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호 경위 '강력계 형사에서 탈북자 지킴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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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 몸담으면서 탈북자들을 ‘조용히’ 도와주는 이가 있다. 국내에서 어렵게 적응해 가고 있는 탈북자는 2만여명. 연고도 지인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그들의 벗이 된 경찰관이 있어 화제다. 동대문 관내 탈북자 가정에 생활비를 지원하고 직업도 알선해주는 동대문경찰서 문영호(50) 경위가 그 주인공. “탈북자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단순한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하면서 한국 사회에 적응할 기회를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탈북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리가 할일이고요.” ◇탈북자 지킴이로 나서 강력계 형사로만 20여년을 보냈다. 특히 변사사건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그의 사생활은 그의 삶의 궤적과 다른 모습이다. 얼굴을 보니 강력범들을 잡아내던 베터랑 형사의 얼굴이 아닌 선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인상이 풍긴다. 그러던 문경위가 지난 2004년부터 관내 탈북자들의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부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또 다른 생활’이 시작됐다.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내몰린 상황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던 것.“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치는 않습니다. 우선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장 많이 호소하죠. 게다가 온전하게 가족 모두가 탈북에 성공하는 경우도 드물어요. 외로움과 생활고를 동시에 느끼는 거죠.” 특히 탈북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사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 경위의 설명이다. 연고도 지인도 없는 상황에서 자칫 사회 가장 밑바닥 인생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문 경위가 관내 탈북자 가정에 생활비를 지원하고 동시에 직업을 알선해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늦깎이 강력계 형사가 선행 천사로 수사반장을 보며 형사의 꿈을 키운 문 경위는 1986년 무도 경찰에 합격.형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한때 학업도 포기하고 절에 들어갈 정도로 방황하던 끝에 시작한 경찰 생활이었다. 범죄자를 잡는 것이 천직이라 생각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것은 1997년 벌어진 두 건의 사건 때문이었다. 1997년 1월. 19세 청년이 노파를 목졸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단돈 2만5000원을 훔쳐 달아난 뒤 검거된 그 청년은 배고픔에 담을 넘었다고 말했다. 고아원 출신인 그는 고교 졸업 후 무작정 거리로 내몰렸다. 또 다른 사건은 문경위 내부에서 찾아왔다. 과로로 인해 쓰러진 것. 문 경위는 범죄자를 잡는 일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몸을 추스린 그는 틈나는대로 여행을 떠났다. 그의 선행의 시작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도와주는 식이었죠. 약이 필요한 사람은 약을 사주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쌀이 필요하면 쌀을 대줬습니다. 지금까지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팔도를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2003년부터는 서울 중랑구의 70세 이상 독거노인과 강원도 영월의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있다. 매해 최소 수백만원의 사비를 들여하는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적지 않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길 또한 그의 천직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임홍규기자 hong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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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사와 이웃이있기에 대한민국은 영원한 번영과 미래가 확고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주위엔 마음 따뜻한 한국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며칠전 한국인 친구분께서 고향에서 부모님이 농약, 비료 같은 것을 쓰지 않고 농사지은 입쌀이라고 하면서 둘이 맞들기도 힘들 정도의 쌀포대를 건네고 갑니다.
급히 가버리니 미처 인사도 못하고 멍하니 섰는데 이상하게 이 우둔한 놈도 눈굽이 찡해 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