰 아들이 당시 30세 가량? 몹쓸 병에 걸려서 식구들이 포기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소문을 들었어요.
    머슴을 시켜 가지고 무조건 아버님을 모셨습니다. 아버님이 보시니까 전혀 가망이 없었대요.
    그래서 약을 쓰자니 약이 너무 아깝고 해서 이왕에 왔으니 침이나 한 대 놔 주자 생각을 하고 침을 놓고 사랑 방에 가 있는데 주금 있자니까 안방에서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끝이로구나 하고 갔더니 꼼짝 못하던 사람이 일어 나 앉고 변소에 가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아버님께서는 못 믿고 마지막 기를 쓴다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완쾌되었어요.
    너무나 놀라운 사건이지요?
    이게 바로 침술입니다.
    참 귀한 분이 오셨네요. 앞으로 잘 되실 것입니다.
    힘 내시고 후배도 많이 양성 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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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더리 2008-01-11 20:20:08
    "광명 평생 침술원"과 "양천 평생교육침술원" 이 같은침술원입니까?
    신통방통하다기에 저도 한번 가보려고 하는데요.
    그리고 토요일도 진료가 가능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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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수치료사 ip1 2017-09-18 02:52:29
    현제 허리때문에 고생하는 61세 남성입니다.
    그런데 주소를몰라 가지를못합니다. 주소좀부탁드립니다.
    이메일: wjdqhr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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