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탈북학생들 "이젠 영어 실력 제대로 쌓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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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새터교회 외국어 교실 "북한선 거의 가르치지 않아 남한 학교 수업 못따라가…" "북한에서 온 아이들이라 중국어는 곧잘 하는데, 영어 실력은 영…. 중2·중3이 돼서도 아직 인칭대명사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 많아요. 'I love him' 대신 'I love he'라고 쓰는 식이죠.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새터교회의 교육관. '새터민과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외국어 교실'을 맡고 있는 이우희(40) 전도사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탈북자 가정 자녀와 저소득층 학생 25명을 앉혀놓고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 전도사는 "우리가 우스개로 말하는 '자유차기(프리킥)', '문지기(골키퍼)' 같은 말을 진짜로 쓰면서 자란 아이들"이라며 "아이들 대부분이 처음 한국에 와서 축구 중계를 들을 때 절반도 못 알아듣는다"고 했다. 김수정(가명·15·중2)양은 2000년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해 2003년 한국에 들어왔다. 이듬해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시작하며 처음 영어를 배웠다. 영어는 이전에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외계어'였다. 김양은 이날 영어로 쓰인 이솝 우화를 독해하며 "예전에 영어 시험 보면 반타작도 못했는데, 여기서 배우면서 지금은 10문제 중 7~8개를 맞힌다"고 자랑했다. 곁에 있던 이현진(가명·15·중2)양은 2002년 처음 한국에 왔다. "여기 애들은 유치원 때부터 영어 학원에 다니잖아요. 처음 영어 수업을 받을 때 얼마나 겁났는지 몰라요. 저는 지금도 새터교회 말고는 (영어) 학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양천구는 전국에서 탈북자가 가장 많이 사는 기초자치단체다. 지난 6월 기준 전국의 탈북자는 1만4167명이며, 그중 12%인 1160명이 양천구에 살고 있다. 새터교회는 매주 50명 정도의 탈북자가 모여 예배를 보는 곳이다. 이 교회 강철호(41) 담임 목사는 탈북자 중에서 처음으로 감리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새터교회는 지난 4월 외국어 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탈북자 자녀와 지역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학과 공부와 컴퓨터를 무료로 가르치던 '해오름 공부방'에서 외국어 과정을 따로 떼어내 강화한 것이다. 중학교 졸업반이 돼도 한국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탈북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속성으로 키워야겠다는 발상이었다. 북한에서 영어는 '적성국 언어'라, 일부 엘리트 계층을 빼면 배울 기회가 없다. 새터교회의 영어 수업은 1주일에 3번 진행된다. 알파벳부터 배우는 완전초보 'ABC반'과 문법반은 이 전도사가 지도하고, 초급·중급 회화반은 근처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인도 출신 선생님이 담당한다. 외국어 교실은 교인들이 한두 푼 모은 헌금과 양천구청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학생들이 오다 말다 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꼬박꼬박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2만원씩 수업료를 받는다. 강 목사는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등교한 아이들이 공통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그동안 단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영어의 벽"이라며 "영어를 모르면 학교 공부는 물론 일상생활과 사회진출도 어려운 현실에서, 탈북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것은 학과 공부를 돕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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