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씹는 기사]對北지원 쌀 ‘장마당’ 유통 현장 포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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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NK 2008-02-14 11:18 동영상보기 [동영상]'이영화의 정밀분석'- RENK 요원 잠입, 2005년 안주시 남흥시장 현장 우리 정부는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매년 북한에 40~50만t의 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데일리엔케이'는 그동안 여러차례 대북 지원 식량이 북한의 군량미로 유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 우리 군 당국은 한국 정부가 지원한 식량이 북한 군부대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화 감청 등을 통해 오래 전부터 확인했던 것으로 최근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본지가 연재했던 '이영화의 정밀분석' 중 대북 지원 식량이 북한 장마당에서 유통되고 있는 동영상을 최초 공개했던 2005년 7월 7일자 기사를 '되씹는 기사'로 소개합니다./편집자 註 한글과 영어로 쓰여진 원조물자(파키스탄산 50kg짜리 쌀자루). 청색으로 인쇄된 WFP(세계식량계획)의 로고와 일본정부 기증임을 알리는 일장기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쌀 자루 하단에는 ‘2004년 10월’이라는 제조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2004년 5월 고이즈미 수상의 두번째 방북 당시 김정일에게 약속한 ‘인도적 원조’(식량 12만5천톤) 식량이다. 일본정부가 WFP를 통해 북한에 무상원조한 식량이 북한의 시장에서 버젓이 되팔리고 있다. 배고픈 인민에게 곧바로 지원되어야 할 식량이 누군가 돈을 받고 상인에 팔아 시장에서 다시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인민의 허기를 팔아 누군가 돈을 챙기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동영상은 지난 4월 26일 평안남도 안주(安州)시 남흥시장 현장이다. 6개월 잠입, 비밀촬영 이 동영상은 RENK(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 소속 요원이 마침내 비디오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반년 가까운 기간동안 북한에 잠입하여 비밀촬영한 것이다. 2005년 4월 26일 오전 11시에 촬영했다. 안주시는 수도 평양으로부터 철도로 70km정도 북쪽에 위치한 중소도시다. 조-중 국경으로부터 자동차와 철도를 갈아타고 평양시를 거쳐 안주시에 도착하려면 편도 약 800km의 이동거리를 왕복해야 한다. 캠코더 장비를 숨긴 채 수만은 검문소와 불심검문을 피해야 한다. 진정한 ‘고난의 행군’이다. 이 비밀 행군을 완수한 '북한민주화 투사'는 김만철씨. 물론 가명이다. 하지만, 북한의 보위부에서 이 탈북 청년의 가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비밀문서를 탈취했고 내부 동영상 촬영에도 성공했다. 그중에 2003년 8월과 2004년 7월, 북한당국에 의한 인도적 원조물자의 부정유출 현장을 비밀 촬영해 전세계에 폭로했다. 김만철씨는 이번에 일본의 인도적 원조식량 부정유출 현장을 촬영했다. 물론 우연한 촬영이 아니라 용의주도한 노력끝에 얻어낸 수확이다. 지금까지 RENK는 일본정부의 대북원조사업이 ‘의문투성이’라고 수 차례 지적해왔다. 특히 일본인 납치피해자의 자녀 5명의 일본귀국과 맞바꾼 식량지원(약속한 25만 톤의 절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명해 왔다. RENK는 김만철씨에게 더욱 큰 임무를 부여했다. ‘인도적 원조’이라는 이름의 ‘몸값’(12만5천톤의 식량)의 행방을 추적하는 새로운 임무였다. 사실 북한으로 들어가는 외국의 원조물자들은 원조를 필요로 하는 북한인민의 손에는 닿지 않고, 장마당에서 고가(高價)에 매매되고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그것을 영상에 담아 전세계에 고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잠시의 휴식도 주지 않고 다시 사지(死地)로 출발할 것을 부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인 납치 피해자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들은 김만철씨는 다시 북-중 국경을 돌파해 ‘고난의 행군’ 길에 올랐다. 외국 원조식량, 인민에게는 ‘그림의 떡’ 아니나 다를까, 북한의 장마당에서는 일장기가 붙은 ‘그림의 떡’이 팔리고 있었다. 그것도 쌀 1kg에 1,050원의 초고가다.(옥수수 1kg은 575원)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이 북한돈 3천원 전후니까(그것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인도주의와는 거리가 먼 살인적인 가격이다. 지금까지 일본정부가 북한에 인도적 원조식량을 보내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일본정부가 직접 북한에 원조식량을 보내는 경우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는 곡물자루에 담아 보냈다. 일본정부가 WFP 등의 국제원조기관에 현금을 전달하는 경우에는 해당 원조기관이 그 돈으로 곡물을 구입하여 원조기관의 이름이 붙은 곡물자루에 담아 북한으로 들여보냈다. 어쨌든 일본의 국명이 전혀 안보였기 때문에 북한당국에 의해 부정유출 되어도 확인할 방법도 없었고 항의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일본의 12만5천 톤의 대북원조식량에는 ‘일본’ 국가명이 부착된 곡물자루에 원조식량을 담게 되었다. 새롭게 곡물자루를 다시 인쇄하는 데 시간이 걸려, 원조 실시가 2004년 11월로 늦어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일본정부는 외무성 직원 4명을 동행시켜 11월 2일~ 6일까지 대북 원조식량에 대한 모니터 업무를 실시하여 “일본의 원조식량은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북한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일본이 지원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인식되고 있다”(2004년 11월 8일자 마이니찌 신문)라며 당당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허세다. 