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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 "미군 유골 비싸게 사고팝니다."
주성하기자 2009-08-04 17:37:08 원문보기 관리자 726 2009-08-11 23:30:22
2일, 1991년 제1차 걸프전쟁의 최초 전사자 시신이 발굴된 사실이 미국 언론을 흥분시켰다.

비단 미국 언론 뿐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 언론들도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전사자의 유해를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찾아오려고 하는 미국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보도된데 따르면 미국 정부는 조종사로 전투에 나섰다 추락한 마이클 스콧 스파이처 소령의 유해를 18년 동안 찾아 헤맸다. 끝내는 이라크 서부 안바르 주 사막의 모래 속에서 그의 유해를 찾았다.

비단 이번뿐이 아니다. ‘단 한 명의 군인도 홀로 적진에 남지 않게 하라(No one left behind)’는 미군의 신조는 참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수없이 낳고 있다.

이런 일을 통해 다민족 국가인 미국인들은 단결하고 조국애를 간직할 수 있다.

최근에도 미국에서 전문가들이 한국에 날아와 6.25전쟁 시기 한강에 수장된 미군의 유해를 찾아 헤맸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60년 전에 사망한 시신 하나 찾겠다고 현재 생존 납세자들이 낸 피같은 막대한 세금을 퍼부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1차 세계대전 때만 봐도 솜 강 전투, 베르뎅 요새 전투 등 지긋지긋한 참호전을 통해 수십 만 명씩 무리로 전사했고, 아직 찾아내지 못한 시신만 수백 만구에 이른다.

하지만 어떨 때보면 유해 발굴 뒤의 감동적 스토리는 유해가 몇 백만 달러를 퍼부어 찾을 필요가 있는 가치 있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적 판단 유보다.

오늘 말하려는 것은 미군 유해 수습 과정에 북한에서 벌어지는 웃고만 넘어갈 수 없는 해프닝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미군은 연인원 178만9000여명이 참전해 4만677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전사 또는 실종자 가운데 아직 8100여명의 유해나 종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8100여명 중 남한의 주요 격전지에만 2000여 구가 묻혀 있고 나머지 6100여구는 장진호와 운산 등 북한 지역과 비무장지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1996년부터 북한에 장비와 인원을 보내 공동으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해 225구의 시신을 발굴했지만 2005년 북핵 문제로 북ㆍ미 관계가 악화하자 미측 작업인력의 안전 등을 이유로 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미 측은 발굴지원 인건비와 경작물. 수목 훼손비, 토지복원비, 헬기 임차료 등의 명목으로 북측에 2200만 달러를 지불했다. 결국 유골 한 구를 찾는데 10만 달러씩 북한에 지불한 셈이다.

6100여구 중에 225구를 찾았으니 아직도 5900여구의 미군 시신이 북한에 있는 셈이다. 이 유골을 다 찾아낸다면 북한은 산술적으로 5억9000만 달러를 벌 수 있다.

1996년 미군 요원 수십 명이 중장비와 북한 인력들을 동원해 대규모 전사자가 나왔던 장진호와 운산 일대를 파면서 다니자 북한 사람들은 매우 신기하게 이 현상을 지켜봤다.

목숨 값이 헐값인 북한식 개념으로는 뼈를 찾겠다고 땅을 파고 다니는 미국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때는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 수백만 명이 굶주려 죽고 관조차 모자라 땅에 그대로 마구 파묻을 때였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미군 유골=달러’라는 점이다. 이때부터 도굴꾼들이 장진호와 운산에 밀려들었다.

북한에서 도굴꾼들이 출현한 것은 1980년대 말 경부터다. 처음에는 도굴이 아니고 밀수 선을 개척한 사람들이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골동품을 사들인 것이 시초다. 골동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랜 도자기나 그림이 있으면 높은 가격에 사들인다는 말에 아무 의심 없이 팔았다.

이렇게 북한에서 수집된 골동품들은 주로 남한에 흘러왔다. 북한 골동품상들이 이것을 중국에 넘기면 중국 조선족들이 다시 연변에 상주하는 한국인 골동품업자에게 넘기는 형식이다. 이 과정에 북한에서 단 돈 몇 달러에 사들인 골동품이 한국에 와서 몇 십 만 달러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골동품 사업은 일확천금이 되는 사업이었다. 초기 수집업자들은 큰 돈을 벌었지만 점차 북한 마을들에 골동품이 고갈됐고, 골동품이 막대한 돈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주민들도 별치 않은 골동품도 높은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골동품 업자들이 눈을 돌린 것이 바로 도굴이다. 특히 개성 지역에는 고분이 많아 파면 골동품들이 적잖게 나왔다. 이렇게 도굴된 골동품은 물론, 북한 중앙역사박물관 등 각지 박물관의 국보급 유물들도 남한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언젠가 중앙역사박물관에 중앙조사단이 들어가 조사해 보니 진열됐던 진품 국보들이 상당수 사라지고 가짜 모조품들만 있었다. 그래서 해설원 등이 무더기로 총살당했다.

