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끝내고 산소에서 노래 부르고 춤도 췄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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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③] 1990년대 산소 앞에서 '놀자 판' 유행 북한에서 추석날 산소에 모여 춤추고 노래 부르는 풍조가 생겨난 것은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다.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3년 동안 북한 사람들은 마음대로 떠들고 웃지도 못했다. 김일성이 죽은 후 즐겁게 웃고 떠드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풍조가 농후해 졌기 때문이다. 즉 나라의 수령, 인민의 어버이가 서거했는데 그 자식들이 어찌 감히 웃고 떠들 수 있는가라는 식이었다. 당시에 김일성이 죽었다고 마음이 슬퍼 술을 마신 사람들까지 비판 대상이 됐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결혼식이나 환갑을 차리는 것 조차 눈치를 보면서 당비서에게 찾아가 먼저 식을 치러도 될지를 문의했다. 나라 전체가 꼼짝 없이 김일성 상(喪)에 갇혀버린 셈이었다. 김일성 사망 후에 식량난이 심화되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가 나왔다. 북한 당국이 구호를 제시하면서 비로서 평양극장에서 희극을 공연하기 시작했다. 백성이 굶어 죽어 나라가 망하게 생기자 당국은 부랴부랴 혁명적 낙관주의를 고취시킨다며 수많은 희극 배우들과 영화배우들을 출연시켜 웃음마당을 펼쳤다. 이 때부터 무거운 사회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추석날 산소에 가서 차례를 지내는 김에 음주가무까지 즐기는 풍조가 생겨났다. 이런 풍조가 가장 많이 휩쓴 곳은 주로 노동자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시내다. 직장에 있는 친구가 산소에 간다고 하면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모여들어 함께 간다. 이런 날엔 들놀이 가듯 마음이 들뜨고 수단 좋은 친구가 나서 운수직장의 차까지 빌려와 함께 타고 간다. 산소에 도착하면 모두들 달라붙어 벌초를 하고 성묘를 진행한 다음 준비해 왔던 음식을 차려놓고 둘러앉아 마시고 먹는다. 일정하게 취기가 오르면 녹음기를 켜놓고 춤추며 놀기 시작한다. 음식은 성묘를 하는 사람의 집에서 모두 준비하는데 친구들 몫까지 준비해야 하니 가족들 먹는 것보다 비용이 곱으로 든다. 때문에 이날 친구들을 데리고 성묘를 가는 사람은 그래도 어느 정도 밥술이나 들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술은 일인당 1병씩 준비해야 하는데 만일 함께 가는 친구들 중 술고래라도 있으면 한 병으로 성이 차지 않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술 마시고 담배도 피워야 하니 담배는 다섯 갑 가량 준비한다. 술을 마시려면 반드시 안주가 있어야 한다. 이 술안주도 친구들이 섭섭치 않게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준비해 가지고 간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서 노래와 춤을 곁들여 즐겁게 논다. 이러다 보니 산소 앞에서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익살스런 친구들은 잔을 들고 묘를 향해 '누워계시는 조상님들이 후손들의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 해달라'는 말을 하고, 가끔 술을 과하게 마시고 묘지앞에 쓰러져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려워도 웃으며 살자고 녹음기 켜고 즐겁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나무라기도 그렇지만, 산소 앞에서 고성방가를 하거나 술이 지나쳐 싸움판까지 벌어져 이를 좋게만 볼 수는 없었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풍조를 언짢게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성묘를 지내고 나면 가족들이 같이 조용히 식사나 하면 그만이지 무슨 좋은 일이라고 술타령까지 하냐는 것이었다. 성묘를 가서 술 마시고 춤추며 놀던 풍속은 200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져갔다. 조상 묘앞에서 미풍양속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들 생활 형편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그만큼 인심도 각박해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주민들은 ‘앞으로 좋아질 날이 올 것이다’는 정부의 선전에 반신반의 하면서가끔 이렇게 기분도 냈지만 한해, 두 해가 가도 형편이 좋아지지 않자 사회 분위기가 완전히 침체됐다. 목구멍에 거밋줄 쓸가 걱정이고 추석날 성묘도 갈 수 없는 주민들 속에서 추석날 춤추고 노래 부르며 즐기던 문화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추석은 추석같지도 않다는 말이 많다. 유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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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0-04-22 14:0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