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고향에 다시 돌아갈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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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신동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긴 글에서 한 대목만 따왔습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나마 (탈북자들이) 남한 사람과 다른 것은 ‘부채를 쓰던 곳에서 선풍기가 있는 곳’으로 왔기 때문에 선풍기와 에어컨만 구경한 이곳 사람보다는 상대적으로 행복해하리라는 점이다. 당장은 현재의 삶이 북한에 있을 때보다는 나은 것이기에 만족할 수 있다는 뜻이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 </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러나 그 만족감이 일생을 갈 수 있을까. 한국에 정착한 기간이 오랜 탈북자일수록 더욱 좌절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본 적이 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들에게 ‘선풍기를 안고 부채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가겠냐고 물으면 답은 두 부류로 갈릴 것이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 </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여기서 에어컨을 꼭 장만하겠다는 부류와 그리고 부채 가진 사람 앞에서 선풍기를 가지고 뿌듯하게 살겠다는 부류로 말이다. 처벌받을 두려움만 없다면 여기서 번 돈으로 북한에 돌아가고 싶은 탈북자가 많다는 뜻이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이는 남한에서 몇 년 열심히 벌어 몇 천 만원만 갖고 가도 북한에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떵떵거리면서 부자로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중국 조선족들을 사례로 들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한국에 와서 보모니 식당이니 3D 업종을 전전하면서 힘들게 몇 년 벌어 고향에 돌아가면 부자가 됩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이런 조선족에게 열심히 벌어서 고향 갈거냐, 아니면 비록 여기서 상대적으로 매우 못살아도 선진국인 한국에서 그냥 살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어떻게 나올까요.</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아마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왜냐면 인간은 상대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니깐요.</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지금 한국에 온 탈북자들 중에도 앞으로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고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가며 사는 날이 온다면 대다수가 그새 벌어놓은 돈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물론 여기서 터전을 잡고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그냥 여기서 살겠다고 하겠지만, 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은 귀향을 선호할 것이라고 봅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한국에서도 옛날에 전 재산 5000만 원 정도 들고 중국에 들어간 사람 많습니다. 여기선 빈민이지만 중국에 가면 ‘한국 사장님’으로 대접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 수 십만 명이 될 것입니다. 하물며 고향이 북한인 탈북자들이야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런데 문제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어느 탈북자가 “나 돈 열심히 벌어 훗날 북한에 올라가 살거야”하면 속으로 “정착금 주고 살게 해주었더니 여길 배신하고 다시 돌아가? 나쁜 놈들...철새들...”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꽤 많습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난 안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10명에 한 명 정도라고 해도 위축될 수밖에 없죠. 익명의 인터넷 상에선 온통 악플 뿐입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사회적 소수 집단에 포함돼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집단에 포함되면 자격지심인지 아무튼 이상하게 여론을 많이 의식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의식한 것이 아니지만 하도 많이 맞게 되면 점차 공포증이 생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더구나 한국에는 뭔가 말썽거리가 됐다는 기사만 뜨면 늘 여론의 돌팔매를 맞는 집단이 있습니다. 사이비종교 구성원들이라든가 조선족들, 그리고 그 조선족이 차라리 부러워 어디 가서 이상한 말투를 의심하면 조선족이라 둘러대는 탈북자들...등등을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탈북자들에겐 피해의식의 주요 원인이 정착금입니다. 정착금을 받았다는 원죄 때문에 많은 탈북자들은 뭔가 부정적인 언론보도가 나올 때마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이런 감정적으로 퍼부어지는 비난들에서 자기를 방어하기 힘듭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탈북자들은 한국에 들어오면 정착금 3700만 원과 17평 미만 영구임대아파트 입주권(임대 보증금은 자기가 받은 정착금에서 내야 하는데 서울은 평균 1200만 원 정도)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적습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탈북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고마운 배려입니다. 그런데 ‘정착금 주어 살려주었더니...’하는 욕설을 계속 보게 되면 너무 아픕니다. 너무 아파서 정착금 안받고 이런 욕 안 먹었더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때 있습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왜 이런 말을 하냐면, 미국에 정착했던 아프리카인들이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 고향으로 귀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선 정착금을 주지 않아서 그런지 이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진 않나봅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깜둥이 거지들을 미국에 난민으로 받아주었더니, 또는 영주권을 주었더니 이제 와서 미국이 어렵다고 도망가”하는 여론들이 생길 법도 한데 말이죠. 그게 미국의 힘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와 관련된 기사를 저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김재영 기자가 썼습니다. 품을 많이 들여 정성껏 쓴 기사입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font face="HY중고딕">“미국이 싫다” 阿이민자들 ‘국제 귀농’ 붐</font></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img src="http://www.journalog.net/_upload/blog/0000000328/20090527172126.jpg" align="bottom" width="300" height="269" border="0"></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TV에서 보던 화려함이 미국의 전부는 아니었다. 