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들이여, '北붕괴 실제상황'을 준비할 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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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NK 특별기획 2008-02-01 17:26 Ⅰ. 북한은 이 세계에서 경제가 가장 낙후된 곳 중의 하나이지만, 비대한 군대, 핵, 화학, 세균무기를 쌓아놓고 이를 돈벌이(강성대국)에 이용하는 특이한 집단이다. 또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간판을 걸고 있지만, 21세기에 강제수용소를 내치(內治)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한마디로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지배집단이 내부폭력으로 인민을 착취탄압하고, 호전적 언행으로 주변국가로부터 원조를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조공(朝貢)을- 강요하여 연명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다면, 그리고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공분(公憤)이 없다면 이 세계의 어느 국가도 이 시대착오적 골치덩어리와는 아무 관계도 맺지 않고, 다만 이 집단이 망했다는 소식을 외신으로 듣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지금 자생적 시장경제인 장마당의 확산과 막대한 외부 원조로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황폐화된 공공경제와 부패 그리고 비대해진 군대로 인해, 3정(三政:세금, 군대, 식량)이 극도로 문란해져 유민(流民)이 넘쳤던 조선말기보다 더 암담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구한말에는 나라의 개혁을 위하여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는 목소리는 자유롭게 나올 수 있었지만, 북한은 수령주의라는 거칠고 천박한 사슬이 인간정신을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북한인민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소리가 오래 전부터 안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II. 그러나 놀랍게도, 북한 스스로 호언장담한 것처럼, 지난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고서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 도리어 동북아의 이 편집증 집단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의 군사, 경제강국과 상대하여 이들의 코를 꿰어 '당당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일단 조상을 잘 만나 얻은 듯한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북한이 무슨 행악을 저지르더라도 불과 40km 거리에서 한국의 수도 서울을 시간당 10만발의 대포알로 초토화 시킬 수 있어, 군사적 압력수단으로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너무나 큰 희생을 요구하여 현실적인 선택 가능성에는 속하지 않는다. 북한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는 중국은 북한이 어떤 행패를 부려도 자국의 이해를 위해 국가기밀에 속할 만큼 막대한 원조를 북한에 하고 있다(중국의 대외원조 총액의 40% 정도로 추정). 또한 북한과 중국의 밀무역 성행은 공식무역을 통한 액수만큼으로 추정되어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북한의 핵확산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북핵폐기를 위한 군사적, 경제적 압력 수단을 사실상 갖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6자회담은 현재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언론들은 흔히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표현을 쓰지만, 설사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더라도 북한을 다루는 연장통에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연장’이 없는 상태에서 “인내의 한계”란 표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는 모두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세하고 싶겠지만 아직 독자적인 행동능력도 영역도 확보하고 있지 못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이처럼 주변국의 취약점을 정확히 보고 있는 김정일은 미끼를 던져 주변 이해관계국의 코를 꿴 후 낚시줄을 당겼다 풀었다 하며 ‘안 주고 받아내기’ ‘조금 주고 많이 받기’ 등의 게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간단히 말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외국이 더 안줘도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이 먹고 살만큼 주어 왔으므로- 살 수 있으므로 북한과의 인내심 경쟁, 독기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는 쪽은 지도자의 임기가 한정되어 있고 여론의 눈치를 봐야하는 미국이나 한국이라는 것이다. III. 이런 이유로 김정일이 내치(內治)는 엉망이지만 "외교에는 천재"라는 둥의 북한의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조금만 주의해 살펴보면 김정일의 외교실력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붕괴를 부정적으로 보는 주변국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파산지경에 이른 기업에게 거액의 대출금을 물린 은행이 부도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속 융자를 해주는 것을 보고, 그 기업의 사장이 뛰어난 자금 유치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붕괴 가능성으로 붕괴를 피해서 먹고 사는’ 희한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우리는 미국이나 한국의 고위인사들이 김정일을 만난 후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아 왔다. 즉 김정일이 영민하고 결단력 있고, 국내외 정세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지닌 뛰어난 지도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전대통령,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노무현 대통령 등 친북좌파들은 물론, 클린턴 시절 국무장관을 역임한 올브라이트 여사도 이런 반열에 속하고 있다. 