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北어부 '北처자식-南모친' 어느 쪽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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拉北어부 '北처자식-南모친' 어느 쪽을… “어머니, 보고 싶어요…하지만 나 살자고 식구들을 (북한에) 몽땅 남겨놓고 한국까지는 못 갑니다. 남아 있으면 죽는단 말입니다.” 3월 31일 중국 내 우리 공관에 들어 왔던 납북 어부 김모(61)씨는 갑자기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고 했다. 한국으로 가려고 탈북한 지 보름 만에 중국 우리 공관 진입에 성공한 사람이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고 한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어서 우리 공관원들이 당황했다. 김씨는 70년대 중반에 납북됐다고 했다. 동해 오징어 잡이에 나섰다가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 20여명의 동료 선원들과 함께 평양 부근의 닭목장(농장)에서 살았다. 김씨는 북한의 식량난이 심해지자 탈북을 결심, 8년 만에 성공했다. 우리 공관에 들어와서 꿈에도 못 잊던 어머니(82)와 통화했다. 강원도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통화하며 김씨는 목메어 울었다. 이런 김씨가 갑자기 심경 변화를 일으켜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우리 공관원들은 김씨가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갑자기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이 생각난 것으로 짐작했다. 김씨는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내가 (북한에) 돌아가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심정을 알아 주시라요”라고 했다. 우리 공관측이 고민하고 있을 때 김씨는 몇 시간 뒤 다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김씨는 공관원들에게 “하룻밤 뱃길이면 오갈 수 있는 지척에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한생을 보내야 하느냐” “부모형제들과 생이별하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살아가야 할 생각을 하면 암담하다”고 하는 등 한국으로 갈 듯한 생각을 비쳤다. 김씨는 이처럼 ‘어머니에게 보내달라’고 했다가 ‘북의 가족들이 죽는다. 돌려보내 달라’고 하는 등 번민을 거듭했다. 결국 어머니가 직접 전화 설득에 나섰다. 어머니는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보자”며 울음을 터뜨렸고, 김씨를 도운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도 한국 내 가족들의 삶을 전해주며 마음을 잡으라고 권했다. 김씨는 최근에야 한국행을 굳혔다./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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