실태파악을 위한 조사라기보다 실태를 은폐하기 위한 '알리바이' 조사에 가깝다. 원조식량이 가난한 서민들에게 돌아갔는지, 아니면 군대와 보위부에게 돌아갔는지 여부는 장마당의 식량 가격을 조사해보면 단번에 간파할 수 있다. 쌀 1kg에 1,050원이라는 초고가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원조식량이 인민들에게 풀리면 장마당 식량가격이 하락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북한의 장마당 쌀가격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투명한 분배를 확인하지 못하면 원조 의미 없어 김정일 독재체제의 높고 두꺼운 벽이 국제여론을 흐리게 만들 수는 있지만, 북한인민들과 RENK의 눈은 피할 수 없다. RENK가 인도적 원조식량의 부정유출 현장을 촬영한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솔직히 말해 이제 조금씩 지치기도 한다. 인도적 원조식량을 인민군이나 노동당이 횡령, 부정유출하는 것은 ‘북한의 일반상식’이다. 도대체 앞으로 몇 차례나 더 촬영해야, 국제기관이 궁핍한 북한인민들의 손에 원조식량을 온전히 전달하게 될 것인가? 민주화 투사의 생명을 담보로 이런 촬영을 계속해야 하는 현실이 정말로 한심하다. 국제기관이나 각국 정부는 1995년부터 북한에 대한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시작했다. WFP의 평양사무소는 1995년 11월에 개설되었다. 그리고 10년간 WFP는 긴급 구호활동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해가 바뀔수록 ‘긴급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기는커녕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100만명에서 200만명, 200만명에서 300만명, 그리고 올해는 드디어 650만명의 수준까지 늘어났다.(WFP발표) WFP가 발표한 숫자는 북한주민의 3명당 1명 꼴이다. 기뻐해야 할 일인가, 슬퍼해야 할 일인가? WFP의 ‘위대한 공적’인가, 아니면 ‘추악한 태만’인가? 지난 10년간 인도적 원조를 계속해왔는데 원조가 필요한 사람은 더욱더 증가하고 있다는 발표는 모순이다. 더구나 해마다 100만명 단위로 급증하고 있다. WFP가 평양 사무소를 개설하던 1995년, 김정일은 ‘선군정치’라는 군사우선 정책을 선포했다. 그 후 10년간 김정일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드디어 핵보유를 선언하고 ‘선군혁명’이라 큰소리 치고 있다. 김정일과 WFP의 기묘한 동거 김정일과 WFP의 기묘한 동거는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김정일은 올해 6월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하도록 주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6월 6일자 노동신문). 즉, 3백만명 이상이 아사한 90년대 후반의 대기근(=고난의 행군)의 재발생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제1차 대기근은 ‘선군정치’라는 인재(人災)가 일으킨 참사다. 만약 제2차 대기근이 일어난다고 하면, 그것은 ‘선군혁명’이라는 새로운 인재(人災)의 탓이다. 그리고 이것에 보조를 맞추는 듯이 WFP가 해괴한 경고를 발표해 대북원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일의 핵개발을 이유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감소되면 “올해 9월에는 북한주민 3백50만명이 아사한다”라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과 WFP의 기묘한 동거는 지금까지 여러 번 있었다. 지난해 2월 WFP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줄어들었다”면서, 북한당국으로부터 2.5만톤의 식량을 빌려 원조활동을 진행했다. 게다가 후에 이를 변제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정말 볼썽 사나운 ‘블랙코메디’였다. 이런 ‘해괴한 계약’을 할 바에야, 북한 전역의 장마당에 나가 부정유출된 WPF의 로고가 붙은 원조식량을 회수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WFP의 오른쪽 다리(인도적 활동)는 원조교제의 끈으로 김정일의 왼발에 단단하게 연결되어 김정일의 오른쪽 다리(핵개발)에 끌려다니면서 비틀거리고 있는 양상이다. 최악의 2인 3각 레이스다. 개혁개방 없이 식량문제 해결 불가능 지금까지 RENK가 주장해왔던 것처럼, 오늘날 북한의 식량위기의 본질은 ‘농업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업문제’야 말로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 열쇠를 가지고 있다. 원래 공업국이었던 북한은 공업제품을 수출해 식량을 수입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그러나 김정일이 모든 국력을 군수산업으로 집중시키면서 민간공업부문이 궤멸적인 타격을 받아 식량위기가 일어난 것이다. 핵개발과 선군정치를 폐기하고 개혁개방을 단행하지 않으면 식량위기의 해결책은 없다. ‘핵개발’과 ‘선군혁명’으로 돌진하면서 ‘농업중시’를 외치는 것을 제정신으로 보기 어렵다. 만약 제2차 대기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김정일의 의도적인 실정(失政) 때문이다. WFP와 각국 정부에 필요한 것은 “인도적 원조가 정치적 대가나 압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미국의 북한인권법)”는 원칙을 반복해 상기하는 일이다. 김만철씨는 그것 때문에 목숨을 걸고 비밀촬영을 감행했다. 김만철씨의 성과는 ‘원조식량 부정유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60분 테이프 10개에 달하는 최신 북한 내부 영상과 6통의 내부문서가 차례차례 공개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절실한 것은 김정일 정권 타도를 위해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북한민주화 투사'들을 기억하고 이들의 외침에 적극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이영화/ 일본 간사이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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