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다” |
---|
노컷뉴스 2009-01-26 05:03 새해 첫날 통일만두 빚는 새터민들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다.”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새터민을 돕기 위해 새터민이 직접 운영하는 (사)새터민회 최정녀 회장의 말이다. ▲새터민, 새터민을 돕다=설 명절을 나흘 앞둔 지난 22일 찾은 대전시 서구 용문동 (사)새터민회 사무실엔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80여평의 사무실엔 새터민 6명이 만두를 빚고 있었다. 만두 이름은 ‘통일만두’. 사무실 앞에는 통일만두를 파는 분식가게가 있다. 가게 점원까지 모두 15명의 새터민이 북한 만두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북한에서 먹는 맛 그대로를 담은 평양 만두. 통일의 염원을 담아 만두 이름을 ‘통일 만두’로 지었다. 지난해 9월 가게를 연 뒤 지금까지 큰 수익을 얻은 건 아니지만 통일 만두 가게는 뒤늦게 남한에 들어 온 새터민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생소한 단어는 물론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부분들을 먼저 들어와있는 ‘선배’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실제 한 새터민은 식당과 식품 제조공장 등에서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직장을 그만둬야 했지만 이 곳에서 3개월동안 일한 뒤 지금은 조금 더 좋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식당으로 일터를 옮겼다. 최 회장은 “2003년 한국에 와서 식당 일을 할 때 식당 주인이 비닐 팩을 벌리라는 말을 했는데 도무지 비닐 팩이 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앞에 있는 비닐 주머니가 바로 비닐 팩이었어요. 정말 창피하고 한국 사회에서 살 자신이 없어지더라구요”라며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최 씨는 이 후 새터민들이 직접 새터민을 도울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 같은 생각이 지난해 (사)새터민회 조직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 ▲새터민, 어려운 이웃돕기에 나서다=통일 만두 공장에서 만두를 빚는 새터민 김금선(가명.50)씨. 북한 함경도가 고향인 김 씨는 지난 97년 남편과 사별한 뒤 당시 10살 갓 남긴 두 남매의 끼니를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 중국 국경을 넘었다. 김 씨는 그 뒤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린 남매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온갖 고생 끝에 2004년 말 한국 땅을 밟았고 8주간의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2005년 대전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김 씨의 몸무게는 37kg. 어렵게 시작한 간병인 생활을 하던 김 씨에게 자궁경부암 3기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 씨는 수술을 받았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 번 돈을 중국 브로커를 통해 북에 남아 있는 남매에게 보내주는 일이 김 씨가 생각한 전부였던 김 씨의 인생은 수술 뒤 바뀌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는데 난 내 자식 생각밖에 못하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새터민들과 함께 ‘10전(원) 모으기 캠페인’도 벌이고 있어요. 적은 돈이지만 얼마가 됐든 새터민들이 모은 돈을 연말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같은 곳에 기부하고 싶어요.” 김 씨의 말이다. 김 씨 뿐 아니라 새터민회를 중심으로 새터민들은 최근 들어 독거 노인이나 급식을 먹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평양 만두와 두부밥 등 북한의 맛을 전해주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씨는 “도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새터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예요.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처음 남한 사회에 와서 느꼈을 절망감이나 이질감 등도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받기만 한다고 욕할 게 아니라 새터민 수준에서 생각해주고 그 사람들이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또 그래서 받지 않고 나눌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최정녀 회장은 “우리가 여기서 적응하고 또 자리잡기 위해서는 남한 사람들보다 10배, 100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새터민들이 위축되지 않고 자신있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또 그곳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첫걸음이 통일 만두 가게”라며 “가게가 잘 돼서 보다 많은 새터민들이 이 곳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또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전CBS 신석우 기자 dolbi@cbs.co.kr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나도 만두를 꽤나 좋아하는데 북한식의 만두는 5개 이상 먹을 수가 없지요. 얼마나 큰지.....
그리고 떡 큰 고구마 만하게 만들어서 그 안에 안꼬를 넣었는데 찹쌀밥을 많이 떡메로 치지 않아서 밥풀이 그대로 있고 또한 며칠 지나 굳어지면 떡 벌어지지요. 그러면 우리들은 그 안에 팟만 빼어 먹고는 벌이고 했지요.
내 고향은 연백이기 때문에 쌀도 많이 나고 바닷가가 바로 곁이기 때문에 누나들 따라서 바닷가에 가서 조그만 조개를 긁어 모아서 가지고 놀다가는 물이 들어 올때에 누나들 따라서 집에 오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먹을 것이 풍족하던 고향이었는데 어찌 지금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김니까? 이해가 안감니다. 나는 처음에 북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우리 고향에는 안그렇겠지....하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고향에도 마찬가지란 사실을 들었습니다.
고향에서 피난나오지 못한 동무들 생각이 납니다. 바로 앞집에 살던 신갑순이 여자이름 같지요? 하지만 남자입니다. 지금은 아마도 68살쯤 되었겠지요? 밥만 먹으면 그 집에가기도 하고 우리집에 오기도 했는데 우리집에는 아버지가 어려워서 잘 못 왔었지요. 아버지가 안계실 때에 왔다가는 오시는 기색만 있어도 빠져 나가기바빳으니까요. 호랑이 아버지는 아니셨는데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고향 생각은 더 나는것 같습니다.
어머니 품과 같은 고향입니다. 그런 고향과 가족을 등에 두고 나오신 탈북 동포 여러분 힘 내세요. 여러분이 잘 되시기를 고향에 계시는 여러분의 부모 형제들은 매 순간 마다 하나님께 기도 하시리라 믿습니다.
강하고 답대하세요. 현실이 힘들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내잎에 있는 높은 산만 바라보게되면 그 산은 점점 더 높게만 보일것입니다.
나는 할 수있다 하는 신념과 믿음으로 약진하세요. 그럼 금년의 상징인 소와 같이 탈북하신 여러분!! 굳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