조폭세계에서 두목의 위치는 어떠한 내부규제도 받지 않으므로 그는 자유롭고 솔직하며, 개방적이고 결단성 있는, 한마디로 ‘스마트’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래서 여성들 중 조폭두목에서 이상적 남성상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이 점은 이미 전체주의 연구가 한나 아렌트에 의해 간파되었으며, 올브라이트 이외에 독일의 작가 루이제 린저가 그녀를 호탕하게 환대해준 김일성에게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김정일에 대한 올브라이트류(流)의 이런 멜로드라마가 불필요한 자기비판으로 이어지고- 즉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을 색안경을 쓰고 보아 왔다는- 나아가 ‘북한 제대로 알기’ 혹은 이른바 ‘내재적 접근’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내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진정 망상’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방식으로든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서 김정일 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언급하면, 그것은 주관적 희망사항과 객관적 사실판단을 혼동하였다는 비판을 듣게 된다. "극우"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IV. 그러나 필자는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준비하는 것이 앞으로 정부와 지식인, 연구소, 시민단체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물론 우리는 당장 내일, 내달, 내년에 북한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런 예측을 할 수 있는 방법론도, 또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설사 현재 북한의 지배집단 내에서 극렬한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해서 미국의 북한문제전문가 에버슈타트는 김정일 정권이 2000년쯤 붕괴하리라는 자신의 예측이 빗나가자, 그 이유를 이런 종류의 예측은 과학(science)의 영역이 아니라 예술(art)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장탄식 한 것이다. 그러나 김정권 혹은 김정권 아류(亞流)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붕괴되리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다. 5년 내라면 “혹시”라고 말하겠지만, 10년 내라면 “아마도”, 그리고 15년 내라면 “틀리면 열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현재 북한정권이 얼마만큼 안정되어 보여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으로 김정권이 붕괴되리라는 점은 좌․우, 진보․-보수의 이념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권은 개혁․개방을 해도 무너지고 안 해도 무너지며, 김정권을 돈과 물자로 도와줘도 무너지고 안 도와줘도 무너지며, 김정일이 제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줘도 무너지고 안 물려줘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김정일 정권은 백약이 무효인 고질병에 걸렸고, 바로 김정권 자체가 고질병인 것이다. 왜 그럴까? 북한은 90년대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의 결과, 마치 유럽의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우선 '고난의 행군'을 한 주체는 김일성에 의해 북한정권이 수립된 이후 지금까지 북한을 통치해온 지배집단이 아니라 배급제에 의존해온 북한인민이었다는 점이 극히 중요하다. 그 결과 호의호식하는 지배집단은 -비록 당보다 군이 우선시 되는 선군정치를 내세웠다고 해도- 바뀌지 않았으나, 배급을 기다리다 굶어 죽은 북한의 기층세력은 바뀌지 않을 수가 없었다. 즉 중국과의 밀무역과 장마당이라는 시장을 통해 생존기반을 스스로 구축해야만 한 것이다. 반면에 지배층은 조상을 잘 만나 얻은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를 업고, ‘내 배째라’ 식의 통큰 협박을 통해 외부의 원조를 갈취하고 그 분배를 장악함으로써 과거 통제경제 시기의 지배력을 대치하는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이것이 김정일의 이른바 '광폭정치'(통 큰 정치)인 것이다. 물론 북한의 지배집단과 기층집단의 ‘물질생산기반’은 전혀 이질적이지만 서로 간에 연관관계를 맺고 있음은 물론이다. 원조물자는 지배층과 군대에 우선 분배가 되지만, 경제의 순환과정에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 기층인민에게 장마당을 통해 판매됨으로써 공급부족의 북한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또 장마당을 통한 가내생산품과 밀수품의 유통은 규제권을 갖고 있는 높고 낮은 권력자들에게 뇌물이 지불되면서 지배세력의 유지 ·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굳이 말해 북한의 지배집단과 기층집단 간에 물질생산에 있어서, 좋게 말하자면, ‘역할분담’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북한 현지로부터 나오는 서로 상이한 두 개의 그림들, 즉 활력과 무기력, 곤궁과 여유는 지배집단과 기층집단간의 일시적 균형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인다. V. 그러나 갈취한 외부원조를 착복, 분배, 유통하는 지배집단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기층집단간의 균형은 오래 갈 수가 없다. 외부원조의 지속은 외부의 정치경제적 환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변하지 않는 환경은 없기 때문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망하면 치아도 춥다)의 관계에 있다는 북한과 중국의 관계도 결코 변하지 않는 자명한 공리(公理)가 아니다. 중국이 김정일 정권의 붕괴로 인한 북한의 혼란을 두려워하는 공식적 이유는 첫째, 중국으로 쏟아지는 난민들에 의한 부담, 둘째, 동북 3성의 혼란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의 상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평화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에서 중국의 북한전문가들의 발언을 전하는 바에 의하면, 중국인민해방군(PLA)은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역할에 대하여 냉전시대처럼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에 위급사태 발생시 북한난민에 대한 우려도 사실 검증된 가설은 아니다. 