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여성들, 추석 때 시댁 안가는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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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②]제사상 차릴 돈 없어…차라리 친구들과 하루 ‘휴식’ 한국에서 추석명절에 가장 힘든 사람은 역시 주부들이다. 차례음식 준비부터 시작해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을 끼니 때 마다 챙겨 먹이느라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북한에서도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한국의 추석 풍경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며느리들은 음식을 준비해 머리에 이고 손에 지고 시부모님을 찾아가야 했고, 시댁에 도착해도 제사 음식 준비와 시집 식솔들 시중에 허리 펼 사이기 없었다. 명절 뒤에 앓아 눕는 여성들도 더러 있었다. 올해 1월 입국한 윤 모씨(여, 48세)는 “‘고난의 행군’전 까지만도 추석이 가까워지면 압박감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며 “추석 전 날은 하루 종일 떡가루를 봐오고 떡을 빚고 지짐(부침개)을 만드느라 새벽 2~3시가 되어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고 추억했다. 윤 씨는 “추석 당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제사상에 올릴 음식들을 준비하고 식구들의 아침밥까지 챙기느라 힘들었다”며 “산소에 올라가 성묘를 하고 오후 3~4시경에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지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밤새워 음식을 준비하고 준비한 음식들을 싸들고 이고 지고 산소에 올라가는 것도 여성들 몫이다. 남성들은 뒷짐이나 지고 흔들흔들 산천구경 하면서 산소에 올라간다. 올라가면 또 여성들은 산소 앞에 음식을 차리느라 분주하고, 성묘 후 음식을 먹을 때도 애들 시중, 남편 시중에 한눈 팔 사이가 없다. 90년대 초반 까지 농촌에서는 동네 노인들이 추석날 뿐 아니라 다음날까지 띄엄 띄엄 찾아와 하루 종일 술상을 차려야 할 때도 많았다. 술시중 들기에 지친 여성들은 부엌이나 방 구석진 곳에 앉아 끄떡 끄떡 졸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북한에 몰아닥치 경제난에 따라 여성들의 ‘팔자’도 달라졌다. 잘 사는 집 여성들은 추석날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므로 여전히 바쁜 시간을 보낸다. 간부집안이라 해도 못사는 형제나 친척들도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그들을 무시할 수도 없어 술과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 또 술병 하나 달랑 차고 찾아오는 남편의 부하들도 외면할 수 없으므로 이들에 대한 대접도 여성들의 몫이다. 2000년대 이후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자본주의 사회처럼 노골적으로 식모를 들이지는 못하지만 암암리에 식모를 쓰는 간부들이 많아졌다.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화교나 외화벌이 단위의 간부들,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서 간부집에서 식모를 고용한다. 하루 벌이가 힘든 여성들은 이런 집에 가서 음식을 해주거나 청소를 해주면서 점심을 얻어먹고 돈을 받는다. 요즘에는 아예 전업으로 식모살이에 나서는 여성들도 있다. 간부들 집에 식모살이를 하면 나름대로 아쉬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인맥’이 되고, 일당으로 옥수수 1~2kg라도 받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유층 여성들은 특히 추석과 같은 명절에 식모를 많이 찾는다. 그러나 식모는 자본주의 상징이므로 대놓고 사람을 고용할 수는 없다. 때문에 이웃이나 손님들에게는 ‘친척인데 일손을 거들어 주려 왔다’고 속인다. 역설적이게도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이 추석 가사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경제난 때문이다. 조상님께는 죄송하지만 제사상을 차릴 돈이 없으니 여성들의 육체적 고충은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 여성들이 겪고 있는 ‘명절 증후군’은 북한 여성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신적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북한에서는 ‘조상을 천시하면 벌 받는다’는 말이 있다.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 것을 가정의 흥망과 연결시켜 생각하기 때문에 추석날 조상에게 제를 드리지 못하는 죄책감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것이다. 요즘은 하루도 쉬지 않고 돈벌이에 나서야 하는 팔자 때문인지, 추석에라도 좀 편히 쉬고 놀자는 마음에 시댁에는 가지 않고 동네 여인들끼리 패를 무어 윷놀이나 주패놀이를 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세상이 변하니 남편들의 태도도 변했다. 시댁은 나몰라라 하고 동네 친구들과 놀이에 나서는 아내가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아내가 열심히 버는 덕에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으니 북한 남성들은 유규무언(有口無言)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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