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처녀의 신산한 인생유전…정도상씨 연작소설 ‘찔레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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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뉴스: 2008년 07월 20일 17:14:59 “5년 전입니다. 탈북한 아버지를 찾아 강을 건넌 ‘꽃제비’ 소년이 중국과 몽골을 떠돌다 결국 몽골 초원에서 동사했다는 다큐멘터리를 아들과 함께 봤어요. 함께 본 아이가 그래요. 아빠는 작가니까 저런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게 아니냐고요.” 1980~90년대 이른바 ‘운동권 작가’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정도상씨(48)의 연작소설 ‘찔레꽃’(창비)은 이렇게 탄생됐다. 소설은 순진한 북한 처녀 충심이 북한을 떠난 뒤 중국을 거쳐 남한에 정착하기까지의 신산한 인생유전을 그려낸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문예지 등을 통해 발표한 7편의 연작 단편은 ‘겨울, 압록강’에서 시작한다. 압록강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첫사랑 남편을 잊지 못하는 순박한 지안(集安) 여자를 통해 삶의 진정성을 느낀 화자인 ‘나’는 비법(非法) 월경자인 안마사 미나와 지안을 찾는다. 이후의 연작은 미나, 아니 충심이 탈북-월경-남한 정착의 과정을 담았다. 함흥 음악학교 재학생인 충심은 남양의 이모댁에 갔지만 일자리를 주선하는 인신매매단에 속아 강제로 국경을 넘게 되고 이후 인신매매단에 끌려간다. 같은 동포지만 사기와 협잡, 폭력을 일삼는 조선족 인신매매단과 이로 인해 더욱 비루한 탈북민들의 삶, 그리고 한국에 정착하지만 계속되는 곤궁한 삶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소설집 중반부에 실린 ‘소소, 눈사람 되다’는 중국 선양에서 “탈북자들을 실존적으로 대면하게 되면서 이들의 파탄 난 삶을 소설로 써야겠다”고 결심한 뒤 가장 먼저 발표한 작품이다. 정도상씨는 6·15 민족문학인협회 집행위원장, 남북이 공동으로 편찬하는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위원 등 남북민간교류의 실무자로 북한과 중국을 수십차례 드나들었다. “민간교류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행정가로서의 시선과 모국어공동체를 바라보는 작가로서의 시선이 교차하는 이중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실 광명촌이니 신흥촌, 해방촌 등 인민낙원을 상징하는 북한의 지명들은 어렵고 곤궁한 삶이 이뤄지는 현장이거든요. 새터민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면서 그들을 돈벌이나 선교의 수단 등으로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바로 그들에게서 ‘인권의 키치’를 엿보았습니다.” 그는 모국어공동체가 삶의 온전성으로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저는 탈북자보다 21세기의 유민들을 말하고 싶었어요. 주인공 충심이는 파탄 난 모국어공동체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이 작품은 그들의 가혹한 삶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악용당하는 이야기이고, 도강-탈북-인신매매 등을 당하지만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자의 이야기죠.” 민족과 이념을 어깨에서 내려놓고 욕망을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1세기의 디아스포라를 유목민의 관점에서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의 말’에서 고비사막에서 본 암각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작가는 “다음 이야기는 아마도 사라진 유목민족 흉노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며 웃었다. 글 윤민용·사진 서성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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