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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한 엄마 "아이 중학교 갈 수 있게 호구(戶口) 사고 싶어"
Korea, Republic o 관리자 801 2008-03-08 00:37:23
조선일보 2008-03-07 03:33

[크로스미디어] '천국의 국경을 넘다' '유령'이 된 아이들

호구 값 한국돈 68만원… 1년 일해도 못 벌어 돈에 팔려온 엄마들, 아이 떼 두고 집 나가기도

원망하며 울던 아이 "사실은 엄마 보고 싶어요"

왕청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 개산툰(開山屯)에 사는 여자아이 선화는 올해 네 살이다. 열 일곱살에 두만강을 넘은 엄마와 그때 서른 둘이던 조선족 아빠 사이에 태어났다. 그런데, 엄마는 사진에서만 봤다. 선화가 한살 때 엄마는 집을 나갔다. 대도시 단둥(丹東)에 가서 돈 벌어 오겠다고 나가서는 지금까지 전화만 딱 두 번 왔다.

아빠는 밭으로 가고, 80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를 보살핀다. 중국말도 한국말도 서툴지만, 엄마 사진을 꺼내면 볼을 비벼대고 자랑한다. 엄마라고, 우리 엄마라고. 아빠 무릎에 앉아 재롱을 떠는 아이에게 취재팀이 물었다. "엄마 안 보고 싶어?" 꺄악! 엄마라는 단어에 네 살짜리 소녀가 '비명'으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엄마 소리만 하면 늘 이래, 말을 안해." 할머니가 말했다. 아빠가 담배를 피웠다. "애가 호구가 있어야 학교에 다니는데, 엄마가 없어서 방법이 없단 말입니다…."

9살 옥평이는 눈이 큰 소녀다. 연두색 상의에 빨간 목도리를 두른 옥평이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달고 다닌다. 아이가 웃음을 보이는 건 엄마와 함께 있을 때뿐이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그렇게 엄마가 좋아?" 옥평이는 대답 대신 운다. 까닭이 있다.

소녀는 탈북자인 엄마와 몸이 아픈 아빠와 함께 옌지(延吉) 근처에 산다. 신장이 나쁜 아빠는 엄마를 5000위안(68만원)에 샀다. 그녀는 3~4달쯤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인신매매는 엄마의 꿈을 무너뜨렸다. 북한에서 대학까지 다닌 엄마. 강을 건널 무렵 엄마는 갓 결혼한 새색시였다.

옥평이가 3살이 되자 엄마에 대한 가족의 감시가 덜해졌다. 엄마는 담을 넘었다. 두만강 근처에서 33일을 기다리며 도강(渡江)을 노렸다. 고향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왔다. "사실 가려고 시도는 했는데, 옥평이가 눈에 걸려서…."

옥평이는 엄마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아이는 하루 종일 엄마 곁을 떠나지 않는다. "엄마 없인 안 돼요." 그래서 옥평이 담임 선생님은 걱정이 많다. 아이의 중국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엄마가 탈북자라 중국 말을 못해요. 그런데 옥평이는 엄마하고만 있으니 말이 안 늘죠." 통사정을 해서 초등학교는 입학했지만 중학교 이상은 진학하기 어렵다.

2007년 9월 25일. 추석에 만난 엄마는 밭일을 하고 있다. 옥평이는 엄마 곁을 맴돌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엄마의 하루는 고달프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을 한다. 밭에 나가는 것은 새벽 4시. 점심을 먹기까지 허리를 펴지 못한다. 오후 6시까지 일을 계속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오후 10시다. "입에서 단내가 나지요."

엄마는 그래도 옥평이 생각에 하루를 견딘다. "저도 어머니가 있어요. 오늘이 추석인데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죠. 그러면 대신 딸을 쳐다봐요." 그럼 엄마는 옥평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을까. "그런 게 어딨어요? 중학교나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 꿈은 소박하다. 옥평이의 호구를 사고 싶다. 가격은 5000위안. 일년 동안 벌어도 4000위안(53만4000원)을 채우기 힘들다. "가끔 생각하죠. 애를 낳아도 안심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조국에 남을 걸." 엄마를 쳐다보던 옥평이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같은 동네, 순쉐(8)의 집은 오늘도 울음소리로 하루를 열었다. 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순쉐의 울음보를 건드리고 말았다. "엄마가 사 준 옷이야. 엄마가 보면 좋아할 거야." 순쉐는 울면서 밖으로 나갔다. "저 속이지 마세요. 엄마는 나한테 전화도 안 하고. 떠난 후에 집에 온 적도 없어요."

순쉐의 엄마도 탈북자다. 할머니는 엄마를 5000위안에 구입했다. 엄마는 순쉐를 낳은 지 두달 만에 사라졌다. "외지에 나가 돈을 번다기에 하지 말라 했어요. 그러니까 아이 엄마는 조용히 도망을 쳤지요. 용서할 수 없어요."

엄마라는 단어는 순쉐에게 증오의 대상이다. "엄마는 어디에 갔니?" 이웃의 물음에 순쉐는 차갑게 말했다. "한국인가? 가고 싶은데 갔겠지." 순쉐는 자기를 버린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 엄마가 도망갔는데도 거짓말을 하는 할머니는 더 밉다. "학교 가면 재미 있는데, 집에 있으면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2006년 10월, 불쑥 엄마가 집으로 찾아왔다. 순쉐는 말로만 듣던 엄마의 얼굴을 처음 봤다. 엄마는 말했다. "순쉐, 엄마는 한국에 있단다." 3개월간 딸을 돌보던 엄마는 다시 집을 나갔다. 엄마가 순쉐를 찾은 이유는 다시 한국을 떠나기 때문이다. 길 안내를 했던 한족 청년이 말했다. "순쉐 엄마가 일본 사람하고 결혼을 했답니다." 아직 순쉐와 할머니는 그 사실을 모른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안다. 차마 입을 떼지 못할 뿐이다.

취재팀이 숙소로 돌아가려 하자, 순쉐가 슬며시 다가왔다. "사실은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인신매매를 당한 엄마. 새로운 삶을 찾으려 중국을 탈출한 엄마. 순쉐가 자라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보고 싶어한다고 꼭 전해주세요." 순쉐의 목소리가 다시 떨렸다.



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
이학준 기자 arisu01@chosun.com
정인택 PD rjs0246@chosun.com
임은정 PD limpd@chosun.com
한용호 AD hoyah5@chosun.com
방정오 기획 cb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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