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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흥행 감독이 탈북자 영화 만드는 이유
Korea, Republic o 관리자 671 2008-03-24 00:36:15
조선일보 2008-03-21 03:49

김태균(48) 감독이 탈북의 아픔을 다룬 '크로싱'(Crossing)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웃거린 영화인들이 많았다. '화산고'(2001) '늑대의 유혹'(2004) '백만장자의 첫 사랑'(2006) 등의 작품이 말해주듯 김 감독은 대중의 취향을 빠르게 읽고 스크린에 옮기는 데 재능을 지닌 흥행 감독. 더욱이 충무로에서 풍류를 즐기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감독이다. "인권이라는 문제에 관심 가지고 살아온 사람도 아니고" 라고 스스로를 전제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북한의 인권에 관심을?

엊그제 김 감독과 차 한 잔을 마셨다.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로 시작했던 대화는 투자의 우여곡절에 관한 사연을 거쳐 결국 기적이라는 표현으로 마무리됐다.

탈북자에 관한 김 감독의 첫 '부끄러움'은 10년 전 봤던 TV 다큐멘터리였다. 대여섯 살 정도 먹은 북한 어린 아이들이 길바닥에 떨어진 국수가락을 시궁창 물에 헹궈 먹는 비참한 풍경. 비슷한 또래였던 막내 아들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몇 년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2005년 잘 알고 지내던 재미교포 프로듀서가 이 프로젝트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몇번을 거듭 사양했다. 투자자와 대중의 냉정한 취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통일보다 통일비용을 먼저 떠올린다는 '실용적인 20대'. 그 세대가 관객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극장 현실에서 탈북자의 슬픈 사연을 담은 40억짜리 상업영화가 과연 흥행할 수 있을까.

18일 '크로싱' 제작발표회에서 주연 차인표도 푸념하듯, 농담하듯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감독님을 안 지 14년이 되어 가는데 '화산고'나 '늑대의 유혹' 같은 작품은 다른 배우랑 하면서 이렇게 정말 앞이 안 보이는 영화는 나랑 하자고 하는가." 차인표 역시 처음에는 거절했다. "만들어진다고 해도 관객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아빠를 찾아 떠났던 시나리오의 북한 소년 준이가 눈에 밟혔다. 아들 정민이가 자꾸 포개졌다는 것이다. "만약 내 아이가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쫄쫄 굶고, 아파도 약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나는 부모로서 어떨까. 내가 너를 도와주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아이에게 전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의무감으로 봐야 하는 대중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영화를 보고 난 뒤 의미까지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중 일부라도 자신의 삶을 바꿔 볼 수 있다면 정말 근사한 일이 아닐까. 김 감독의 표현이지만 '크로싱'은 사실 '자본주의와 우리 영화계의 룰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프로젝트가 여러 사람들의 진심을 모아 지금 완성됐다.

흥행 감독이 왜 탈북자 영화를 만들었냐고? 흥행 감독이 만들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흥행의 문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 테니. 상반기 개봉을 시도하고 있다는 '크로싱'을 빨리 보고 싶다.

평범한 북한 주민의 탈북을 그린 최초의 영화 '크로싱'. 감독은 '화산고' '늑대의 유혹'등을 만든 김태균 감독이다. 좀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휴먼 가족드라마 형식으로 연출됐다. /어수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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