기를 쓰고 일해 겨우 살 만한가 했더니 불황이 닥쳐왔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이만하면 됐다 싶었는데 앞으로 삶이 더 나아질지 불투명하기만 하다. 대출금 할부금 걱정, 일에만 파묻힌 생활, 늘어난 뱃살…. ‘아메리칸 드림’은 실속 없는 허상이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미국 댈러스에서 트럭운전을 하던 제임스 오디암보 씨(34)는 올해 초 오랜 결심을 가족들에게 털어놨다. “이제 그만 고향 케냐로 돌아가자.”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미국에서 경기불황으로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면서 미국의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다시 짐을 싸고 있다고 26일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일종의 ‘국제적 귀농’이다. 미국의 아프리카 이주자 단체들에 따르면 최근 아프리카 귀향을 위한 문의전화가 급증하고 있다. 물질적 성취는 이뤘지만 각박한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낀 중산층 이민자들이 대부분이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최근 아프리카 신흥시장의 경제성장으로 환경이 개선되고 사업기회가 많이 생긴 것도 귀향을 결심하게 하는 요인이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어릴 때부터 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던 오디암보 씨는 199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뉴욕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뒤 텍사스로 이사해 장거리 트럭 운전사로 일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고향에선 듣도 보도 못했던 첨단기술은 물론이고 운전면허증을 하루 만에 발급해 주는 정부의 일처리까지 놀라웠다. 꿈을 이루려 정말 열심히 일해 댈러스 외곽에 멋진 아파트도 장만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하지만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꿈은 다시 멀어져갔다. 하루 14시간씩 일해도 모기지 대출금, 차량 할부금, 의료보험료 등을 내기가 벅찼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밥 먹을 시간이 아까워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운동을 하지 않았더니 뱃살은 갈수록 늘어졌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딸이 취학연령에 가까워지면서 걱정은 하나 더 늘었다. 금속탐지기와 갱들이 있는 학교에 딸을 맡기기 두려웠던 것. 미국 사람들은 올해 초 케냐에서 벌어진 종족 간 유혈사태 소식에 혀를 끌끌 찼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하지만 오디암보 씨에게는 학교 교회 등 어디서든 일어나는 미국의 총기사고가 더 두려웠다. 그는 “영화에서는 미국의 한 면만 보여줬다”고 말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케냐 서부 키수무로 옮긴 오디암보 씨의 삶은 몇 달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130kg에 육박하던 몸무게가 90kg으로 줄었다는 것. 1500달러(약 190만 원)짜리 중고 도요타 자동차 하나면 막힘없이 거리를 다닐 수도 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는 “케냐에서는 차 1대를 4, 5명이 나눠 타지만 미국에서는 사람 수만큼 차가 있어야 한다”며 “나눌 줄 모르고 모든 것에 온통 ‘이건 내 것’이라는 집착이 붙어있다”고 말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고향에선 신용카드도 필요 없다, 모기지도 없다. 오로지 현금만 통한다. 그는 “여기선 하루 5달러(6500원)면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살 때는 매달 800달러를 주택 대출금으로 썼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식기 세척기도 필요 없다. 직접 설거지하면 된다. 에어컨을 켜는 대신 창문을 연다. 월마트에서 쇼핑하는 대신 시장에 가서 흥정하는 재미를 느낀다. 늘 ‘살 빼야지’ 타령하던 아내의 원피스도 헐렁해졌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는 “처음 케냐로 돌아왔을 때 이웃들이 ‘왜 아이들은 밖에 나와 놀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며 “미국에서 배운 대로 낯선 사람에게는 말도 걸지 않고 저녁에 바깥출입을 않던 아이들도 이제 웃음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장모 집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는 오디암보 씨는 미국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째 사업자등록증이 나오지 않아 속이 타지만 아무런 스트레스도 걱정도 없다”며 “중요한 것은 삶의 형식이 아니라 질”이라며 활짝 웃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이 기사에서 ‘미국’을 ‘한국’으로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탈북자’들로 하고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요. 실제 저는 저 기사를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내가 머리 속에 상상한 미래와 신통할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지금 저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앞으로 김정일 체제가 없어지면 일어나겠죠.</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런데 이 기사를 읽어보고 아주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한된 분량의 기사에서 다 쓸 순 없지만요.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아프리카로 가서 느끼는 여러 만족을 위의 기사에 열거했지만. 이 만족 중에 제일 중요한 만족이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미국에선 흑인이라, 그것도 별 볼일 없는 가난한 흑인이라 차별의 눈초리를 받았지만 아프리카에 가서는 부러움의 시선을 받고 있지 않을까요. 제가 보건대는 바로 그런 점이 경제적 수준이 떨어지는 아프리카에서 저들을 살맛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보는데요.</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이는 아프리카에 돌아간 흑인들이, 한국에선 남을 부럽게 바라 보다가 중국 가선 ‘사장님’으로 삶을 승격시킨 사람들이, 북한에 돌아간 탈북자들이 공통으로 느낄 감정이라고 봅니다.</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훗날 북한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남한에 정착했던 탈북자들이 무리로 귀향하는 일이 꼭 벌어질 겁니다. 저는 그런 일이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돼야 하는 일로, 또 어찌 보면 장려돼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런데...저 기사를 보면서 든 생각은 그때가 되면 저는 한국에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클 것 같은데, 남아 있는 탈북자들이 간 사람들을 대신해서 돌팔매와 싸늘한 시선을 어찌 감당할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span></p><p style="line-height:200%; margin-top:0; margin-bottom:0;"><span style="font-size:12pt;"> 그때쯤이면 한국 사회를 휩쓰는 증오와 편가르기, 마녀 사냥의 광기 등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심각할 것 같은데요…. 제가 왔던 7년 전과 지금이 하늘과 땅 차이가 된 것처럼…</span></p><p> </p>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 주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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