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설‥"우리에겐 그저 괴롭고 힘든 날일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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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왔다. 설날이 되면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찾아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며 새해를 맞는다. 하지만 명절이 되면 가족이 더욱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북한이탈주민들이다. 이들에게 설은 그 어느 때보다 괴롭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과 고향 생각을 하면서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내년 설에는 아버지를 꼭 만나 뵙고 싶어요" 지난달 29일 탈북자 한모(23·여)씨는 서울북부하나센터에서 열린 설 나눔 행사에 참석했다. 한씨는 지난 2009년 가족들을 등지고 자유를 찾아 두만강을 건넜다. 한씨는 이날 행사에서 북에 두고 온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아버지에게 약속한대로 꼭 간호사가 돼 사람의 몸도 고치고 마음도 치유하는 사람이 될게요" 그는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눈물을 흘렸다. 한씨는 "명절이 되니 북에 두고 온 아버지 생각이 가장 많이 납니다. 아침에 학교 갈 때가 되면 교복도 다려주시고 신발도 내가 가기 전에 미리 꺼내 가지런히 놓아 주셨는데…"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한씨는 명절이 되면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새터민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는다고 했다.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새터민 친구들과 명절을 보낼 계획"이라고 한씨는 말했다. "아직 아버지는 내가 남한에 와있다는 사실을 모를 겁니다. 연변에 있는 고모가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하고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남한에 와있다는 사실을 전해드리지 못했어요" 한씨는 아버지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다시 힘을 낸다. "내년 설에는 꼭 아버지와 함께 명절음식을 나누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한씨는 두 손을 꼭 잡고 새해 소망을 빌었다. "북한 사람은 설에 고기 굽습니다" "북한에서는 새해에 죽을 먹으면 한 해 동안 죽만 먹는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고기를 먹습니다" 탈북자 김모(42·여)씨는 남한으로 넘어온 뒤로 올해 두 번째 설을 맞았다. 김씨는 이번 설에 가족들과 떡국 대신 삼겹살을 구워먹을 예정이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설에 두둑이 배를 채워야 한 해 동안 잘 먹고 다닌다는 옛말이 있어 떡국보다는 고기를 주로 먹기 때문이다. 그는 음식 말고도 남한의 설 문화는 북한과 많이 다르다고 전했다. "남한은 설에 가족끼리 주로 시간을 보내지만 북한은 이웃집에도 꼭 들러서 인사를 나눕니다. 경제가 발전한 남한에서는 먹을 것이 많아 좋다지만 인정은 북한이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출신인 김씨는 지난 2009년 가족들과 배를 타고 남한으로 넘어왔다. 김씨는 "큰언니는 당시 군에 두 아들이 있어 함께 못 왔어요. 우리가 배타고 남에 넘어온 사실이 뉴스에 보도되는 바람에 언니랑 두 아들 모두 지금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라며 울먹였다. 북에 남은 큰 오빠 역시 기업소에서 간부로 근무하고 있었지만 뉴스가 보도된 뒤로 간부직을 박탈당하고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오빠는 발전소 공사현장에서 일일 노동자로 근무하고 있어요. 간부일 때는 남들 부럽지 않게 살았는데 나 때문에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 열심히 벌어서 반드시 북에서 나오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에서는 '새해 축하합니다'가 새해인사입니다." "새해 축하합니다" 탈북자 김모(56·여)씨는 북한식 새해인사를 하며 사람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에게 이번 설은 남다르다. 두 달 전 중국에 두고 왔던 딸이 남한에 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딸을 중국에 두고 남한으로 먼저 넘어온 게 마음의 가장 큰 짐이었는데 딸이 남한으로 넘어와 너무 기쁘다"며 "가장 큰 새해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의 설에 대해 "북한에서도 설이 되면 정부에서 술 50g과 과자 1봉지를 제공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그래도 명절은 보내야 하니 명절 전에 미리미리 식량을 조금씩 아껴 놓았다가 명절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간혹 집안 형편이 힘든 식구들이 명절 식량을 준비하지 못해 신세를 지는 경우도 있다"며 "미안한 마음에 울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명절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남편 무덤이 북에 있어 마음이 좋지 않다"며 "돈 많이 벌어서 남편의 묘를 남한으로 옮겨와 내년에는 성묘를 가는 게 꿈"이라고 새해 소망을 빌었다. 윤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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