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된 곳이 더 안전한 북한의 아파트 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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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내용으로 3월 18일 방송분입니다. 남한 독자들이 아닌 북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임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들어 제가 일하는 국제부는 내내 바쁘게 지냅니다.
올 초부터 중동 시위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그러다 이제 좀 잠잠해 지려나 했는데 지난주 금요일에 일본에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들이닥쳤습니다.
1900년 이후 지구에서 일어난 지진 중 4번째로 큰 대형지진이랍니다. 이번에 일본은 정말 참혹한 피해를 봤습니다.
사망자 2만 명 이상, 경제적 피해도 2700억 딸라가 넘는답니다. 원래 일본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 건물 지을 때 내진 설계를 엄격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규모 9.0의 대지진이 왔어도 지진 때문에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높이 10m의 일찍이 보고 듣지도 못했던 초대형 해일이 문제였습니다. 일본은 해일 대비책도 철저히 세워져 있지만 이번처럼 아파트 3층 높이가 넘는 10m 짜리 해일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건 사람이 막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국제부는 외국 티비를 항상 틀어놓고 있는데 거기서 계속 반복돼 방영되는 해일 장면은 정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불이 지나간 자리는 남는 것이 있지만 물이 지나간 자리는 남는 게 없다는 말이 있죠. 거대한 물기둥에 집, 배, 승용차, 사람이고 할 것 없이 한데 휩쓸려 순식간에 확 휩쓸려 가는데 자연의 그 끔찍한 힘에 소름이 돋을 뿐입니다. 해일이 휩쓸고 간 도시 자리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 피해를 입고도 일본 사람들은 정말 냉정할 정도로 침착합니다. 피난가면서도 서로 먼저 가겠다고 다투지 않고 딱 줄서서 가고, 상점에 가서도 자기가 먼저 산다고 새치기를 하거나 목소리를 높여 다투지도 않습니다.
자기까지 순서가 오지 않을 것 같아도 몇 시간이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건이 자기 앞에서 딱 떨어져도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일본의 준법정신과 질서의식을 보면서 전 세계가 과연 선진국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감탄합니다.
저는 이번 자연재해를 보면서 저런 지진과 해일이 북에 밀려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남쪽이라고 지진 대책이 잘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북쪽보다는 훨씬 낫죠.
일본은 모든 건물을 지을 때 기초에 고무와 철판을 순서대로 겹쳐서 압축한 지진 완충제를 꼭 깝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려도 그 완충제가 웬만한 충격은 흡수합니다.
그런데 북에는 그런 대비가 전혀 안돼 있죠. 평양도 그렇지만 지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거의 대다수 아파트들이 1950~60년대 지은 50년도 넘는 것들이 아닙니까.
여기 남쪽에선 아파트 수명이 20~30년 되면 낡았다고 허물고 다시 짓습니다. 그런데 북에선 요즘 지은 아파트는 하도 날림식으로 지어서 오히려 옛날에 지은 아파트가 더 견고하다고 하는 실정입니다.
단층집들도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센 지진이 오면 다 무너집니다.
2009년 1월에 중남미 국가 아이티에 규모 7.0의 대지진이 나서 22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거의 다 무너진 건물에 깔려죽은 사람들입니다. 거긴 가난하니깐 건물을 대충 지었거든요. 제가 보건대는 아이티나 북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해일도 마찬가지죠. 2004년 12월에 인도네시아에 높이 3~4m의 지진해일이 밀려들어 이때도 22만 명 가까이 사망했습니다.
일본은 인구밀도도 훨씬 높고, 해일 높이도 무려 10m나 됐지만 세계 최고의 지진해일 경보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적게 희생됐습니다. 이번에도 지진 발생 1분 전, 해일이 닥치기 15분 전에 경보를 울려 많은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는 지질지형학적으로 일본보다 지진이나 해일에 안전합니다. 한반도에 가장 위험스러운 자연재해는 태풍과 폭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전에는 남쪽도 태풍이 오면 수백 명씩 사망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치산치수를 잘해놓아서 기껏 몇 십 명이 사망합니다.
그런데 북에선 해방이후 치산치수에는 거의 관심을 돌리지 않아서 큰 태풍이 한번 들이닥치면 수천 명씩 사망합니다. 북조선보다 조금 더 큰 땅덩어리에 인구는 무려 7배 이상 많은 1억6000만 명이 사는 방글라데슈도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비난하기 위해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북조선 현실이 정말 안타까워 그럽니다.
선진국이고, 자연재해도 철저히 대비해왔던 일본에서 그토록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저런 무시무시하고 안타까운 재앙이 북에는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은 다 똑똑한 사람들이 사는데 현실은 아프리카보다 더 많이 굶어 죽어가고 자연재해에 취약한 후진국들보다도 더 못한 나라가 됐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
렇지만 지금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에선 희망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평양에 요즘 10만 세대 건설 한다고 하는데 전국의 역량을 총동원하고도 겨우 천 몇 세대만 완공한 실정에 지방의 50~60년 된 집은 언제 허물고 다시 지을지 기약도 없습니다.
아마 북조선에 시장경제 체제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돈을 좀 번 다음에야 건설업이 활발해 질 것입니다. 돈 좀 벌면 좋은 집부터 장만하려는 게 사람의 본능이니까요.
그때까지 제발 북에는 태풍이나 산사태,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적게 들이닥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소중한 목숨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아서 좋은 세상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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