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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뒤바뀐 ‘내조’…돈벌러 가는 아내, 살림하는 세대주
데일리NK 2009-05-21 16:47:59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f 관리자 802 2009-05-25 20:37:49
[北 내조의 여왕③] 생존 전투에서 지쳐가는 北여성들

지난달 한 포털사이트가 누리꾼 2,1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남자들이 바라는 최고의 내조는 ‘맞벌이’(28%)인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식량난과 경제적 빈곤이 만성화되면서 북한의 여성들도 농사나 돈 벌이에 나서야 했다. 북한에서는 오히려 ‘맞벌이’ 수준을 넘어 아내들이 남편을 대신해 가정의 생계를 끌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남편 앞으로 차려지던 국가의 식량공급이 끊기고, 직장에 나가봐야 임금도 받지 못하는 대다수 가정의 아내들은 내조의 자리를 박차고 ‘경제적 세대주’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큰 장사를 하고 싶어도 본전이 없는 일반 주민들은 소일거리 장사를 해서 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한다. 돈 버는 일 자체도 만만치 않은 판에 외국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국가의 통제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북한에서 장사하는 여성들의 ‘천적’은 바로 보안원(경찰)들이다. 북한에서는 올해 1월 1일부터 ‘시장 통제’ 정책을 예고해왔는데, 사실 전부터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나 모내기 전투와 같은 집단 동원령이 선포될 때도 장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단속은 있어 왔다.

단속기간이 되면 보안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장사하는 여성들을 추적하는데, 통제 품목을 팔고 있지는 않은지, 장사 금지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입지 않았는지 까지 따지고 들어온다. 운이 좋으면 담배 한 갑 수준에서 마무리되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장사할 물건을 모두 빼앗기고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 일부 보안원들은 단속을 무기로 장사하는 여성들에게 정기적인 뇌물이나 성상납을 요구한다.

평안남도 개천과 평안북도 영변 사이에는 보위부 산하 ‘10호 초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근무하는 보위원들은 도(道) 경계를 넘나들며 장사하는 여성들을 붙잡아 상습적으로 술, 담배, 현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2~30대 여성들을 밤새 초소에 잡아두는 보위원들도 있다.

이런 단속만으로 여성들의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장군님 방침’을 운운하며 “왜 치마를 입지 않았나?” “왜 자전거를 타고 다니나?”라고 시비를 걸어 올 때면 삶의 의욕자체가 완전히 상실되고 만다.

장사를 하는 여성들은 보통 농촌 지방을 돌면서 물건을 직접 구입해 시장에 내다 판다. 그런 여성들은 새벽 일찍이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농촌으로 농산물을 구입하러 가야 하는데, 보안원들이 이른 아침부터 길거리에 나와 바지를 단속하고 자전거 단속을 하니 참으로 피 말리고 간(肝) 말리는 노릇이다. 때문에 오늘날 북한 여성들은 모두 악만 남아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곧바로 설전이 벌어진다.

없이 사는 집들은 오히려 남편의 ‘내조’가 절실하다. 90년대 후반 이후 북한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남편들을 ‘멍멍이’나 ‘낮전등’이라고 비하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고생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남편들은 시장에 함께 나와 아내 뒤에 쭈그리고 앉아 시비거리를 예방해주거나, 체면 때문에 함께 따라 나오지 못하면 집에서 저녁밥이라도 준비해준다.

하지만, 하루 종일 돈벌이에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서 하는 일 없이 빈둥대며 놀고 있는 남편과 대면하는 여성들이 지금도 많다. 집구석에서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고 놀음에 정신 팔려 시간을 보내는 남성들일 수록 꼬박 꼬박 담배는 피워댄다. 먹을 쌀도 없는데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남편을 둔 아내들의 한숨은 더욱 깊을 수 밖에 없다.

탈북자의 성별 비율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두 세배 가량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북한의 세태 때문이다. 중국으로 넘어오는 여성 중에 집에서 남편 내조나 하면서 편안하게 생활했던 사람은 100명에 1명도 안될 것이다. 먹고 살기위해 발이 퉁퉁 붓도록 뛰어 다녀도 살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여성들, 남편의 횡포에 질리고 질린 여성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완전히 상실한 여성들이 ‘한번 죽지, 두 번 죽겠나?’ 하는 마음으로 두만강을 건너는 것이다.

이제 북한 서민층에서 원래 의미로 ‘내조의 여왕’을 찾아내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 듯하다. 지금 북한에서 한 가정이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을 위해 간고분투 하는 여성과 현실적 ‘내조’에 충실한 남성의 노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남성중심의 북한 봉건문화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극도의 빈곤에서 시작된 충격적인 변화는 적지 않은 후과를 남겼다. 가정과 사회에서 기존의 남녀의 역할이 파괴되면서 희생을 치러야 했던 쪽은 철저히 여성들이었다. 오늘도 북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울려퍼지는 노래 ‘여성은 꽃이라네’는 그래서 더욱 기만적으로 들린다.

유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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