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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황장엽 위원장이 남긴 발자취
자유북한방송 2010-10-10 00:00:00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 관리자 1249 2010-10-10 18:11:25
[97년 대량아사(餓死) 사태 당시 “독재정권 끝났다” 단언하며 망명.. 10여권 서적 집필과 美日 방문 등 전면에서 북한 민주화 활동 펼쳐]

“나는 늙고 무능한 생명이지만 동지들을 위하여 바치겠습니다”

향년 87세를 일기로 작고한 故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당 비서)은 지난달 9일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북한인민해방전선 창립식 축하서한의 끝 구절에서 이미 사망을 예감한 듯 했다.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1동 자택에서 영면(永眠)에 든 故 황장엽 위원장은 북한 민주화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족적을 남겨왔다.

1923년 함경북도에서 출생한 고인은 김일성종합대학을 거쳐 1949년 모스크바대학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수학한 후 1954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70년 당 중앙위원, 1980년 당 비서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는 독재에 이용된 김일성식(式) 주체사상과는 성질이 크게 다르다. 이런 이유로 한 때 체제비판성 발언을 했다가 문책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독재체제의 필연적 결과로 북한에 이른바 ‘고난의 행군’ 사태가 발생해 약 300만 명이 아사(餓死)할 무렵인 1997년 2월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단언하며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망명한 故 황장엽 위원장은 전면에서 김정일 정권과의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망명 이듬해 김대중 정권 출범을 계기로 재야에서 활동한 고인이 집필한 서적만 해도 10여권에 이른다. 1999년 회고록 를 시작으로 2003년 , 2008년 , 2009년 등을 통해 북한 민주화 전략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서적 집필뿐만 아니라 2003년과 올해 두 차례의 미국 의회 방문과 한 차례의 일본 의회 방문을 통해 북한 민주화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미일(韓美日) 동맹 강화를 호소하기도 했다. 또 북한민주화위원회와 북한인민해방전선, 자유북한방송 등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며 젊은 투사 양성에도 매진했다.

고인의 이러한 활동은 김정일 정권에 큰 위협이 되었다. 고인의 망명 이후 소위 ‘처단’을 공공연히 주장한 김정일 정권은 2006년 자유북한방송에 붉은 페인트가 묻은 손도끼와 고인의 사진을 보내 협박을 가하는가 하면 근래에는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 암살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고인의 시신은 현재 경찰병원에 옮겨진 상태이며 경찰은 고인이 평소 지병이 없었던 점을 근거로 심장마비 등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故 황장엽 위원장의 지인들은 “아직 빈소는 마련되지 않았다”며 “오늘 서울 강남구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에 임시로 조문객을 맞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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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靜曜 2010-10-11 10:09:0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곳으로 가셔서 그간의 모든 시름 다 잊고 편해지시길 바랍니다. 이제 남은 당신의 뜻은 여기 당신이 남겨놓은 정의의 투사들이 끝까지 받들것입니다. 통일의 그날까지 북한인민들이 자유로워 질 그날까지 지켜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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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기없는삶 2010-10-11 11:21:49
    애국의 별이 하나 졌습니다..고인이 살아 생전에 그토록 원하시던 뜻 우리가 지켜가겠습니다. 아픔없는 세상에서 선생님께서 심장으로 키우시고 가슴으로 믿어주신 우리들 꼭 선생님의 생전의 뜻 이어가겠습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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