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사촌남매 '혈육의 情'으로 분단 반세기 녹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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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2008-04-18 06:32 여성 탈북자, 경찰 도움으로 가족 상봉에 성공 "할머니 이름이 뭐지요?" "정가연(가명)입네다." "고모는 기억하십니까?" "순이(가명) 고모와 순자(가명) 고몹네다." "맞아요, 우리 가족이 맞아요!" 사촌오빠의 손을 놓지 않고 있던 양귀덕(49.가명.여)씨의 두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17일 서울 강서경찰서 4층 대청마루는 숙연했다. 49년 전 북한에서 태어나 지난해 탈북에 성공한 양씨는 비록 얼굴 한번 본 적이 없지만 남한에 사촌오빠 등 친지들이 있다는 사실만은 굳게 믿고 살아왔다. 그리고 서러웠던 시간들을 뒤로 한 채 이들은 뜨겁게 상봉했다. 아버지가 그토록 밟고 싶어했던 남쪽 땅이었다. 혈육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지난 6년간 삶과 죽음을 넘나든 혹독한 탈북 과정이 양씨의 머리 속에 주마등처럼 흘렀다. 지난 2003년 처음 시도했던 탈북은 실패로 끝나 중국 공안에 끌려갔다. 그곳에서 수용생활을 하면서 맨손으로 김을 매고, 메추리알 크기의 삶은 감자 서너 개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끝까지 살아낸 이유를 양씨는 이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전라남도 광산군 임곡면 박호리' 양씨의 아버지는 자서전에 남쪽 가족들에 대해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어린 시절부터 양씨는 이 책을 닳도록 보고 또 봤다. 가족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외워졌다. 양씨가 남한의 집 주소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 건 이 때문었다. 양씨에 따르면 1949년 남쪽 가족들도 모른 채 월북한 아버지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고향이 그립다며 광주항쟁을 소재로 만든 북쪽 영화 를 본 뒤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는 언젠가 남쪽 형제들을 꼭 찾아달라는 말만 남긴 채 지난 1984년 끝내 세상을 떠났다. 양씨는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지만 남쪽 친지들이 나를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였다"며 "이처럼 뜨겁게 맞아줄 줄 알았으면 진작 남쪽 가족들을 찾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경찰관은 "몇 해전 한 탈북자가 남쪽에 사는 이모를 찾았다 문전박대를 당한 일이 있었다"며 "양씨와 가족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에 마음이 푸근해 진다"고 말했다. 북쪽의 양씨와 남쪽의 사촌들을 이어준 끈은 강서경찰서가 운영하는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 프로그램 덕분이다. 지난 2월 양씨는 이 경찰서 윤상관 경위에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놨고 윤 경위는 양씨가 알고 있는 출생지를 토대로 동사무소 등을 통해 친척들의 인적사항과 현 거주지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49년 동안 끊어졌던 남북의 다리가 단지 2개월만에 이어진 순간이었다. CBS사회부 조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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