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두고 탈북한 오길남씨 "나는 바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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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어요.” 1985년 독일 유학 당시 가족과 함께 월북했다 탈출한 오길남(68)씨는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한 정부출연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한 오씨는 술에 의존해 과거에 얽매인 채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WP는 22일 인터넷판에서 ’북한의 잔악함에 파괴된 한 가족과 양심’이라는 제목으로 오씨의 인터뷰 기사를 싣고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한국 유학생이 두 딸과 아내를 이끌고 월북했다가 홀로 탈출해 괴로움 속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상세히 소개했다. 1985년 독일 튀빙겐에서 유학하던 오씨는 평소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들을 곧잘 하던 학생이었다. 이런 그를 눈여겨본 북한 기관원들은 오씨에게 다가가 간염을 앓고 있던 아내의 병을 낫게 해주겠다면서 좋은 직장도 내주겠다고 꾀었다. “아내는 북한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나는 반대를 무시했죠.” 동독과 소련을 거쳐 이들은 평양에 1985년 12월 3일 도착해 산악지대의 군부대로 끌려갔다. 오씨는 “군부대로 끌려갔을 때에서야 비로소 아내의 말이 옳았고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내의 간염 치료는커녕 이들은 수개월간 김일성의 교시들만을 반복학습해야 했다. 이후 대남선전 방송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북한 당국은 오씨에게 곧 독일로 돌아가 한국 유학생들을 포섭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물론 가족은 데리고 갈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내가 한국 유학생들을 데려오겠다고 하자 아내가 내 양심에 비춰 그렇게 할 수 없을 거라면서 얼굴을 때렸어요. 북한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도 했죠. 교통사고로 이미 가족이 다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했어요”. 북한당국의 지령을 받고 독일로 향하던 그는 결국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구조를 요청했고, 1992년에는 한국 대사관에 자수했다. 오씨가 북한을 탈출한 직후 그의 아내와 딸들은 체포돼 ’15호 수용소’로 이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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