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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크리스마스이브에 기념행사를 한다. 왜일까
주성하기자 2010-12-24 07:29:11 원문보기 관리자 869 2010-12-25 15:37:45

“북한 사람들도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압니까.”


한국에 와서 참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북한 사람들 중에도 크리스마스를 아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물론 내가 일일이 설문조사를 해서 물어본 적은 없지만, 최소한 90% 이상은 알지 않겠나 싶다.


40대 이상 세대에겐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처음 들었던 것은 1980년대 초반 북한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20부작 정탐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서였다.


이 영화는 소련영화 ‘17일간에 있은 일’을 보고 김정일이 우리도 정탐영화를 만들라고 지시해서 당시 북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20부작 장편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의 한 장면

6.25전쟁을 배경으로 미8군에 침투한 북한 공작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크리스마스를 묘사한 어느 한 장면에서 가사는 안나오고 크리스마스 캐롤송만 나왔다.


참 흥겨운 노래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저것이 무슨 노래인줄은 몰랐다.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처음 들었던 것은 대학 때. 어느 날 학급 소대장을 하던 제대군인 출신 모 씨가 가사까지 포함해 캐롤송을 완벽히 부르는 것이었다.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우리 썰매 빨리 달려 종소리 울려라~“


무슨 노래인줄도 몰랐지만, 나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도 그 노래를 배웠다.


지금 와서 보면 남한에서 부르는 노래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했다. 그 제대군인은 10년 동안 북한군 적공국에서 근무했다.


즉 분계선에서 대남심리전 방송을 했었는데 항상 최전선에서 있다보니 한국측 방송을 듣고 캐롤송을 배워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후에도 우리는 기분 좋은 때면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 개인적으로는 캐롤을 알게 된 역사가 그러했다.


그런데 훗날 이러저런 계기를 통해 알았는데 다른 북한 사람들도 어떻게 배웠는지 크리스마스 캐롤을 아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크리스마스날이 12월 25일인 것도 웬만한 사람들은 안다.


내 경험으로는 12월25일이 크리스마스라는 날이라는 것은 열 몇 살 때 알았다.


북한 6.25전쟁 학교 교육을 보면 “인민군대가 1950년에 크리스마스를 집에 가서 쇠겠다는 미제의 호언장담을 짓부시고, 크리스마스를 지옥의 날로 만들었다”는 식의 구절이 있다.


그때 그걸 보면서 크리스마스가 12월25일이고, 서방에서 쇠는 명절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대학 때도 12월 25일이면 “오늘 크리스마스날이구나. 외국에선 오늘 좋다고 놀겠지”하고 생각했고, 학급 동료들끼리도 이날 아침에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인사할 때도 있었다.


뭐 그랬다고 단속하거나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들도 듣고서 모른 척 했다.

북한 보통강호텔에서 찍힌 크리스마스 트리.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호텔이라 이런 쇼도 하는가보다. 사진출처

크리스마스트리 비슷한 문화도 경험했었다. 물론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서가 아니고, 어느 송년회 때였다.


내가 중학교 때 담임선생이 송년회를 준비한다면서 학급 학생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소나무를 찍어왔다.


그리고 그 소나무에 색종이로 띠도 만들어 붙이고, 카드도 붙이고 해서 크리스마스트리 비슷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날 밤 온밤 소나무 주변을 돌면서 노래를 부르고, 학생 때지만 술도 마시고 하면서 일탈을 경험했다.


물론 그 이후엔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북에선 단 한번 경험했을 뿐이다. 산타란 말도 듣긴 들었지만 머리에 감은 오지 않았다.


세계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만, 북한은 크리스마스 전날인 12월24일이 큰 명절이다. 그리고 27일도 북한의 헌법절이지만 크게 쇠진 않는다.


12월24일은 김정일을 낳은 김정숙의 생일이다. 북에선 ‘어머님 탄생일’이라고 한다.


북한 명절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무슨 탄생일 전에는 괴롭다. ‘충성의 노래모임’을 한다면서 한 달 전부터 들볶는다.


학부별, 학급별 경쟁을 해서 순위를 내기 때문에, 충성심을 입증하려는 교원들이 학생들을 참 많이도 들볶는다.


24일이 다가오면 밤 12시가 되도록 집에도 못가고 교실에서 합창훈련을 하면서 공연연습을 하는 일이 북한 어디서나 펼쳐진다.

충성의 노래 모임을 진행하는 북한 주민들.

물론 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어른들도 직장별로 들볶인다.


그렇다고 12월24일에 김일성 김정일 생일 때처럼 무슨 선물이나 특별공급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고생만 하는 제일 불쌍한 명절인 것이다.