북한 군부의 내란 사태가 오래가리라는 이유도 불확실할 뿐더러, 내란이 없고 즉시 구호와 원조와 희망이 북한에 투입된다면 중국에 쏟아지는 것은 난민이 아니라 돈 많은 지배집단의 망명일 수도 있다. 따라서 만일 유엔과 관련국들에 의해 북한사태가 진정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면, 중국정부는 미래가 전혀 없는 김정일 정권에 자신의 미래를 맡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 한국의 북한 원조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적, 질적으로 과거 10년의 관행은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북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거의 분명한 현상태에서 북한에 무조건식 퍼주기는 불가능하다. 즉 외생변수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의 지배집단은 외국의 원조가 줄어듦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상실할 위험에 처할 것이다. 북한의 현실에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지난 노무현-김정일 회담 시에 북한의 쌀값이 상당히 떨어진 적이 있다는 것이다. 즉 남쪽에서 무엇인가 선물을 가져올 것이고 그것은 쌀일 것이며 그렇다면 공급이 더 늘 것이라는 판단 하에 대상(무역 장사꾼)들이 미리 쌀을 풀어 이익을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북한의 기층집단이 지배집단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준 실례다. 즉 북한의 지배집단은 무엇인가를 가져올 때에만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그러나 원조가 현 상태로 유지된다고 해도 위에서 말한 '균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장경제는 북한과 같이 공급부족 상황에서는 본질적으로 팽창의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장마당을 통해 발휘할 수 있는 생산력이 현재 충분히 실현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배집단은 기층집단의 생산력 확대를 계속 인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지배집단은 가능하면 장마당의 생산력을 일정한 수준 이하로 억제할 것이다. 노-김 회담 직후 장마당에서 장사할 수 있는 여성의 연령을 50세 이상으로 제한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외부원조가 증가하더라도 북한의 지배집단은 미래가 없다. 안병직 교수의 말처럼 “건달집단”이 놀고 먹을 수 있을 때 자기 혁신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김정일은 과거처럼 국가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공장을 가동시키기를 원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시절 경의선 시험운행을 빌미로 경공업 원자재를-예를 들어 신발생산을 위한-요구한 것도 통제경제로 회귀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의 기능도 비슷한 경우다. 스스로 공장을 세우고 돌릴 능력이 없으니, 한국의 기업에 인력을 대주고 통제하면서 국가의 경제개입을 늘리려는 것이다. 게다가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의 큰 차이를 이용하여 북한 근로자의 임금을 대부분 가로챔으로써 꿩먹고 알먹는 식이다. 그러나 북한이 한때 통제경제를 운영할 수 있었던 적은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 사회주의 블록이 존재했을 때다. 현대의 경제란 복잡한 분업체제를 이루고 있어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외국에 대해 개방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본격적인 공업생산을 이룬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이 20년간 손을 놓았던 생산체제를 외국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아 정비한다는 것 자체가 개혁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북한의 지배집단의 힘을 키우기 보다는 자생적 시장경제로 살고 있는 북한의 기층집단의 힘을 폭발적으로 키울 것이므로 김정일 정권이 망하는 길임은 누구보다도 그 스스로 알고 있다. VI. 김정일 정권의 붕괴 가능성은 시대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착취로 연명하는 지배집단과 생존을 위해 투쟁해온 기층집단 간의 이율배반, 마르크스에 의하면 ‘계급모순’에 있다. 이러한 이중체제는 북한인민의 생존을 위해 나타난 것으로, 어느 누구의 명령으로 바뀔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90년대의 처참함과 기층인민의 강인한 생존력은 다음의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당시 며칠 전부터 연기가 그친 집은 가족이 모두 굶어 죽은 것이다. 이 시절을 살아남은 사람은 '여우'와 '늑대'뿐으로 이제는 돌무더기에 올려놔도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는 다만 언제 북한의 지배집단이 굉음을 내고 무너지느냐는 것이다. 이 붕괴의 필연성은 앞에서 상술했듯이 개혁개방, 원조, 세습체제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왜냐하면 북한사회를 개선하건 개악하건, 모든 생산력 변화는 지배집단과 기층집단 간의 불안한 균형을 급격히 파괴할 수밖에 없으며, 단기적으로 이런 변화를 피하더라도 기층집단 스스로 생산력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이를 막으려는 지배집단의 시도는 북한인민의 생존의 장애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이 특정한 발전단계에 이르자, 봉건사회가 생산하고 교환하는 조건, 농업과 제조업의 봉건적 조직, 한마디로 말해, 봉건적 소유관계는 이미 발전되어 있는 생산력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그만큼의 질곡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들은 산산이 부서져야 했으며, 실제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자유경쟁이 대신 들어섰으며, 또 자유경쟁에 맞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가 뒤따랐다.”(마르크스․엥겔스:공산당 선언) 위 글에서 “봉건”을 “봉건수령독재”로 바꾸면 정확히 북한의 미래가 보인다. 