1995년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죽자 살길을 찾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골동품 장사에 매달리다보니 북한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골동품 전문가가 됐다. 이는 역설적으로 골동품 구하기가 그만큼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돈 되는 미군 유골이 출현한 것은 이들에게 가뭄에 단비와 같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삽을 들고 장진호와 운산 등에 몰려들었다. 마을 어른들에게 수소문해가면서 땅을 뒤지기 시작했다.

미군의 장비를 빌려 유골 발굴 사업에 참가한 북한군인들도 유골이 막대한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군이 225구라도 수습해 갖고 온 것은 아무튼 대단하다. 왜냐면 유골이 발굴되면 몇 명이 짜고 빼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자생적 유골발굴꾼들의 가장 큰 애로점은 발굴한 뼈가 미군인지 아닌지 도저히 분간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그러다보니 장진의 산마루에서 뼈를 발굴하면 일단 보물처럼 집에 모셔두기 급급했다. 자기가 찾아낸 것이 미군 뼈라는 희망을 안고...

다행히 미군은 인식표라는 것을 몸에 휴대하고 다닌다. 인식표는 다른 말로 군번줄이다. 이 인식표와 함께 나온 뼈는 미군 유해임이 확실하니 진짜 검증이 필요 없는 보물이다. 약 10만 달러짜리인 셈이다.

10만 달러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가 하면 평양을 제외한 일반 대도시에선 북한의 일반적인 아파트 평수인 30~40㎡짜리 아파트 100세대 정도를 살 수 있다. 그러니 미군 유골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열정이 과거 일확천금을 노리고 노다지를 파고 다닌 사람들의 열정에 비길 바가 없는 것이다.

북한에선 미군 유해를 찾았어도 판로개척이라는 애로가 존재한다. 남한이나 미국을 직접 접촉할 수 없다. 그래서 유일한 방법은 중국에 있는 미국 공관에 접촉해 파는 것이다. 그것을 북한 사람들이 직접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뼈는 자연스럽게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조선족들에게 넘어갔다.

북한 사람들이라고 바보는 아니니 유골을 전부 넘기면 사기를 당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다리뼈, 손뼈 등을 하나 넘긴다.

1990년대 말부터 북한에서 몰래 두만강을 타고 중국에 넘어온 사람들이 품속에서 헝겊과 비닐봉지에 보물처럼 싸고 싸 금이야 옥이야 소중히 보관한 다리뼈를 불쑥 꺼내들고 이게 미군 유해인지 감별해달라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 이런 뼈는 흘러 흘러 다니다가 어쨌든 미국 공관에 간다.

중국 주재 미국 공관은 겉으론 티를 내지 않지만 이런 유골 감별 요청이 들어오면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일단 맞다는 대답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흥정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흥정은 워낙 베일에 감춰져 있어 미국이 미군 유해를 얼마에 사가는 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듣기로는 미국에서 가지고 간다고 들었다.

나도 한국에 온 다음에 중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미군 뼈가 있는 데 어떻게 좀 알아봐 달라” 또는 “미군 인식표가 있는데 진품이다. 이거 좀 팔아 달라”는 식의 부탁을 두어 번 받았다. 문제는 저들이 인식표는 5만 달러 정도는 받는 줄 아는데 있다. 실제 그 정도 값어치로 팔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요청이 오면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미군 뼈뿐만 아니라 골동품이 있다면서 판로를 좀 개척해달라는 주문도 여러 번 받았지만 기자 신분으로 불법 세계에 발 담글 수 없다고 생각해 무조건 거절했다. 그랬더니 요즘엔 아예 문의도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북한에선 미군 뼈들이 금덩이보다 더 비싼 보물처럼 몰래 흘러 다닌다. 북한서 거래된다고 모조리 중국에 오는 것은 아니다. 요즘 같은 어수선한 세월에 사기당할 위험이 상당히 큰 중국에 넘기느니 차라리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자손대대로 넘기는 골동품처럼 고이 보관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미군 유해 발굴 현장.

개중에는 미군 뼈가 아닌 것들도 상당히 많다. 장진에 또는 운산에 묻혔다는 이유만으로 땅 속에서 조용히 영면하던 수십, 수백 년 된 유골들이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앞으로 김정일 체제가 끝나고 평양에 미국 공관이 들어서면 그 공관은 갑자기 북한 전역에서 들이닥치는 뼈 더미에 파묻힐지 모를 일이다.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 주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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