학교 때는 12월에 들어서면 어머님 탄생일 공연을 한다면서 들볶다가 24일이 지나면 곧바로 방학이다.


그러니 크리스마스날 아침은 전날로 들볶임을 끝내고 방학을 기대하면서 부푼 가슴으로, 편안하고 안도의 마음으로 일어난다.


대학 때는 대개 크리스마스날엔 방학을 위한 수속, 즉 여행증을 받고, 량표를 떼고 하면서 바빴다. 량표는 대학에서 받던 식량을 방학기간엔 집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배급권과 비슷한 종이표를 말한다.


1991년부터 12월 24일에는 또 다른 의미가 겹쳐졌다.


이날 김정일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선출된 것이다. ‘어머님 탄생일’과 함께 ‘최고사령관 추대일’이라는 기념일로도 된 것이다.


북한에서 이렇게 큰 명절 두개가 같은 날짜에 겹친 것은 거의 없다.


북한 주민들은 더욱 피곤해지게 됐다. 김정숙을 위한 충성의 노래모임에 이어 김정일을 위한 충성의 결의대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남한에서 연인들이 쌍쌍으로 광화문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낼 때 북한에선 선전실, 연구실, 교실마다 “어머님, 어쩌구 저쩌구...” “장군님 어쩌구 저쩌구...”하는 노래와 시, 춤이 한창이다.


얼마 전 애기봉에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열렸고, 그 사진이 거의 모든 신문들의 1면에 실렸다.


아침에 애기봉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 모습을 신문으로 보면서 “이 분들은 이때 어떤 심정이었을까”하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바로 코앞 새까만 어둠 속에 잠긴 북한 저쪽에서 총알이 날아올지, 포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찬송가를 부른다고 생각해보라.

애기봉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찬양팀

아마 그때는 순교자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후에 보니 5분 만에 행사가 끝났다고 한다. 이왕 시작한 것 한 30분은 하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북한군이 보기에는 “안할 수는 없으니 하긴 하는데 겁이 나서 형식적으로 5분 안에 끝나고 달아났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북한이 도발해 인명피해가 나면 손해나는 것은 우리일 뿐이니 우리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어제도 원점타격을 위한 대규모 화력훈련이 벌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무자비한 보복, 원점타격을 소리치고 있지만, 원점타격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도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당한 피해를 갚아줄 수 있는 대칭적인 맞보복은 아니다.


북한은 우리 민간인들을 상대로 포격하는데, 우리는 원점타격으로 북한 군부대나 때리고 있으면 민간인을 때리는 것과 군만 때리는 것은 그것 자체가 비교가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북한보고 민간인은 제외하고 군부대만 서로 때리기 하자고 약속할 수도 없는 일이고, 우리가 북한처럼 개성시내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 포격할 수도 없다. 인명경시 북한을 상대로 그래봤자 그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계속 말하다시피 김정일에겐 원점타격을 해서 한개 사단이 전멸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내부 결속에 활용하려 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손해 본 이상의 보복을 하려면 민간인들을 상대로 포탄이 날아오면 곧바로 평양 중앙 당사 정도를 타격을 해야 된다. 그러나 그러면 서울도 타격을 받고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


아무튼 거지가 된 북한과 부자 나라 한국은 보복도 비례를 참 맞추기 힘들다.


이는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자가 노숙자와 싸우면 이게 대칭 보복을 계산하기 어려운 일이다.


노숙자가 하루 입원하면 아무 손해가 없지만 부자가 하루 입원하면 그 손해가 몇 백만, 몇 천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피해를 노숙자에게 보상받을 수도 없고.


한국의 딜레마가 바로 이 비슷한 것이다.


그렇다고 보복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원점타격은 하긴 해야겠지. 이왕 해야 하겠다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아주 화끈하게, 넋이 나가게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덤비기 겁이 날 정도로, 자다가도 식은 땀 흘리며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게 제대로 말이다.


이런, 크리스마스의 잔잔한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어떻게 쭉 쓰다 보니 갑자기 화끈하게 한방 날린다는 이야기까지 발전하게 됐다. 의도하고 쓴 건 아닌데...


언젠가는 북한 주민들도 세계의 일원으로 포함돼 우리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지내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직장별로 모여서 김정일 가문에 대한 ‘충성의 노래’를 목청 높여 부르던 북한의 그 아버지, 어머니들이 한밤중에 잠든 아들, 딸들의 베개 위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놔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날이 말이다.


그때면 김일성광장 자리에서도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겠지.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 크리스마스 캐롤을 합창하며 즐거워하는 날을 본다면, 나는 그날은 아마도 밤새껏 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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