따라서 북한의 붕괴는 외부의 군사적 압박이나 경제봉쇄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붕괴는 체제내부의 모순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내부와 외부의 여건에 의하여 지배체제 내부에서 수령독재의 미래에 대한 회의가 싹트고, 인민들 간에 수령에 대한 경멸이 퍼질 때, 그리고 좋았던 옛시절만을 생각하는 김정일이 이러한 시대변화에 역진하려 할 때, 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조그마한 불꽃이 대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VII.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국정부가 나서서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촉진시키는 정책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김정일 정권의 붕괴에 대한 내부적 준비이며, 불필요하게 김정권의 수명을 연장하는 정책을 ‘안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첫째, 지난 10년간 친북좌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통일비용에 대한 오해를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은 ‘통일비용’이란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거짓추정이 통일비용이라는 이름 하에 횡행하고 있다. 한 예를 들면, 통일 전 동서독의 국민소득의 격차가 최대 3배 정도인데 남북한의 차이는 30배가 됨으로 통일비용도 그만큼 많이 들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독일은 통일 후 지금까지 매년 약 1300-1400억불을 통일과정에서 지불해 왔다). 이 주장은 남북한 주민의 국민소득이 동일하게 되는 것을 통일비용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통일 후 독일의 문제는 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냥 앉아 있어도 실업수당, 주거비, 의료보험 등 현찰을 주는 데 누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일하겠는가? 통일비용의 개념은 북한주민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확신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으로 족하다. 이 점은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지원을 받은 구동독지역보다 폴란드나 헝가리 등 돈 많은 형제가 없는 나라들의 성장률이 더 높고, 더 의욕에 찬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증명되고 있다. 둘째, 혹자는 통일을 단일 시점의 ‘사건(event)’이 아니라 긴 기간의 ‘과정(process)’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옳은 부분이 있다. 즉 완전한 통일에는 한 세대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정 후에 사건’과 ‘사건 후에 과정’ 중 어느 방식이 더 효율적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적인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치적 통일과 경제적 통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유연한 통일체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셋째, 한반도 주변국들의 전문가 집단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처방안을 민간 차원에서 공동연구 해야 한다. 특히 중국정부는 북한정권의 붕괴를 대비하여 긴급대책을 갖고 있다. 그들은 현재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만들고 있는 조(북)중동맹을 빌미로, 필요하면 북한 내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통치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은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분도 없으며 동시에 한국의 주권침해를 의미하며 한국은 티벳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북한에 친중정권을 수립하는 것도 한반도 문제의 지속적 해결이 아니다. 동북아의 지속적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문제가 지속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공동선을 위한 공동연구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넷째, 북한사회에는 한국과 주변세계의 실정을, 한국사회에는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릴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를 동원해야 한다. 60년 이상 갈라져 살아온 남북 간에는 모든 분야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의 급변사태로 인한 남북한 주민들의 대규모 접촉은, 잘못하면 회복하기 힘든 실망과 고질적 지역감정으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북한에는 한국과 한국인의 현실과 사고방식을, 한국에는 북한의 실정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친북좌파정권에 의해 북한의 현실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되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북한에 대하여 매우 무관심하게 되었다. 무관심은 왜곡보다 더 나쁜 측면이 있다. 왜곡된 정보는 바로 잡을 수 있지만, 무관심은 바로 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정부의 입장에서 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따라서 공영방송 뿐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북한전문 라디오나 TV채널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탈북자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을 탈출하여 남쪽으로 희망을 찾아왔으며, 한국 정부는 이들에게 정부가 해야 할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북한의 급변사태시 한국과 북한이라는 이질적 사회를 연결시켜 원만한 통일을 이룰 수 있기 위한, 대체가 불가능한 필수적 인적자원이다. 