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초(超)국가 네트워크로 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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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8-01-31 23:15 지난 22일 영국 런던의 채텀하우스에서 제8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10년 만에 한국의 우파가 집권하면서 한국 정부의 북한인권 외교정책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인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서방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한국의 시민단체와 대학, 영국의 권위 있는 연구소, 노르웨이의 인권단체가 신문사, 연구기금 등의 후원을 받아 개최한 이번 회의는 그야말로 글로벌하고 다양한 행위자가 참여해 '초국가 네트워크의 구성'이란 새로운 지구촌 질서 형성 과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이번 회의는 또 북한의 인권 상황을 거론하는 것이 더 이상 진보-보수 간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소위 '조용한 외교'를 추구해왔다. 시민사회의 이에 대한 비판은 친미, 보수로 간주되어 인권문제가 진보-보수의 논쟁 소재가 되어 왔다.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의 벽을 넘어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도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회의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는 방법론에 대한 이견을 좁히는 것이 다음 단계의 도전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진보 측에서는 탈북자들의 일방적인 의견만 듣고 규탄하고 성명서나 발표하는 그런 식의 국제회의는 아무런 효과가 없으니, 북한 당국자를 회의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다. 보수 측에서는 가해자인 북한 당국자와 피해자인 탈북자들을 같은 자리에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며, 인권유린을 자행한 당사자를 불러 그들의 변명을 듣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은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권리와 가치를 향유하는 데 밑바탕이 되는 기본적 조건―사람들의 의식, 경제발전, 안보를 북한과 관련해서 논의해 보고자 하는 장을 열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권문제를 안보문제와 연계하여 동구권 인권 개선에 기여했던 헬싱키 프로세스를 북한에 적용시켜 아시아판(版) 헬싱키 프로세스를 시행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인권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이 있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헬싱키 프로세스는 단기간 그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하지만 유럽 각국의 외교관, 정치인, 북한문제 전문가, 북한인권 관련 시민단체, 탈북예술인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해 이러한 논의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세계는 이제 주권국가들 사이의 협력만으로 그 규범과 질서가 형성되지 않는다. 비(非)국가행위자들의 역할이 증가하고, 정보화와 기술화를 기반으로 여러 행위자들의 네트워크가 질서 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북한은 더 이상 자기들의 인권유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미국의 제국주의 압박정책의 일환이라고 치부하기 어렵게 됐다. 글로벌 시대의 글로벌 네트워크 지구체계는 그러한 북한의 억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유럽국가들, 중립적인 세계 시민단체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북한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인권개선에 힘써야 한다. 우리의 새 정부도 지난 진보정권의 '조용한 외교'를 비판만 하고 북한 인권을 규탄하는 압박 정책만 추구한다면 실질적인 개선을 끌어낼 수 없다.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북한인권을 둘러싼 초국가 네트워크에 적극 참여하고, 그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등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장·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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