따라서 현재 겨우 1만명 정도의 탈북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탈북자가 필요하며, 이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대우도 장기적 관점에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또 통일관련 공무원이나 해외의 한국외교관들도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좌파정권하에서처럼 탈북동포를 문전박대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여섯째, 통일과 관련된 공무원들에게 이제는 그들의 “영혼”을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처럼 세뇌와 억지가 아니라, 인륜의 보편성,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에 대한 신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관료란 대통령과 장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에서 독자적 주관의 결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점도 없지 않으나, 사석에서까지 친북좌파의 반인륜적 대북관을 되풀이하는 것은 영혼상실로 변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해 누가 대통령, 장관이 되더라도 이들의 종북주의적 사고에 대놓고 항의하지는 못하더라도, 내적으로 경멸할 수 있는 영혼은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곱째,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의 종북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대선에서 참패한 민노당마저 종북주의를 스스로 비판하고 청산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물며 많이 배웠다는 좌파 지식인들 중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체제 실현을 위해 수령체제 북한이 붕괴되어서는 안 되고,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반대하며, 이러한 제3의 체제를 위해서는 자주파(NL), 평등파(PD) 그리고 시민계급(BD)이 연합해야 하며, 이때 폭력의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사고방식을 지닌 부류가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 있다. 이념이 인간성을 잠식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면, 시민적 자유와 생존권 중에서 후자가 더 중요하다는 궤변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정치범에게는 시민적 자유와 생존권 사이에 일호(一毫)의 차이도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또 전체주의 체제인 수령독재의 파시스트적, 인종주의적 성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거꾸로 한국의 보수세력을 극우, 파시스트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이들의 정신적 기형에 대하여는 아마도 뇌신경 생리학자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그 근본원인은 아무리 아름다운 이상(理想)이라도 현실을 대치할 수 없으며, 이상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이 가장 큰 폭력의 근원이라는 점을 간과하였다는 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하여는 토론과 논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 전체가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면 대부분 자신들의 사상적 궤적을 분식(粉飾)하기에 바쁠 것이다. 1990년대 초 동구권이 무너지자 한국의 그 많던 자칭 타칭 막시스트들이 순식간에 증발한 것처럼 말이다. Ⅷ. 친북좌파 지식인의 현실왜곡적인 대북관을 청산하는 것이 북한의 급변사태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도 중요하다. 비록 소수이지만 독일 통일시 통일 자체를 반대한 좌파 지식인, 예술가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지고 또 한국을 방문했던 귄터 그라스가 그런 인물이다. 솔직히 이들은 노도(怒濤)와 같은 동독국민의 통일열망 앞에서 대세에 쓸려가 버린 미미한 세력이었지만, 그동안 친북좌파들은 독일의 통일문제를 과장하기 위하여 귄터 그라스와 같은 인물들과 손을 잡고, 한국 내에 근거 없는 통일반대론을 펴왔고, 이러한 작전은 상당 부분 성공했다. 따라서 친북좌파 지식인들의 종북주의의 근본을 제거하는 것은 몇시간, 며칠의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한 상황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북한의 급변사태 시에 우유부단(優柔不斷)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북한해방을 위해서는 보수세력이 통일의 그 날까지 집권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자신들의 반인륜적 대북관을 수정할 의사가 전혀 없는 한국의 친북좌파가 집권하였을 때 북한이 급변사태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아마도 한국은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 후과는 남북의 후손들이 대대로 뒤집어 써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정부부터 정말로 올바른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와 환경을 같이 살려야 하고, 경쟁과 평등을 같이 살려야 하며, 개인과 공동체를 같이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좌파의 입장이었다고 보이는 부분도 그것이 옳을 경우에는 과감히 받아들이는 자기 혁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통제경제보다 우월했던 이유는, 전자는 시대상황, 시대정신에 적응할 줄 알았고, 후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소리 없는 자기 혁신, 북한인민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김정일 체제에 대한 공분(公憤)이 통일의 그날까지 한국의 보수세력의 정체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홍성기/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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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글입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글을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